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처참한 수해를 입은 독일의 한 마을에서 장애인 12명이 집단 익사한 소식이 알려져 독일이 슬픔에 잠겼다. 홍수가 발생한 라인강과 아르강 사이에 있는 신치히(Sinzig) 마을의 요양원 1층에서 벌어진 일이다. 1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이 사건 이후 "왜 지역 관리들은 홍수 경보에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는지, 경보 시스템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질문하며 반성하고 있다.
獨 공영방송ARD "날씨, 정치 문제 됐다" #"유럽 과학자들 최소 24시간 전 경고" #홍수 예측한 英 교수 "독일 정부의 실패"
'전후 최대 재난'으로 불리는 이번 수해로 인해 독일에선 19일 현재까지 165명 이상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가장 먼저 극심한 피해를 입은 서부 라인란트팔츠주(州)의 신치히 마을 요양원에도 15일 새벽 수마가 들이닥쳤다. 당시 이 요양원 1층에 잠들어 있던 12명의 지적 장애인은 탈출하지 못하고 그대로 익사했다. 신치히 거주자이자 지방자치단체에서 일하는 루이스 루피노(50)는 "비용을 절감하려한 결과"라며 "이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사람이 한 명뿐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어두운 밤에 홍수가 나자 공포에 휩싸인 채 도망갈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웃집 사람들은 이들의 비명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홍수가 덮치고 약 3시간 후 구조대가 도착해 고층에 있는 다른 24명을 구조하고 창문을 통해 1층 시신을 거뒀다. 루피노는 "새벽 3시 30분에 이미 둥둥 떠다니는 시신이 있었다"고 했다.
독일 주간지 슈테른에 따르면 한 지역민은 "우리는 제때 홍수에 대한 경고를 받지 못했다"면서 "대재앙이 일어나기 불과 두 시간 전인 자정쯤 나는 개와 함께 산책을 했다"고 분노를 표했다.
신치히 마을을 돕기 위해 온 23세 자원봉사자 타베라 이를은 NYT에 "모든 죽음은 비극이지만, 이 죽음은 특별한 슬픔"이라며 진흙투성이의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더타임스 "홍수 발생 9일 전 재앙 징후 감지"
19일 영국 일간 더타임스도 이번 사건은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 대재앙인 동시에 인재라고 지적했다.
홍수 발생 9일 전에 이미 재앙의 첫 징후가 라인강 주변 500마일을 도는 위성에 감지됐다는 것이다. 홍수 발생 최소 24시간 전까지 과학자들은 독일 당국에 라인강과 아르강을 따라 극심한 홍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거의 정확한 예측을 전달했다고 한다.
유럽의 홍수 예측 시스템을 설계한 전문가 중 한 사람인 한나 클로크(영국 레딩 대학 수문학 교수)는 더타임스에 "시스템의 중대한 장애가 최소 133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후 독일 역사상 가장 끔찍한 재앙을 야기했다"며 "독일이 대비를 완전히 잘못했다"고 평가했다.
ARD "날씨, 정치 문제가 됐다"
현재 독일은 '제때 경보를 발송해 사람들을 대피시켰다면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했을지'에 대한 질문에 직면했다고 더타임스는 전했다.
오는 9월 총리 선거를 앞두고 기록적인 수해가 발생하고 정부 책임론까지 불거지면서 집권당인 기독민주당의 재집권에 '노란불'이 들어왔다. 여기에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유력한 후임으로 거론돼 온 기민당 후보 아르민 라셰트(60)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 주지사가 수해 지역에서 활짝 웃는 모습이 방송 카메라에 포착돼 여론이 악화했다. 그는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수해 지역에서 엄숙한 성명을 발표하는 도중 주변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다 웃은 것으로 전해졌다.
수해에 대한 책임 공방과 정치권의 대처가 향후 판세를 흔들 것으로 전망된다. 또 유럽연합(EU)이 탄소세를 발표한 지난 15일 서유럽에서 기후변화가 원인으로 지목된 대규모 수해가 발생하면서 독일과 유럽에서는 기후변화에 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독일 공영방송 ARD는 "이제 날씨는 따분한 얘기가 아니라 정치 문제가 됐다"고 논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