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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통곡할 청해부대 아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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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수진 투데이·피플뉴스 팀장

전수진 투데이·피플뉴스 팀장

“청해부대원으로 해외 파병 중인 아들은 내 장례식에 참석 못 하게 해달라.” 2009년 대한민국을 울렸던 어느 군인 아버지의 유언 중 일부다. 주인공은 췌장암과 사투하다 51세로 숨진 고(故) 이성우 씨. 해군 무기 정비 군무원으로 18년 일했던 그의 1등 자랑은 장남 이환욱 씨가 청해부대 3진에 선발돼 해외에 파병된 것이었다고 한다. 항암 치료로 체중이 줄고 고질적 구토에 시달리면서도 충무공이순신함 얘기만 나오면 얼굴빛이 환해졌다. 청해부대 소속 아들이 승선 중이던 군함이어서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따라 장례식 날에도 이역만리 소말리아 해역에서 나라를 위해 일했다.

청해부대는, 이런 부대다.

그런 청해부대 장병들이, 아프다.

노트북을 열며 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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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시작 후에도 청해부대 장병들은 5개월 넘도록 백신은커녕 감기약만 처방받았다고 한다. ‘코로나19 우리는 이겨낼 수 있습니다’라며 ‘청해부대가 응원하겠습니다’라던 응원 플래카드 사진까지 보내온 장병들 아니던가. 그럼에도 김부겸 국무총리와 서욱 국방부 장관이 뒤늦은 사과를 했을뿐이다. 군 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군 당국을 향해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중략) 조치에 만전을 기하라”고만 했다. 또 유체이탈 화법이다.

초유의 참사를 전하는 외신도 바쁘다. AP통신을 인용한 한 인도 유력 언론사의 제목엔 ‘한국 바이러스 전투함(South Korea Virus Warship)’ 문구까지 등장했다. 문무대왕함이 감염 온상으로 만방에 이름을 떨친 것. K방역 자화자찬만 하다 문무대왕님 얼굴에까지 먹칠을 시커멓게 한 셈이다. 정부의 외교 정책을 조목조목 비판한 타임지 기사까지 자화자찬으로 변신시키는 ‘신기(神技)’를 선보였던 이 정부는 역시나, 국회 보고자료에 “최단 기간에 임무를 달성한 최초의 대규모 해외 의무후송 사례”라는 자평을 내놨다. 이쯤되면 K-자화자찬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부끄러운 건 왜, 항상, 국민 몫인가. 한국계 미국인 민진 리의 소설 『파친코』엔 “강인한 (조선의) 어부와 그의 아내는 나라의 무능하고 타락한 지배자들에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란 문장이 나온다. 일제강점기 배경 소설이나, 21세기의 현실이나 별다를 건 없어 보인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나라를 지키려는 이들을 지키지 못한 나라에 다름 아니다.

고(故) 이성우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런 영상편지를 남겼다. “원래는 네 엄마를 더 사랑하는데, 오늘은 너를 더 사랑한다고 해야겠지. (중략) 아들은 걱정 말고 대한민국의 힘을 세계만방에 보여다오. 자랑스럽다!” 그의 통곡이 들려오는 듯하다. 귀국 장병들의 쾌유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