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음 읽기

연꽃에게 배우는 삶

중앙일보

입력 2021.07.21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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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원영스님 청룡암 주지

원영스님 청룡암 주지

청포도가 익어 가면 곳곳에서 연꽃축제가 열린다. 올해야 축제까진 어렵겠지만, 그래도 때를 만난 연꽃은 창연하게 피고 지겠지. 작년에는 도반과 사제를 데리고 봉선사에 갔었다. 꽃을 완상하며 마음을 맑히는 데는 연꽃만한 것이 없으니, 여름엔 꼭 한번 찾아보며 오염된 마음을 씻어야 한다.

더러움에도 물들지 않는 연꽃
어떻게 해야 내 인품의 향기도
맑고 향기롭게 피울 수 있을까

그러나 연못 주변엔 그늘이 많지 않아 마음을 씻기엔 볕이 너무 강하다. 걷다보면 금세 지쳐 돌아오기 일쑤다. 그래도 연꽃을 보고 오면 며칠이나마 초연한 자세로 살 수 있어 잠시는 마음이 군자처럼 청아하다.

요즘엔 도심에서도 연꽃을 가꾸는 절들이 많다. 물론 연못이 아니기에 너른 수면까지 감상하긴 어려워도 수려한 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엔 족하다. 아침이면 연잎에 맺힌 맑은 물방울도 볼 수 있고, 진초록 연잎 덕에 더욱 선명해진 홍련과 백련, 게다가 밤이면 울어대는 개구리 목청도 한껏 그 운치를 더한다.

연꽃얘기를 하자니 내겐 잊지 못할 추억이 하나 더 있다. 얼마 전 사제가 다락을 정리하다 발견했다며 보여준 옛 사진 한 장 덕분이다. 들여다보니 출가한 후 모처럼 고향을 찾아 부여 궁남지에서 어머니와 함께 찍은 오래된 사진이다. 사진 속 나는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심통이 가득해 퍽 못났다. 돌아보면 어머니와 함께한 마지막 풍경이고, 마지막 남긴 사진인데 말이다. 내 표정이 왜 이런가 떠올리다가 공연히 가슴이 먹먹해졌다.

지금도 그렇지만, 궁남지는 홍련·백련·가시연 등 온갖 연꽃이 피어 있어 사진작가들이 꽤나 모여드는 명소다. 당시 어린 비구니가 연꽃 곁에서 미소 짓는 모습이 좋았는지, 사람들이 나를 향해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그 소란에 연꽃 감상은커녕 잔뜩 짜증이 난 나는 “사진 찍지 마세욧!” 불쾌하게 쏘아붙였다. 그랬더니 곁에 있던 어머니 말씀, “이뻐서 찍는구먼. 뭘 그리 옹색하게 굴어. 스님이 돼가지고.”

‘스님이 돼가지고’라니. 뒤통수라도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말대답은 못하고 야속하게 돌아보니 한 마디 더한다. “내 눈에도 이리 이쁜데, 저 사람들 눈에는 얼매나 더 이쁘겄어. 스님이 돼서 맘을 크게 써야지. 그깟 얼굴 좀 찍히는 게 뭐라고 그랴. 그냥 웃어주면 될 것을.” 그래, 이깟 얼굴 좀 찍히는 게 뭐라고 짜증을 내랴. 그러나 그땐 그런 여유가 내겐 없었다.

조계사 주지 지현스님이 연꽃축제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시간을 들여 가만히 들여다보고 마음을 열고 노력해야 은은하게 또 잔잔히, 맑은 내음을 전해오는 것이 연꽃향기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잠깐 멈춰서 어떻게 해야 나라는 사람의 향기를 연꽃처럼 맑고 향기롭게 피어낼 수 있을지 천천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생각해보면 자연만물에 꽃처럼 사람 마음을 은근하게 움직이는 게 또 있을까 싶다. 꽃은 참 많은 가르침을 준다. 특히 연꽃은 그 가르침이 깊다. “탐매(探梅, 매화 찾아다니기)”라는 말이 있어도 “탐련(探蓮, 연꽃 찾아다니기)”이라는 말은 없지 않은가.

더욱이 연꽃은 아낌없이 주고 간다. 진흙 속에서도 우아하게 피는 연꽃은 맑은 마음을 가르쳐주고, 한 잎에 꽃 두 송이가 핀다 하여 금실 좋은 부부를 상징한다. 푸른 연잎은 차를 만들어 마시면 몸의 독소를 제거해주고, 쌀을 넣고 쪄서 먹으면 연향 가득한 연밥이 된다. 연근은 간장과 물엿에 조려 반찬을 만들고, 바싹 말려 차로도 우려먹을 수 있다. 게다가 씨가 많아 다산과 장수를 상징하는 연실은 실로 꿰어 염주를 만들어 돌리기도 하고, 돌리다 지겨워지면 끝을 갈아 흙에 묻어두면 신기하게도 이듬해 잎이 나온다.

아무튼 연꽃을 보러나갔다가 세심(洗心)은커녕 녹초가 되어 왔다. 얼음물이라도 마셔야겠다 싶어 냉동실을 열고 보니, 작년에 얼려둔 연차가 저 구석에서 힐끗 내게 인사한다. ‘세상에~ 여기 연꽃을 두고, 나는 대체 어딜 찾아다닌 것인가?’

『부생육기』의 운(芸)이처럼 차까지 넣어 밀봉해 둔 연차가 파랑새처럼 먼 길 돌아온 나를 반겼다. 연잎 닮은 널찍한 연지(큰 다완)에 꽃봉오리를 세우고 뜨거운 물을 서서히 부어 연을 펼쳤다. 함께 마시자 권하고픈 심복(沈復, 부생육기 저자)은 없어도 만개한 연차를 부처님 전에 올렸다가 내려 이틀을 마셨다. 차와 연꽃의 지혜로운 만남이련가, 연향이 기가 막히다.

오늘 염불하다보니 “처세간 여허공 여련화 불착수”란 구절이 나온다. 허 참, 여기에도 연꽃이 등장한다. “세상 살기를 마치 허공과 같이, 물에 젖지 않는 연꽃처럼 살기를”이란다. 그래요. 우리 잠시라도 그리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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