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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부친 생전 증여 받았는데도 상속재산 나누자는 아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성우의 그럴 法한 이야기(25) 

A는 2008년 7월 11일에 사망했다. 그 상속인으로는 나이 순서대로 B(장녀), C(장남), D(차남), E(차녀) 4명의 자녀가 있었다. A는 사망하기 직전인 2008년 7월 11일 의식불명 상태에 있었는데, 장남 C는 소지하고 있던 A의 은행 예금통장과 도장을 사용해 예금 2억 1000만 원을 자기 마음대로 인출했다. C는 찾은 돈 중 1억 원은 남동생인 D에게 주었고, 2000만 원은 A의 간병비로 지출하였으며, 나머지 9000만 원은 자신이 가졌다.

결국 A가 사망한 시점에서 실물로 남아 있는 상속재산은 다른 은행에 예치해 둔 예금채권 4억 원이 전부였다. 그런데 사실 아들인 C와 D는 A의 생전에 A로부터 수십억 원 상당의 부동산과 현금을 증여받았지만, 딸인 B와 E는 받은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장남 C와 차남 D는 4억 원의 예금채권을 균등한 비율인 4분의 1씩 나누어 가지자고 주장했다. 이에 B는 서울가정법원에 상속재산분할재판을 신청하면서, 만일 B와 E가 남아 있는 예금의 4분의 1씩만 상속하게 되면 너무 불공평한 결과가 되기 때문에, 남아 있는 예금 외에 사망하기 전에 있던 C가 임의로 인출한 예금채권을 포함한 상속재산 전부를 C와 D를 제외하고 B와 E 둘이서 나누어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까?

상속인이 여러 명일 때, 사망한 사람이 유언으로 유산을 어떻게 나누어 가질지 정해 주지 않았다면, 상속인들은 서로 협의해 상속재산을 나누어 가질 수 있고,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가정법원이 정하게 된다. 어느 경우나 상속재산분할은 나눌 대상을 확정하고, 그 재산에 대해 상속인별로 나누는 비율을 정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분할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사망한 시점에 돌아가신 분의 이름으로 된 재산이고, 법에서 정한 분할 비율(법정상속분)은 원칙적으로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균등하다. 그런데 상속인들 사이의 공평을 위해, 어떤 상속인이 피상속인(사망한 사람으로서 상속재산을 물려주는 사람)의 생전에 피상속인으로부터 미리 증여받은 것이 많으면(특별수익) 법정상속분보다 적게 받도록 조정하고, 어떤 상속인이 다른 상속인들과 달리 피상속인을 특별히 부양하거나 상속재산의 유지나 증가에 기여한 경우(기여분)에는 법정상속분보다 더 많이 받도록 조정할 수 있다.

사망한 사람이 유언으로 유산을 어떻게 나누어 가질지를 정하지 않고 사망하였다면, 상속인들은 서로 협의해서 상속재산을 나누어 가질 수 있고,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가정법원이 정하게 된다. [사진 pixabay]

사망한 사람이 유언으로 유산을 어떻게 나누어 가질지를 정하지 않고 사망하였다면, 상속인들은 서로 협의해서 상속재산을 나누어 가질 수 있고,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가정법원이 정하게 된다. [사진 pixabay]

먼저 장남 C가 임의로 인출해 D와 나누어 가진 예금은 분할 대상인 상속재산이 될까? 물론 상속이 개시되는 시점인 A의 사망 당시 그 예금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 분할할 상속재산의 대상에서 제외한다면, 임종을 앞두거나 임종을 앞두지 않더라도 치매나 뇌병변 등으로 인지능력이 떨어져 혼자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없는 사람의 재산에 대해, 상속인이 될 사람의 무분별한 예금 인출 또는 처분 행위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런 일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데, 성년후견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예금주가 의식불명인 상태이어도 배우자나 가족이 비교적 쉽게 예금을 출금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3년 6월 도입된 성년후견제도가 자리를 잡아가고 금융기관과 등기소는 물론 일반 국민에게까지 널리 홍보되면서, 은행의 이른바 단골이나 VIP 고객이라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정신상태가 확인되는 예금주 본인의 출석이나 권한 있는 대리인 또는 후견인의 청구가 없는 한 예금 출금이 거의 어렵게 되었다. 사례는 2008년의 일이기 때문에, A의 예금통장과 도장을 지참한 아들인 C로서는 비교적 쉽게 A의 예금을 무단으로 인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아들들이 무단으로 인출한 예금도 상속재산 분할이 되어야 한다. 이때 상속재산 분할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사망하기 전에 A가 C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당이득반환청구권 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된다.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이란 법률상 정당한 원인 없이 이득을 얻은 사람에 대해 손해를 입은 사람이 돌려달라고 할 수 있는 권리이고,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횡령이나 배임, 사기 등 불법행위로 손해를 입힌 사람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예금채권과 같이 쉽게 나누어질 수 있는 권리(가분채권)도 상속재산 분할이 되는지다. 즉 부동산과 같이 쉽게 나눌 수 없는 권리에 대해서는 분할이 의미가 있지만, 쉽게 나누어질 수 있는 예금채권 같은 권리는 피상속인이 사망함과 동시에 상속인들에게 법정상속분에 따라 분할 귀속되기 때문에 분할의 문제는 애초부터 생기지 않는 것이다.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예금채권과 같은 가분채권은 상속이 개시됨과 동시에 상속재산분할의 대상이 되지 않지만,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공평한 결과가 되도록 나눌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진 pixabay]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예금채권과 같은 가분채권은 상속이 개시됨과 동시에 상속재산분할의 대상이 되지 않지만,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공평한 결과가 되도록 나눌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진 pixabay]

법률적으로 다소 복잡한 문제이기는 한데 대법원이 내린 결론만 확인하면, 원칙적으로 예금채권과 같은 가분채권은 상속이 개시됨과 동시에 상속인들 사이에 법정상속분대로 상속하게 되므로 상속재산분할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공동상속인 중에 피상속인으로부터 생전에 증여를 많이 받은 사람이 있어 예금채권을 법정상속분대로 나누게 되면 불공평한 결과가 생기는 경우에는 특별수익이나 기여분 등을 고려해서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공평한 결과가 되도록 나눌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상속 개시 당시 피상속인의 사망 시점에는 상속재산이 존재하였지만, 이후에 일부 상속인이 마음대로 처분하거나 어떤 사유로 없어진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해 우리 법원은 상속개시 당시의 상속재산이 처분, 멸실, 훼손 등의 이유로 실제로 분할할 때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면 원칙적으로 그 상속재산은 분할 대상으로 삼을 수 없지만, 그 상속재산을 처분한 대금이 있거나 보험금이나 보상금처럼 그 상속재산을 대가로 취득한 재산이나 그 변형물이 있으면 분할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즉 사례의 경우에도 상속 개시 당시 존재하던 4억 원의 예금이 상속 개시 후에 다른 채권자의 집행이나 은행의 공탁에 의해 소멸되었지만, 구상권 또는 공탁금출급청구권의 형태로 변형돼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예금채권은 여전히 상속재산 분할 대상이 된다고 보았다.

결국 사례에서 A의 생전에 많은 부동산과 현금을 증여받은 아들들은 상속 재산 분할에서 제외되고, 딸들인 B와 E가 큰아들 C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권 9000만 원, 작은아들 D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권 1억 원, 남아있던 예금 4억 원을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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