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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각수의 한반도평화워치

기업은 위기담당관 두고 시나리오별 위기 대응 나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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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복합 대전환시대 기업의 위기관리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외교부 차관·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외교부 차관·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

지난 5월 말 한·미 정상회담 공동선언은 동맹의 외연을 기술 분야로 확대했다. 그 배경에는 4대 제조업 강국을 이끈 한국 기업들이 있었다. 팬데믹 와중에 한국 경제가 비교적 빠른 회복으로 GDP 세계 10위에 진입하고, 영국 콘웰 G7 정상회의에 초청된 것도 우리 기업들이 세계를 무대로 부단히 노력하여 쌓은 경제력 덕택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활동이 안전하고 안정된 환경 속에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하는 문제는 경제 안보 차원의 중대 과제다.

미·중 갈등, 기후변화, 에너지 전환, 인구 절벽, 팬데믹 등 #변화 중첩된 복합 대전환기로 예측 힘든 초불확실성의 시대 #기업은 기민성·유연성·안전중시·정보능력 제고에 힘쓰고 #정부는 경제안보비서관 둬 범정부 대응 조율, 기업 지원해야

2020년대는 미·중 갈등, 4차 산업혁명, 기후변화, 에너지 전환, 인구 절벽, 팬데믹 등 여러 변화가 중첩된 복합 대전환기로 매우 유동적이고 예측하기 힘든 초불확실성의 시기다. 백신 보급에도 터널의 종점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는 복합 대전환을 가속하고 파급 범위를 확대하면서 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전망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따라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들에는 다양한 위기 상황을 상정하고 사전 대비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첫째, 지정학적 위기다. 중국 견제에 대한 초당파적 인식이 미국 내에서 강해지면서, 바이든 정부도 동맹 중시, 다자주의를 통해 세련된 형태로 중국과의 경쟁과 대결을 강화하고 있다. 대중 전략 경쟁은 안보 분야와 함께 3차 상쇄 전략을 뒷받침하는 신기술과 전략 물자에 집중될 것이다. 미국은 인공지능, 5G, 사물인터넷, 양자컴퓨터, 드론 등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신기술 분야에서 대중국 분리(decoupling)를 꾀하고, 반도체·배터리·의약품·희토류 등 전략 물자에 대해서는 해외 진출 기업의 귀환과 외국인 투자를 독려하면서 동맹·파트너로 구성되는 별도의 공급망을 구성(ally-shoring)하려 한다. 양국은 각자 일방적 입법과 제재를 통해 제3국 기업의 동참·불참을 압박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기술·자본·시장과 중국의 시장에 동시에 의존하는 우리 기업들에는 큰 도전이다. 미·중 갈등으로 양측의 무역·기술·투자 규제와 제재가 늘어날 것이므로, 기업의 개별 상황에 맞춘 사전 대비, 압력에서 자유롭게 하는 독보적 경쟁력 확보, 중국에 투자하면 그만큼 다른 나라에도 투자하는 ‘중국+1’로 위험 분산이 필요하다.

랜섬웨어 공격에 노출된 기업

신각수의 한반도평화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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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지경학적 위기다. 바이든 외교안보정책이 다자주의 복귀와 자유주의 국제질서 회복을 도모하면서 세계 경제에서 트럼프 시대의 G0(제로) 현상에 따른 각개약진의 위험은 줄었다. 그러나 팬데믹 진압과 경제 후유증 대처에 국제 협조의 부족, 빠른 경제 회복 과정에서 노출되는 취약성, ‘중산층을 위한 외교’의 보호주의적 색채,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의 위험 등으로 세계 경제는 여전히 보호주의 대두의 위험이 있다. 코로나19 대처를 위한 양적 완화로 부풀어 오른 천문학적 유동성은 국가·기업·개인의 과잉 채무와 함께 자산 버블, 인플레의 위험을 안고 있다. 테이퍼링이 시작되면 경착륙에 의한 금융 위기 위험에 대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 경기 회복과 신산업 수요 증가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도 해외 공급에 의존하는 우리 기업들에 부담이 된다.

