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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 폭우, 북미 폭염···“선진국에도 기후 복수 시작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제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최근 자연재해로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미국과 유럽을 가리켜 뉴욕타임스(NYT)가 17일(현지시간) 이렇게 지적했다.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라는 경고를 무시하고, 책임을 회피한 선진국들이 고스란히 그 무게를 감당하고 있다고 하면서다.

독일 서부 아르 강변의 소도시 슐트가 15일 폭우로 인해 강둑이 무너지고 주택이 파괴되는 등 홍수 피해를 본 모습을 항공 촬영한 모습. [AP=연합뉴스]

독일 서부 아르 강변의 소도시 슐트가 15일 폭우로 인해 강둑이 무너지고 주택이 파괴되는 등 홍수 피해를 본 모습을 항공 촬영한 모습. [AP=연합뉴스]

외신에 따르면 지난 14~15일 독일과 벨기에 등 서유럽에서는 평균 한 달 동안 내릴 비가 이틀 동안 한꺼번에 쏟아졌다. ‘100년 만의 폭우’였다. 산과 둑은 힘없이 무너졌고, 평균 강수량에 맞춰 설계된 하수 시설은 무용지물이었다. 예기치 못한 재난에 안전관리 시스템도 멈췄다. 폭우와 홍수로 인한 사망자 수가 18일 기준 180여 명에 이른다.

북미 폭염 이어 서유럽 홍수 대재앙 #NYT "전 세계 기후변화 늦출 준비 미흡"

미국과 캐나다는 한 달 넘게 이어진 폭염과 산불에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주 미 캘리포니아주 데스밸리 지역의 기온은 역대 최고치인 섭씨 54.4도까지 치솟았고, 캐나다에선 폭염으로 700명 이상이 사망했다. 미 서부지역은 고온으로 달궈진 지면과 건조한 공기가 만나면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서울 면적의 5.1배가 탔다.

이상 고온은 동유럽과 러시아도 덮쳤다. 스페인은 연일 40도를 넘나들고 있고, 러시아 모스크바는 6월 기온이 30도를 웃돌았다. 알래스카 등 북극권에는 전례없이 사흘 연속 내려친 마른번개로 화재와 산불이 잇따르고 있다.

개도국 경고, 과학 무시한 결과 

지난 9일(현지시각) 미 캘리포니아주 산불 현장. [AP=연합뉴스]

지난 9일(현지시각) 미 캘리포니아주 산불 현장. [AP=연합뉴스]

선진국까지 강타한 극단적인 이상기후 현상은 온실가스에 따른 온난화 등 기후변화의 결과라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이번 서유럽 폭우 역시 기온이 이상 급등하면서 대기가 더 많은 수분을 머금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기후변화 위기 경고음에 선진국이 안이하게 대처해왔다는 것. NYT는 “이번 재해는 가장 부유한 국가들이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는 것을 부각시켰다”면서 “전 세계가 기후변화를 늦출 준비도, 기후변화와 공존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줬다”고 꼬집었다.

이에 따르면 그동안 자연재해로 인한 대규모 피해는 사회기반시설이 취약한 개발도상국에 집중돼왔다. 그때마다 개도국들은 산업화 과정에서 석탄과 석유를 사용해온 선진국에 책임이 있다며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즉각적인 행동을 요청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3년 태풍 '하이옌'으로 필리핀이 초토화됐을 때다. 당시 필리핀은 미국과 유럽 등에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책임을 물으며 피해 수습을 위한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또 같은 해 열린 제1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에서 교토의정서를 이을 새 기후변화협약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북극에 번개가 잦아지고 있다. 과학자는 이례적 기상 변화에 우려하고 있다. 지난 14일 독일 베를린 지역에 번개가 치는 모습. [EPA=연합뉴스]

북극에 번개가 잦아지고 있다. 과학자는 이례적 기상 변화에 우려하고 있다. 지난 14일 독일 베를린 지역에 번개가 치는 모습. [EPA=연합뉴스]

하지만 선진국들은 이를 거절하고, 책임을 회피했다고 NYT는 지적했다. 오히려 경제성장 중인 개도국이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한다고 압박했다면서다.

국제환경연구기관 ‘세계자원연구소’(WRI)의 인도지부장 울카 켈카르는 “지난 100년간 산업 국가들이 내뿜은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로 개도국이 피해를 보았지만, 그 책임마저 개도국 탓으로 여겨졌다”면서 “지금 부유국을 강타한 재앙은 기후 변화에 맞서기 위한 개도국들의 요구가 ‘거짓 경고’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선진국은 과학계의 경고도 소홀히 했다. 그동안 과학계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섭씨 1.5도 이하로 제한해야 하며 2030년까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2015년 파리기후협정 이후에도 전 세계 탄소배출량은 계속 증가했다. 그 결과 1880년 이후로 지구 평균 기온이 섭씨 1도 이상 증가했고, 상승 억제선인 1.5도까지 0.5도도 남지 않았다고 NYT는 전했다.

선진국, 탄소배출량 감소 앞장설까 

더 큰 문제는 영향력 있는 국가들과 기업들이 탄소배출량을 감소할 의지가 있느냐는 것이다. 지금까지 기후변화 위기에 대한 선진국의 대응은 늘 엇갈렸다. 최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EC)가 최근 기후변화 대응 정책 패키지 중 하나로 내놓은 ‘탄소 국경세’도 그중 하나다.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가 지난 2017년 2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주재 미국 대사관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파리기후협약 탈퇴 결정에 반대하는 영상을 비췄다. [AP=연합뉴스]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가 지난 2017년 2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주재 미국 대사관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파리기후협약 탈퇴 결정에 반대하는 영상을 비췄다. [AP=연합뉴스]

탄소 국경세는 2026년부터 EU로 수출되는 제품의 탄소 배출량에 일종의 ‘관세’를 물리겠다는 것인데, 수출국에서는 ‘탄소 중립’을 빌미로 장벽을 높이는 것 아니냐고 반발하고 있다. 수출국들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 ‘네 탓’ 공방을 벌이는 사이 기후변화 대응은 또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오는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26차 COP도 마찬가지다. 이번 총회에서는 ‘2030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과 관련한 발표가 있을 예정이지만, 이 역시 제대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NYT는 “COP26을 앞두고 선진국을 강타한 이번 이상기후는 전 세계의 강력한 협력과 즉각 대응의 필요성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기후변화를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변화한 환경에 적응할 필요도 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선 각국에서 정부 예산을 늘리고, 입법 과정을 신속히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정치적 인센티브 없이는 당국자나 정치인들이 선뜻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만다 몬타노 미국 매사추세츠해양대 비상관리학 교수는 “정치인들은 언제나 자금 사용에 정당성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지금 정치인들이 지역사회에 새로운 홍수 기반 시설을 건설할 때쯤에는, 그들은 아마 더는 공직에 있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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