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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쟁탈전 다시 불붙는데…손 놓은 韓, 산유국 지위도 잃을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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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한국에 '산유국' 의 지위를 안겨준 동해 가스전의 불꽃이 사그라들고 있다. 20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이르면 올해 말 생산이 종료될 예정이다. 동해 가스전은 2004년 생산 개시 후 지난해 말까지 가스 4100만 배럴·초경질유 390만 배럴을 공급했다. 수입 대체 효과만 24억 달러(약 2조7624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동해 가스전을 이어받을 다른 대체 가스전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칫 산유국 지위를 잃게 될 경우 해외 자원 개발 사업 입찰·참여도 제한되는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한국, 이르면 올해 산유국 지위 상실 

한국석유공사의 동해 가스전. 중앙포토

한국석유공사의 동해 가스전. 중앙포토

동해 가스전 덕에 2004년 한국은 세계 95번째 산유국이 됐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동안 한국은 이 산유국 지위로 상당한 경제적·외교적 이점을 누려왔다. 산유국 지위를 상실할 경우 이런 이점들도 함께 사라질 수 있다.

특히 중동 산유국들은 비산유국을 유전개발 사업 참여 대상에서 제외하는 경향이 있다. 또 인접 국가인 중국과 일본이 모두 산유국 지위를 가지고 있는 데 반해 한국만 비산유국이 된다면 에너지 외교에서 소외될 수 있다. 높은 LNG(액화천연가스) 해외 의존을 이어갈 수밖에 없어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위험도가 높아진다.

직접적인 에너지 대체 효과만 아니라 연관산업과 고용도 위축될 수 있다. 석유공사는 동해 가스전이 연관 업체 성장과 일자리 창출 등으로 연간 약 100억원 경제적 효과를 창출했다고 추산하고 있다.

끊긴 정부 지원…민간 투자도 급감

공기업의 해외 자원개발사업 투자액.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공기업의 해외 자원개발사업 투자액.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런 우려에 석유공사도 대체 가스전을 찾기 위해 최근 동해 가스전 북동쪽 44㎞ 심해지역에 대해 시추 작업에 들어갔다. 석유공사는 이 지역에 원유 기준 약 7억 배럴에 해당하는 자원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동해 가스전에서 뽑아낸 4500만 배럴보다 15배 많은 규모다.

문제는 자원개발이 최종적으로 성공할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탐사·시추 성공률은 15% 안팎이다. 그나마도 성공하면 비용을 모두 회수할 수 있지만, 실패한다면 모두 허공에 날릴 수밖에 없다. 동해 가스전 발견을 위한 탐사·시추 작업에도 약 1조1886억원이 투입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자원개발 지원도 줄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대적으로 벌였던 자원개발 드라이브의 후유증에 ‘돈만 잡아먹는 사업’이라는 인식이 커지면서다. 하지만 투자 규모도, 위험도 큰 자원개발의 특성상 민간의 힘만으로 사업을 끌어가는 역부족이다.

한국 석유·가스 자원개발률.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한국 석유·가스 자원개발률.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실제 2010년 3093억원 수준이었던 자원개발 성공불융자 예산은 2019년에 10분의 1 수준인 367억원으로 급감했다. 자원개발 민간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도입한 성공불융자는 돈을 빌려준 뒤 실패하면 상환을 일정 부분 감면해 주는 제도다. 예산 낭비라는 지적도 있지만, 위험이 큰 자원개발 특성상 투자 유치 위해 필요한 제도라는 게 업계 평가다. 해외 자원개발에 줬던 세제 혜택도 2019년을 끝으로 모두 일몰됐다.

실제 정부 지원이 끊기면서 투자도 급감했다. 국내 에너지·자원 공기업의 지난해 해외 자원개발 투자액은 7억1300만 달러로 2011년(70억3100만 달러)의 10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한국광물공사와 석유공사는 부채를 갚기 위해 기존 자산도 팔고 있다. 정부와 공기업이 몸을 사리면서 민간 투자는 더 줄었다. 산업부에 따르면 자원개발 신규투자에서 민간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4~2015년 20%에서 2016~2018년 5% 수준으로 급감했다.

“장기적 국익 위해 꾸준히 지원해야”

이처럼 한국의 자원개발 사업이 퇴보하는 사이 자원확보 경쟁은 다시 불붙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이 치열해 지면서 공급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한 자원 확보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다.

중국은 3대 국영기업 동원해 유전개발을 확대하고, 자산·기업 인수를 위한 차관도 제공한다. 지난해 중국이 자원개발 기업 인수합병(M&A) 등에 쓴 돈만 107억 달러(약 12조원)이다. 일본도 2012년 아베 신조 총리 취임 이후 해외 자원개발을 적극 독려했다. 그 결과 에너지 소비량 대비 자원개발 비율인 자주 개발률은 2012년 22.1%에서 2018년 29.4%까지 상승했다. 현재도 2030년 자주 개발률 40% 목표로 해외 저가 자산 인수 등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주요국들의 자원확보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냉-온탕'식 정책의 후유증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중장기적 목표 아래 꾸준한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는 “4차 산업혁명이 가속하면서 자원에 대한 수요도 늘고 확보 경쟁도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도 단기적 성과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 국익의 관점에서 자원개발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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