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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명 파병 장병 방역을 행운에 맡겼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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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일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예방접종센터에서 장병들이 화이자 백신을 맞고 있다. 사진 국방일보

지난 7일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예방접종센터에서 장병들이 화이자 백신을 맞고 있다. 사진 국방일보

청해부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감염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 국방부는 19일 “현지에서 진행한 유전자 증폭(PCR) 검사에서 청해부대원 301명 가운데 247명이 양성(확진) 결과를 받았다”고 밝혔다.

정은경 질병청 “군과 백신 논의 없어” #현지 접종 적극 모색했는지 의구심 #군 ‘확진 사태’ 보도에 유감부터 표명

군 관계자는 “장교 33명 중 함장과 부함장 등 19명은 양성, 14명은 음성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격실 위치(층)가 다른 함장과 부함장 등 지휘부 모두가 감염됐다는 점에서 초기 대응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는 뜻이다.

군 당국은 지난 15일 청해부대에서 코로나19 확진자 6명이 나왔지만, 유증상자 80여 명은 코호트(동일집단) 격리하면서 감염 확산 방지에 주력했다. 그러나 불과 나흘 만에 방역 저지선이 무너졌다.

공조 시스템이 서로 연결된 함정에서의 코호트 격리는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함정에선 항상 무더기 감염 가능성의 위협이 상존해 왔다. 〈중앙일보 16일자 1,3면〉

청해부대원이 지난 설 명절에 "코로나19 우리는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함께 극복합시다!"라는 문구가 담긴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모습. 사진 합참

청해부대원이 지난 설 명절에 "코로나19 우리는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함께 극복합시다!"라는 문구가 담긴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모습. 사진 합참

청해부대 코로나19 대규모 확진자 발생 소식이 전해지자, 군 당국이 파병 부대관리에 소홀히 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 16일 군 당국은 ‘코로나19 집단 감염을 막기 위해 적극 노력했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내며 언론 보도에 대해 ‘유감’부터 표명했다.

군 당국은 이 메시지에서 ▶청해부대가 국내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앞서 출항했고 ▶냉동보관 등 백신의 까다로운 유통 조건 때문에 아덴만 현지 함상으로 가져가기 힘들었고 ▶접종 후 이상반응에 대한 응급 처치가 어렵다는 점 등을 설명했다.

“백신 접종 협조 가능했다”

하지만 청해부대장 출신 예비역 해군 제독은 “청해부대는 2주~2.5주에 한 번씩 유류와 식량을 적재하려 항구에 들어간다”며 “이때 청해부대가 속한 다국적군 사령부를 통해 백신을 지원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청해부대는 소말리아 아덴만 인근의 해적 퇴치를 위한 다국적군 소속이다.

그는 “청해부대는 바레인에 있는 미국 주도의 연합해군사령부(CFMCC)와 매일 긴밀하게 연락하며 정보를 교환하고 지휘를 받는다”며 “한국군이 백신을 요청하면 협조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입항할 때 순차적으로 백신을 접종했으면 이번과 같은 대규모 감염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국민의힘 소속 강대식 의원은 “정부가 제출한 청해부대 파견연장 동의안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가 근거로 돼 있다”며 “청해부대는 유엔에 백신 접종을 요청할 권리가 있고 명분도 있다”고 했다.

지난 2월 설명절 기간에 제기차기하는 남수단 한빛부대 장병. 해외파병 부대 중 일부 장병은 유엔의 협조를 받아 코로나 백신 접종을 받기도 했다. 사진 합참

지난 2월 설명절 기간에 제기차기하는 남수단 한빛부대 장병. 해외파병 부대 중 일부 장병은 유엔의 협조를 받아 코로나 백신 접종을 받기도 했다. 사진 합참

"백신 보내도 국제법상 문제 없어"

실제로 동명부대를 비롯한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파병된 한국군 해외 파병부대에서 복무 기간이 연장된 장병이 유엔의 협조를 받아 현지에서 백신을 접종받기도 했다. 또 아랍에미리트(UAE) 아크 부대는 UAE 당국의 지원을 받아 백신을 접종했다.

이때문에 백신 접종 이전에 출항했어도 현지에서 협조를 받아 백신을 접종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했다면 대규모 감염 가능성을 줄였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청해부대원 82% 코로나19 확진.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청해부대원 82% 코로나19 확진.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냉동보관 백신을 군용기로 청해부대로 수송하는 게 법적으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해군 함정은 국제법상 자국 영토처럼 인정을 받는다. 국내 백신을 문무대왕함으로 수송해 접종해도 국제법으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은경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장(질병관리청장)은 이날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백신) 국외 반출과 관련해 (군 당국과) 세부적으로 논의한 적은 없다”면서 “국제법 관련해서는 대한민국 군인에 대한 접종이기 때문에 제약사와 협의를 해서 백신을 보내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지난 2월 백신 접종과 관련해 질병청에 구두로 협의했고, 종합적으로 고려해 해외 파병 부대는 백신 접종이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2월 이후 추가 논의가 없었다는 점도 확인됐다.

