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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경 반격 8시간만에 번복 "파병부대 접종 구두로 협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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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부대의 코로나19 집단감염 우려가 현실이 됐다. 국방부는 19일 “현지에서 진행한 유전자 증폭(PCR) 검사에서 청해부대원 301명 가운데 247명이 양성(확진) 결과를 받았다”고 밝혔다. 청해부대 34진 전원을 국내로 이송하기 위해 급파됐던 군의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가 19일 오후 현지를 출발해 이르면 20일 한국에 도착할 것이라고 국방부가 밝혔다.

군, 백신 공급 어렵다 판단했다는데 #정은경 “제약사와 협의해 공급 가능” #청해부대원 301명 중 82% 확진 #함장·부함장 등 장교 19명도 감염 #정 “파병부대 접종 세부 논의 안해” #8시간 만에 질병청 “협의는 했다 #청해부대 세부 논의 안 했다는 것” #백신 접종 가능한 군의관도 탔는데 #군, 5개월간 ‘노백신’ 상태로 방치

국방부는 청해부대가 5개월간 ‘노백신’ 상태에 있었음에도 백신을 보내 접종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일자 지난 2월 백신과 관련해 질병청에 구두 협의했고, 종합적으로 고려해 해외 파병 부대는 백신 접종이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정은경 코로나19예방접종대응추진단장(질병관리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백신) 국외 반출과 관련해 (군 당국과) 세부적으로 논의한 적은 없다”며 “국제법과 관련해서는 대한민국 군인에 대한 접종이기 때문에 제약사와 협의해 백신을 보내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 단장은 다만 “비행기를 통해 백신을 보내야 하고, 백신의 유통에 대한 문제 등이 어렵다고 판단돼 백신을 공급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질병관리청은 8시간 만에 “올해 2~3월 해외 파병 부대 등에 대한 예방접종과 관련해선 구두로 협의한 바 있다”며 “‘세부적으로 논의한 적은 없다’는 언급은 청해부대에 대한 세부 논의가 없었다는 취지”라고 달리 설명했다. 이는 군 당국과 질병관리청이 청해부대의 감염 위기를 줄이기 위해 백신 반출을 위한 실질적 논의는 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접종 논의 여부’ 논란 일자 … 질병청, 정은경 발언 번복  

청해부대의 코로나 검사 능력도 도마에 올랐다. 유증상자가 발생했음에도 ‘신속항체검사’에서 음성 판정이 나오자 안심하고 추가 방역 조치를 하지 않았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청해부대가 가져간 800개의 신속항체검사 키트는 감염된 뒤 2주 정도 지나야 생기는 항체를 확인하는 것으로 초기 감염 여부를 판단하기는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초기 감염은 더욱 정확한 ‘신속항원검사’로 판단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정은경 단장은 이에 대해 “부대 복귀 뒤 대응 과정과 검사 과정을 면밀하게 분석한 다음 답변하겠다”고 말했다.

군에 따르면 청해부대 34진 장교 33명 중 함장과 부함장을 포함한 19명이 양성으로, 14명이 음성으로 각각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격실 위치(층)가 서로 다른 함장과 부함장을 포함해 지휘부가 대거 감염됐다는 점에서 초기 확산 방지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청해부대는 지난 15일 코로나19 확진자가 6명 나오자 유증상자 80여 명은 함내에 코호트(동일집단) 격리했지만 나흘 만에 방역 저지선이 무너졌다. 공조 시스템이 서로 연결된 함내에서 코호트 격리는 방역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함정에서 무더기 감염 위험이 상존하는 이유다. 〈중앙일보 7월 16일자 1, 3면〉

청해부대원 82% 코로나19 확진.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청해부대원 82% 코로나19 확진.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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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부대의 코로나19 대규모 확진자 발생 소식이 전해지자 군 당국이 파병 부대 관리에 소홀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하지만 지난 16일 군 당국은 ‘코로나19 집단감염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내며 언론 보도에 ‘유감’부터 표명했다. 군 당국은 당시 ▶청해부대가 국내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앞서 출항했고 ▶냉동보관 등 백신의 까다로운 유통 조건 때문에 아덴만 현지 함상으로 가져가기 힘들었으며 ▶접종 후 이상 반응에 대한 응급 처치가 어렵다는 점 등을 설명했다.