셋째, 사이버 위기다. 팬데믹으로 디지털화가 빨라지는 가운데 지난해 랜섬웨어 공격은 전년보다 60% 증가한 약 3억 건에 달했다(보안회사 소닉월 조사). 피해 기업도 세계에서 2000개를 넘겼고 공격 규모도 커졌다. 해커들은 지난 5월 미국 콜로니얼송유관회사를 공격해 미 동부 일대에 5일간 석유 공급을 정지시킨 뒤 430만 달러를 요구했다. 이달엔 소프트웨어 회사 카세야를 통해 20여 개의 서비스회사를 오염시켜 약 1000개의 고객 업체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또 금융기관 예금 인출, 기업의 고객 정보 유출, 기술 절취 등 다양한 사이버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철저한 사이버보안으로 예방하되 피해 발생 때 신속 복구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지난 3월 미국 인공지능국가안보위원회가 군과 연계된 중국 기업 BGI가 태아 검사기로 세계 임산부 800만 명의 유전자 정보를 취득한 것을 안보 위협으로 경고했다. 5월엔 일본 포털 라인이 중국 위탁업체의 정보 접근 방치에 대해 총무성 행정 지도를 받기도 했다. 미국·유럽·일본과 러시아·중국·북한 간 지정학적 충돌에 따른 정보 취급의 민감성과 디지털시대 데이터 안보 차원에서 주의해야 할 사건들이다.

넷째, 해로(海路)안전 위기다. 해로는 상품·자원·에너지·식량 수송의 혈류라는 점에서, 주요 선박 통행로의 안전 확보는 우리의 사활적 이해가 걸려있다. 지난 1월 이란 혁명수비대의 한국 유조선 나포·억류와 3월 대만 선박 좌초로 인한 수에즈운하 불통은 해로 안전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우리 해상 수송로의 요충인 남중국해·대만해협·믈라카해협·호르무즈해협 등은 지정학적 위험지수가 높으므로 해양 안보라는 큰 틀에서 종합적 위기 대처 방안을 강구해 두어야 한다. 중동·아프리카 연안의 실패 국가 주변 해역에서 활동 중인 해적 납치에도 대비해야 한다.

민관 합동의 탄소 중립 부담 줄이기

다섯째, 기후변화·에너지 변환 위기다. 세계가 2050년 탄소 중립 달성을 약속하고 파리협정 이행에 힘쓰고 있지만, 기후변화는 빈도·규모 면에서 종래보다 훨씬 극심한 추위·더위·산불·태풍·홍수·가뭄을 일으키고 있다. 백 년에 한 번 발생할 대규모 재해가 잦아지고, 건당 피해 규모도 수백억 달러에 달한다. 2011년 10월 태국 홍수로 현지 일본 자동차공장의 가동이 중단되고, 지난 2월 텍사스 한파로 인한 정전으로 삼성전자가 조업을 중단하며, 대만의 반도체공장도 가뭄에 의한 물 부족으로 조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극한 기후는 기업들의 해외 활동에 중요 변수로 고려되어야 한다.