이는 군 당국이 청해부대의 감염 위기를 줄이기 위해 방역 당국과 백신 반출을 위한 실질적 논의를 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군은 내부적으로 제약사가 백신의 해외 반출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지만, 이 역시 제약사가 실제로 불허할지 말지에 대해 확인하지 않은 선입견이었음을 뜻한다.

함정에 승선한 해군 군의관이 예방접종을 준비하고 있다. 청해부대 문무대왕함에도 군의관이 승선해 백신 접종이나 긴급한 의료 대응이 가능하다. 중앙포토

함정에 승선한 해군 군의관이 예방접종을 준비하고 있다. 청해부대 문무대왕함에도 군의관이 승선해 백신 접종이나 긴급한 의료 대응이 가능하다. 중앙포토

특히 문무대왕함에는 백신을 접종할 수 있는 군의관도 승선해 있고 각종 진단 장비(X-RAYㆍ초음파 검사ㆍ혈 검사ㆍ소변 검사ㆍ심전도 등)도 마련돼 있다.

항구에 입항한 상태에서 접종한 뒤 이상 반응을 살피다 인근 병원으로 후송하는 것도 문제가 없다. 해상 작전 중에는 헬기로 긴급 후송도 가능하다.

“초기 유증상자 나오자 감기 처방”

익명을 요구한 예비역 장성은 “군 당국이 300명 수준인 청해부대를 가볍게 생각했다. 다음 달(8월) 귀국 예정이라 몇 달만 버텨내면 된다고 신경을 덜 쓴 것 같다”며 “의지만 있었다면 접종은 가능했다”고 비판했다.

지난 2019년 순항훈련에 참여한 문무대왕함이 순항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19년 순항훈련에 참여한 문무대왕함이 순항하고 있다. 중앙포토

하지만 군 당국이 군 내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난 4월 이후 현재까지 해외 파병부대로 보낸 백신은 0개였다. 해외 백신 접종은 불편하고 까다로운 절차도 필요하니 국내에서만 접종하라는 편의주의가 만든 인재라는 비판이 나온다.

군 당국 주장대로 모든 게 불가능했더라도 또 다른 방법은 있었다. ‘백신 미접종’ 상태로 장병들이 파병돼 감염 위험성이 상존했다면 파병 부대 임무를 단축해 조기에 교대하는 방안이 있었다. 해외 파병 경험이 있는 군 관계자는 “300여명 파병 장병 방역을 행운에 맡겼는가”라고 비판했다.

청해부대에선 초기 유증상자가 나왔을 때 단순 감기약을 처방하는 데 그쳤다. 또한 ‘신속항체검사’에서 음성 판정이 나오자 안심하고 추가 방역 조치를 하지 않았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청해부대가 가져간 800개의 신속항체검사 키트는 코로나에 감염된 뒤 2주 정도 지나야 생기는 항체를 확인하는 것으로 초기 감염 여부를 판단하는데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초기 감염은 ‘신속항원검사’로 판단하는 게 상식적인 조치라는 것이다.

지난 18일 공군5공중기동비행단 주기장에 주기 되어 있는 공군 다목적공중급유수송기 시그너스(KC-330)에 청해부대 34진과 대체인력이 사용할 의무 및 각종 물자들이 적재되고 있다.   국방부는 청해부대 34진 전원의 안전후송을 위해 작전명을 오아시스 작전으로 명명하고 이날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2대를 해당 지역으로 급파했다. 사진 국방부

지난 18일 공군5공중기동비행단 주기장에 주기 되어 있는 공군 다목적공중급유수송기 시그너스(KC-330)에 청해부대 34진과 대체인력이 사용할 의무 및 각종 물자들이 적재되고 있다. 국방부는 청해부대 34진 전원의 안전후송을 위해 작전명을 오아시스 작전으로 명명하고 이날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2대를 해당 지역으로 급파했다. 사진 국방부

지난 18일 군은 청해부대 34진 장병 모두를 국내로 복귀시키는 ‘오아시스 작전’에 돌입했다. 군 당국은 확진자 소식을 처음 전한 지난 15일 이후 불과 나흘 만에 관련 국가와 후송 작전을 위한 까다로운 협조를 마쳤다. 의료 지원 및 대체 함정 요원도 빠르게 선발했다.

이를 놓고 해외 파병부대 백신 미접종에 따른 여론의 비난이 거세지면서 청와대 책임론까지 나오자 정부가 발 빠르게 움직였다는 관측이 나온다. 군 당국이 이번 수송 작전처럼 청해부대 백신 접종에도 절박하게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초유의 파병부대 집단 확진 사태가 벌어졌겠는가라는 얘기다.

*군 소식통은 장교 30여명 중 1명을 제외한 모두가 확진됐다고 전했으나, 이후 오후 10시 39분 국방부 관계자가 확진자 통계를 알려와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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