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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살아돌아와""돌아올게요" 엄홍길·김홍빈 마지막 카톡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홍빈 대장]  "대장님, 안전하게 등반하고 좋은 소식 전하겠습니다. 잘 하고 돌아가겠습니다."
[엄홍길 대장]  "건강하고 안전하게 등반해서 성공하길 히말라야 신과 브로드피크 신께 기원한다."
[김홍빈 대장]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카라반 첫날 스카르두에서의 컨디션은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상쾌한 아침을 맞이합니다."
[엄홍길 대장]  "니만 보고 느끼지 말고 사진 찍어 한 장 보내래이."
[김홍빈 대장]  "와이파이가 엄청 느려 도통 사진이 안 갑니다."
[엄홍길 대장]  "절대 살아 돌아오는 게 중요해, 안전하게 돌아와야 해"

(※ 엄홍길 대장과 김홍빈 대장 간 통화 및 카카오톡 내용. 20일 중앙일보와 엄 대장의 통화를 바탕으로 구성)

엄홍길, 김홍빈 출국 전 만나 등반 관련 조언 #등정 전에도 카톡 보내 안부 확인 #구조 헬기 대기 중...날씨가 문제

지난달 23일(현지시간) 파키스탄 브로드피크(Broad Peakㆍ8047m) 정상 등정에 나서기 전 김홍빈(57) 대장은 엄홍길(61) 대장에게 "스카르두에 도착했다"며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베이스 캠프로 향하기 전 인근 도시인 스카르두에서였다.

엄 대장은 "꼭 안전하게 돌아와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20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밝혔다. 김 대장은 정상 등정에 성공했지만 하산길에 추락해 이틀째 실종 상태다. 엄 대장은 통화에서 "이게 무슨 변고냐"며 김 대장의 무사 귀환을 수차례 바랐다.

김홍빈 대장. 광주시산악연맹 제공. 연합뉴스

김홍빈 대장. 광주시산악연맹 제공. 연합뉴스

엄홍길 "마의 구간 조심하라 했는데…"

엄 대장은 김 대장이 지난달 파키스탄으로 출국하기 보름 전쯤 만나 식사를 하며 브로드 피크 등정에 대해 세세히 설명했다고 했다. 지난 1995년 브로드 피크 등정에 성공했던 경험을 전수해준 것이다.

엄 대장은 "홍빈(김홍빈 대장)이랑 맥주 한 잔 하면서 '마의 구간'을 조심하라, 꼭 로프를 챙겨서 올라가라 이런 얘기를 해줬다"며 "제가 떠올리는 그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며 말끝을 흐렸다. 엄 대장의 거듭된 당부에 김 대장은 "명심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엄 대장은 김 대장이 이번 등반에 함께 가자고 여러 차례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하산길 굉장히 위험, 궂은 날씨 ...사고 빈번"

엄 대장은 김 대장 실종 당시 상황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해 조심스럽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브로드 피크 등반에서 '전위봉(前衛峰)'이 큰 난관이었다고 설명했다. 전위봉은 '주봉(主峯)' 앞에 있는 봉우리다. 정상(주봉)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정상이 아닌 전위봉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엄 대장은 브로드 피크 등반 당시를 회상하며 "정상에 가기 전에 암벽 구간과 설벽을 통과해서 능선을 타는 릿지 등반을 하게 된다"며 "그렇게 오르다가 '정상이겠지'하고 올라서면 전위봉이었다"고 말했다. "저기가 정상인가 싶어서, 죽기 살기로 오르면 주봉은 저 멀리 있고, 또 정상인가 해서 오르면 주봉은 아직 저 끝에 있는 식이었다. 사람을 미치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올라갈 때 그랬으니, 하산할 때도 지친 와중에도 사력을 다해서, 전위봉까지 길을 되짚어서 와야한다""암벽 구간, 릿지 구간을 '클라이밍 다운'해야 하는데 그 구간이 굉장히 위험해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말했다. 또 "브로드 피크 정상 부근은 항상 구름이 끼고 진눈깨비와 바람이 불었다"고 회상했다. "베이스캠프가 화창해도 정상 부근 기후는 변화무쌍하다"며 "구조 작업에서도 양쪽 날씨가 모두 좋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엄홍길 대장. 중앙 DB. 김경빈 기자.

엄홍길 대장. 중앙 DB. 김경빈 기자.

"중국 쪽 추락 더 위험"...1995년에도 사고

엄 대장은 김 대장의 하산길에 대해선 추정밖에 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홍빈이가 중국 쪽 (절벽)으로 추락했다고 하는데, 파키스탄 쪽보다도 훨씬 가파르고 낭떠러지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수색 작업과 관련해선 "인간은 자연을 절대 이길 수 없기 때문에, 더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 대장이 브로드 피크 정상 등정에 성공한 지난 1995년 7월 12일에도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95빛고을 브로드 피크 원정대'였다. '브로드 피크 원정대'는 당시 등정에는 성공했으나 대원 한 명이 하산길에 실족해 추락, 목숨을 잃었다.

 김홍빈 대장. 광주시산악연맹 제공. 연합뉴스

김홍빈 대장. 광주시산악연맹 제공. 연합뉴스

정부 "수색 상황 진전 없어..파키스탄 헬기 대기 중"

앞서 김 대장은 18일 오후 4시 58분(현지시간) 카슈미르 북동부 카라코람산맥 제3 고봉인 브로드 피크(8047m) 등정에 성공했다. 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김 대장은 지난 1991년 미 최고봉인 매킨리(6194m) 단독 등반에 나섰다가 동상을 입어 열 손가락을 절단했다.

하지만 김 대장은 하산길에 실종됐다. 19일(현지시간) 자정쯤 크레바스(눈덩이 또는 빙하가 깨져 내릴 때 생기는 틈)에 빠졌다. 이후 위성 전화로 구조를 요청했고, 러시아 구조팀이 김 대장을 발견한 뒤 끌어올리려 했으나, 다시 추락했다. 현재 구조대 투입을 위해 파키스탄 육군 헬기가 스카르두에서 대기하고 있다.

문제는 날씨다. 이르면 20일(현지시간) 헬기가 뜰 수 있을 거란 전망이 나왔지만, 아직도 날씨가 좋아질 기약이 없다. 서상표 주파키스탄 대사는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수시로 바뀌는 산의 날씨 때문에 헬기를 띄우지 못하고 있다"며 "조난 지점은 베이스 캠프보다도 한참 위라 접근이 워낙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대원들과 현지 코디네이터들의 도움으로 김 대장이 추락한 지점의 좌표 추정치를 확보했는데, 이 좌표가 정확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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