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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결국 도쿄올림픽 안간다…국무총리 '대리 참석'도 배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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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방일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와의 한ㆍ일 정상회담이 결국 무산됐다.

문재인 대통령(左), 스가 요시히데 총리(右)

문재인 대통령(左), 스가 요시히데 총리(右)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19일 오후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은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한 방일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문 대통령의 방일이 무산된 배경은 ‘의미 있는 성과’를 조건으로 내세웠던 한국 정부의 입장과 ‘단순한 축하 차원의 개막식 참석 형식’을 고수해온 일본이 결국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박 수석은 “한ㆍ일 양국 정부는 도쿄올림픽 계기의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양국간 역사 현안에 대한 진전과 미래지향적 협력 방향에 대해 의미있는 협의를 나눴다”면서도 “상당한 이해의 접근은 있었지만, 정상회담의 성과로 삼기에는 여전히 미흡하며 그밖의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박 수석이 언급한 ‘제반 상황’은 소마 히로히사(相馬弘尙) 주한 일본 대사관 총괄공사가 성적인 비하 표현으로 양국간 상황을 설명하며 물의를 빚은 걸 뜻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에 대해 “용납하기 어려운 발언이었다. 국민 정서를 감안해야 했고, 이후 청와대 내부 분위기도 회의적으로 변했다”며 협상 결렬의 주요 원인으로 소마 공사의 망언을 꼽았다.

소마 히로히사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 공사가 13일 일본 정부의 방위백서 관련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초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소마 히로히사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 공사가 13일 일본 정부의 방위백서 관련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초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외교가에선 “소마 공사의 막말이 최종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수는 있지만, 협상 결렬의 핵심 원인은 과거사 등 현안에 대한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문 대통령의 도쿄올림픽 개막식 참석과 한ㆍ일 정상회담 성사에 사활을 걸어왔다. 남은 임기동안 남북 관계를 풀기 위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요구한 동맹강화 차원의 한ㆍ일 관계 개선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일본과의 협상 초기 위안부ㆍ강제징용 등 과거사, 후쿠시마(福島) 원전 오염수 방류, 일본의 수출규제 등을 반드시 협의해야할 3대 현안으로 제시하며 문 대통령의 방일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러나 일본이 한국 정부가 내건 조건을 거부하자, 상대적으로 허들이 낮다고 판단했던 '일본의 수출규제'문제만 해결되는 방향이라면 방일을 검토할 수 있다는 정도로 조건을 낮췄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은 결국 이러한 조율안도 수용하지 않은 걸로 판단된다.

한·일 관계에 밝은 일본 측 소식통은 중앙일보에 "문 대통령 방일의 반대급부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푼다는 건 일본 국내적인 명분이 너무 약하다"고 했다.

6일 일본 아이치(愛知)현 나고야(名古屋)시의 공공 전시장인 '시민 갤러리 사카에'(榮)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돼 있다.   일본의 공공시설에 소녀상이 전시된 것은 2019년 8~10월 열린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전(不自由展)·그 후'에 이어 1년 8개월여만이다.   연합뉴스

6일 일본 아이치(愛知)현 나고야(名古屋)시의 공공 전시장인 '시민 갤러리 사카에'(榮)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돼 있다. 일본의 공공시설에 소녀상이 전시된 것은 2019년 8~10월 열린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전(不自由展)·그 후'에 이어 1년 8개월여만이다. 연합뉴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아쉬움이 크다”면서도 “외교적 협의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기 어렵다”고 밝혔다. 협의의 방법을 비롯해 협상 주체에 대해서도 함구했다.

정치권에선 외교적 이견과 함께 정치적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도 나온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방일을 통한 한ㆍ일 관계 개선을 원했던 문 대통령을 비롯한 외교안보 라인과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내 여론을 고려해야 하는 정무라인간의 이견이 노출돼 왔던 것으로 안다”며 “결국 국내 정치를 고려한 결정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실제 협상이 난항을 겪는 과정에서도 외교안보 라인에선 “현안 협의와 미래 협력에 도움을 주는 결정이 이뤄질 것”이라는 말이 주를 이뤘다. 반면 정무라인에선 “성과 없는 방일은 불가하다는 원칙을 공개한 상태에서 ‘빈손 방일’에 대한 여론의 역풍을 감당할 수 없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이날 김부겸 국무총리도 문 대통령의 주례 오찬회동에서 강한 부정적 기류를 전달했다고 한다.

청와대는 결국 문 대통령의 방일 불발을 발표하며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한국 정부 대표단의 대표 자격으로 개막식에 참석한다”고 밝혔다. 2018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가 평창올림픽 때 방한했던 것에 대한 답례 차원의 고위급 인사 파견도 추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동안 외교가에선 "문 대통령이 아니라면 김 총리가 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지난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을 일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개막식 참가차 방한한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을 가졌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지난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을 일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개막식 참가차 방한한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을 가졌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번 방일의 불발과 관계없이) 한ㆍ일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임기 말까지 계속 일본과 대화 노력을 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올림픽을 통한 정상간의 첫 대면 만남이 불발되면서 양국 관계 회복을 위한 새로운 계기를 만들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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