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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 내일 공개…“기업인 사회환원 새 이정표”

중앙일보

입력

조선 화가 겸재 정선이 인왕산의 진경산수를 그린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와 이중섭의 ‘황소’ 등 미술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던 작품이 일반에 선보인다.

[영상] 내일부터 국박·국현서 특별전시 #이 회장 생전 “모아야 가치 있다” 소신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21일부터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남긴 기증품 중 일부를 일반에 공개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한 달분에 대한 사전 예약을 받은 결과 하루도 안 돼 티켓이 동났다. 다음 달 1일까지 사전 예약을 받는 국립현대미술관도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을 열고 유족을 통해 기증받은 2만1600점 중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재 77점(국보 12건ㆍ보물 16건)을 엄선해 공개한다. 고려 불화 ‘천수관음보살도’, 김홍도의 ‘추성부도’ 등이다.

고 이건희 회장 유족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 [사진 삼성전자]

고 이건희 회장 유족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 [사진 삼성전자]

국립현대미술관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 명작’ 전시를 통해 기증받은 1488점 중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34명의 주요 작품 58점을 공개한다. ‘국민화가’로 불리는 이중섭의 ‘황소’,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등이다.

‘한국의 루브르’ 꿈 꾼 이건희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의 정수가 두 박물관에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 이 회장은 1993년 6월 삼성그룹 내부 회의에서 “대한민국의 문화재다, 골동품이다 하는 것은 한데 모아야 가치가 있는 것”이라며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영국 대영 박물관,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등을 언급했다. 모두 개인 소장 골동품과 작품 기증에 힘입어 세계적 박물관으로 거듭난 곳이다.

'국민 화가'인 이중섭의 '황소'.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국민 화가'인 이중섭의 '황소'.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런 고인의 뜻은 생전에 발간한 에세이에도 녹아있다. 그는 국립박물관을 관람했던 경험을 전하며 “상당한 양의 빛나는 우리 문화재가 아직도 국내외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데, 이것들을 어떻게든 모아서 국립박물관의 위상을 높이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문화적 인프라”라는 인식에서 출발  

특히 고인은 문화유산과 예술 작품을 ‘사회 전체의 인프라’로 봤다.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에서 문화적인 소양이 자라나야 한다. 사회 전체의 문화적 인프라를 향상시키는 데 한몫을 해야 한다”(1997년 에세이집), “비록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갈지라도 이는 인류문화의 미래를 위한 것으로, 우리 모두의 시대적 의무라고 생각한다”(2004년 리움 개관식) 등의 발언은 이런 고인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 [중앙포토]

고 이건희 삼성 회장. [중앙포토]

고인은 생전에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도 공을 들였다. 영국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과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프랑스 기메박물관 등 해외 유명 박물관에 한국실을 설치하고, 미국 구겐하임미술관에 ‘삼성 아시아 미술 큐레이터’를 배치하는 등 세계 미술계가 한국 미술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유족 측 “진정한 의미의 상속”

이에 유족들은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 국내 최초로 지정 문화재와 예술성·사료적 가치가 높은 중요 미술품을 대규모로 국가에 기증했다. 미술계에 따르면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의 규모다. 유족을 대신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국립 박물관의 위상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고 이 회장의 말씀을 이행하는 것이 고인의 뜻을 기리는 진정한 의미의 상속이라는 데 유족이 뜻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조명현 기업지배구조원장(고려대 경영대 교수)은 “고 이 회장이 아니면 국내에 있을 수 없는 수준의 작품이 전 국민의 ‘자원’이 됐다”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일 뿐 아니라 기업의 사회 환원에 대한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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