또 유럽과 미국은 온실가스 감축을 촉진하고 공정한 경쟁의 실현을 위해 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을 서두르고 있어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하는 중화학 제조업 비중이 높은 우리 산업계에 큰 부담이다. 우리는 1990년대 초부터 온실가스를 감축해온 유럽·일본·미국보다 훨씬 짧은 기간에 탄소 중립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에서 민관 합동으로 기업의 적응 부담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의 비중 증가로 국가·지역별로 전력 공급의 안정성에 문제의 소지가 있으므로 기업의 해외 진출과 공장 운영 면에서 대처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여섯째, 인권·민주주의 등 가치 관련 위기다. 바이든 정부가 가치외교를 전면에 내세우고, 세계적으로 환경·사회·기업지배(ESG)기준 충족이 기업의 가치와 투자 유치에 직결되면서 민주주의·인권·노동·반부패·환경 등으로 기업이 어려움을 겪을 우려가 커졌다. 2월 미얀마 쿠데타로 포스코인터내셔날 등 우리 진출 기업이 국제사회의 보이콧 압력에 놓인 것처럼 진출국의 민주주의 위기로 인한 부담은 무시할 수 없다. 중국 정부의 위구르·티베트·홍콩 인권 탄압을 둘러싼 서방과의 공방 과정에서 제재와 불매운동이 발생했다. 2020년 10월 나이키·아디다스·퓨마 등 서방 의류업체들이 신장산 면화 사용을 중단하면서 중국에서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지난 7월 프랑스 당국이 일본 유니클로를 위구르 인권 위반 문제로 조사하고 미국 국무부가 위구르와의 거래의 위법 가능성을 경고하였다. 가치외교의 배경에는 공정 경쟁·무역 차원의 의도가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성추행, 하급자 괴롭히기 등 기업 내 인권 침해는 그 자체로 용납될 수 없지만, 기업 이미지에도 타격을 준다는 점에서 신경 써야 한다.

국제 노동 기준 충족도 기업의 지속가능성 면에서 중요한 변수다. 해외 기업 활동에서 소년 노동, 작업 환경, 안전 기준 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또 우리 기업 구성원의 다국적화에 따라 다문화 수용성을 높이고 조화로운 기업 문화 창출도 서둘러야 한다. 한편 미국 반부패관련법의 역외 적용이 늘어나면서 이에 따른 위험에 유의해야 한다. 미국 외국부패관행법에 따라 파나소닉(2018), 에릭슨(2019), 노바티스(2020), 도이치은행(2021) 등 외국 기업들이 뇌물·편의 제공 혐의로 처벌받았다.

검은 백조, 회색 코뿔소의 동시 출현

일곱째, 국제 테러 위기다. 미국 안보정책의 초점이 대테러 전쟁에서 강대국과의 경쟁으로 옮겨짐에 따라 힘의 공백이 예상되면서 국제 테러리즘이 활성화될 전망이다. 테러 발생 빈도수가 높은 중동·아프리카·중남미·서남아에서 테러 자금 조달을 위한 인질 납치나 미국 동맹국·기독교 대상 테러에 휘말릴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2013년 1월 알제리 가스 생산 시설 테러로 일본인 7명을 포함, 다수 외국인이 살해된 사건처럼 테러 위험 지역에 진출한 기업들은 연성 목표로서의 취약성을 의식해 대테러 대비에 철저해야 한다.

복합 대전환시대의 위기는 검은 백조도 있고 회색 코뿔소도 있어서 기업 대응이 쉽지 않다. ① 초연결사회의 위기 확산 속도를 고려한 기민성 추구 ② 위기 징후의 조기 탐지와 실효적 대응에 필요한 정보 능력 제고 ③ 위기의 복합성에 적시 대응할 유연성 배양 ④ 연계된 다양한 위기를 통합적으로 다룰 종합력 확보 ⑤ 이윤·효율보다 안전 중시 ⑥ 선제 대응 능력과 사후 복구 능력 구비 ⑦ 위험의 분산과 헤징 ⑧ 세계 기준과 지역 적응의 동시 고려 ⑨ 위기의 대형화에 따른 민관 협력 강화 등을 고려해야 한다.

기업들은 위기담당관(Chief Crisis Manager)을 임명하고 신속대응팀을 운용하면서 매뉴얼을 만들고 정례적으로 시나리오별 위기 대응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청와대나 총리실에 경제안보비서관을 두어 범정부 차원의 대응을 조율하고 기업 요청을 지원하면 좋을 것이다. 더불어 외국 현지에서는 재외공관을 중심으로 위기에 대응해야 할 것이다. 초불확실성의 시대에도 평소의 위기관리 능력이 극복의 열쇠이며 위기 속에서도 기회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