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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조롱거리된 먹통대란, 민간기업이었으면 잘렸을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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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국민 스트레스 유발 시스템이다.”

정부, 같은 실수 되풀이하면서 #“접속자 한꺼번에 몰려” 국민 탓 #백신 수급불안도 접종도 책임 회피

정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예약 시스템이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지난 19일 오후 8시 시작된 53~54세 대상 접종 예약이 또다시 먹통 사태를 빚자 인터넷에는 비판 글이 쏟아지고 있다. 한 50대는 “접속 후 100분 이상 기다려 달라고 해서 대기했는데 24분쯤 지나 연결이 되는가 싶더니 ‘시스템 에러’더라. 다시 연결하는데 결국 먹통이 됐다. 국민 고생 프로젝트”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부모 대신 컴퓨터를 붙잡고 씨름한 2030세대의 예약 실패담도 넘쳐난다. “살다 살다 이런 일로 불효를 하게 될 줄은 몰랐네”란 자조까지 나온다. 역설적으로 한쪽에선 우회 경로 예약 팁이 나돌고 있다. 50대들은 “자식 없으면 백신도 못 맞겠다”고 얘기한다.

정부의 공지와 공언을 떠올리면 더욱 기가 막히는 결과다. 정부는 19일 오전 11시쯤 기자단에 “사전 예약 안정화를 위해 두 차례 시스템 이용을 중단하겠다”고 공지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전문 인력을 상주시켜 오류를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 우회 접속도 차단한다”고 했지만 공언은 허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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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과 14일에 이은 세 번째 먹통 현상에 대해 “세 번이나 실수를 반복하는 건 정부 대처가 그만큼 초보적이라는 의미”(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란 비판이 나온다. 50~52세 대상의 20일 예약 때도 접속 및 예약이 원활하지 않았던 건 마찬가지다. 민간 기업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벌써 책임자 문책과 사과문 발표가 뒤따랐을 일이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여준성 보건복지부 장관정책보좌관)란 사람은 지난 16일 페이스북에 “빨리 접종하고 싶은 생각으로 (혹시 못 맞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함에) 일시에 몰리면서 접속 지연이 발생했고, 그런 현상이 반복됐다”고 올렸다. 국민이 극성스럽다고 탓하는 것으로 보였다.

엄밀히 말하면 모든 일의 발단은 백신 수급 차질이고, 그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아야 할 이들이 갑자기 화이자를 교차 접종하게 됐고, 한시라도 빨리 맞아야 할 60세 이상 고령층 일부는 다른 이들보다 늦은 날짜에 예약했다는 이유로 접종이 뒤로 밀렸다. 50대의 백신 종류, 접종 기간도 줄줄이 조정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민 불안 탓을 한다.

지난 16일에만 해도 “우회 접속 문제는 방심했던 잘못이었고 바로 개선됐다. 문제를 계속 해소하고 있다”고 자신했던 여 보좌관은 이날에서야 뒤늦게 “예약에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민간 전문가 활용이라는 대안에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정우진 질병청 시스템관리팀장은 기자들이 “EBS 온라인 클래스는 지난해 서버 다운 당시 대기업 시스템통합(SI) 업체에 도움을 요청해 문제를 해결했다”고 상기시키자 “보안시설이라 민간인에게 적극 공개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했다.

정기석(전 질병관리본부장)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조달청을 통해 외주를 줬을 텐데 업체 역량이 부족한 것 아닌가 싶다”며 “돈 주고 시키는 사람도 능력이 없고, 불려온 사람도 실력이 없으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선착순식 온라인 예약 시스템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8월부터는 물량이 대거 들어온다고 하니 독감 백신처럼 지역별로 인구를 할당해 의원에 백신을 나눠주는 식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제대로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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