하지만 청해부대장 출신인 예비역 해군 제독은 “청해부대는 2주~2.5주에 한 번씩 유류와 식량을 적재하려고 항구에 들어간다”며 “이때 청해부대가 속한 다국적군 사령부를 통해 백신을 지원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청해부대는 소말리아 아덴만 인근의 해적 퇴치를 위한 다국적군 소속이다. 그는 “청해부대는 바레인에 있는 미국 주도의 연합해군사령부(CFMCC)와 매일 긴밀하게 연락하며 정보를 교환하고 지휘를 받는다”며 “한국군이 백신을 요청하면 협조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입항할 때 순차적으로 백신을 접종했으면 이번과 같은 대규모 감염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국민의힘 소속 강대식 의원은 “정부가 제출한 청해부대 파견연장 동의안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가 근거로 돼 있다”며 “청해부대는 유엔에 백신 접종을 요청할 권리가 있고, 명분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레바논에 근무하는 동명부대를 비롯해 유엔 평화유지군 역할을 하는 한국군 해외 파병 부대에서 복무 기간이 연장된 장병이 유엔의 협조를 받아 현지에서 백신을 접종받기도 했다. 아랍에미리트(UAE)에 파병된 아크 부대는 UAE 당국의 지원을 받아 백신을 접종했다.

이 때문에 백신 접종 이전에 출항했지만, 현지에서 협조를 받아 백신을 접종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면 대규모 감염 가능성을 줄였을 것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그랬더라면 ‘5개월 노백신’ 상황에서 파병 작전을 계속하면서 감염 위험에 빠지는 일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냉동이나 냉장 보관 백신을 군용기로 청해부대로 수송해 접종하는 일도 법적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해군 함정은 국제법상 자국 영토처럼 인정받는다. 국내 백신을 문무대왕함으로 수송해 현지 접종해도 국제법으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무대왕함에는 백신을 접종할 수 있는 군의관도 승선해 있고 각종 진단 장비(X선·초음파검사·피검사·소변검사·심전도 등)도 마련돼 있다. 항구에 입항한 상태에서 접종한 뒤 이상 반응을 살피다 인근 병원으로 후송하는 것도 문제가 없다. 해상 작전 중에는 헬기로 긴급 후송도 가능하다.

익명을 요구한 예비역 장성은 “군 당국이 300명 수준인 청해부대를 가볍게 생각했다. 다음 달(8월) 귀국 예정이라 몇 달만 버텨내면 된다고 신경을 덜 쓴 것 같다”며 “의지만 있었다면 접종은 가능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군 당국이 군내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난 4월 이후 현재까지 해외 파병 부대로 보낸 백신은 0개였다. 해외 백신 접종은 불편하고 까다로운 절차도 필요하니 국내에서만 접종하라는 ‘편의주의’가 만든 인재라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군 당국 주장대로 모든 게 불가능했더라도 또 다른 방법은 있었다. ‘백신 미접종’ 상태로 장병들이 파병돼 감염 위험성이 상존했다면 파병 부대 임무를 단축해 조기에 교대하는 방안이 있었다. 해외 파병 경험이 있는 군 관계자는 “300명 파병 장병 방역을 행운에 맡겼는가”라고 개탄했다.

지난 18일 군은 청해부대 34진 장병 모두를 국내로 복귀시키는 ‘오아시스 작전’에 들어갔다. 군 당국은 확진자 소식을 처음 전한 지난 15일부터 불과 나흘 만에 관련 국가와 후송 작전을 위한 까다로운 협조 임무를 마쳤다. 의료 지원 및 대체 함정 요원도 신속하게 선발했다.

이를 놓고 해외 파병 부대 백신 미접종에 따른 여론의 비난이 거세지면서 청와대 책임론까지 나오자 정부가 발 빠르게 움직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 당국이 이번 수송 작전처럼 청해부대 백신 접종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초유의 파병 부대 집단 확진 사태를 미리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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