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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협력사가 몰래 서류 위조"…원청사 입찰자격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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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박용호의 미션 파서블(14)  

조달청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2020년도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등 공공부문 전체 공공조달 계약 실적은 175조8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2020년도 국내 총생산(명목 GDP, 1924조4000억원)의 9.1%에 해당하는 것이다. 내용상으로도 정부, 지방자치단체 등이 발주하는 공공조달 계약은 대부분 국민생활과 직결되고 공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할 때 공공조달 계약에서는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어야 하고, 계약의 적정한 이행도 담보되어야 한다.

입찰참가자격 제한제도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서 낙찰 부적합자가 일정 기간 동안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모든 입찰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다. [사진 flickr]

입찰참가자격 제한제도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서 낙찰 부적합자가 일정 기간 동안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모든 입찰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다. [사진 flickr]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계약법’)’ 등 공공조달 계약을 규율하는 각종 법률에서는 공정한 경쟁, 계약의 적정한 이행 등을 확보하기 위해 입찰참가자격 제한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입찰참가자격 제한제도는 공공조달 계약상대자로 낙찰되기에 부적합한 자 일정 기간 장래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모든 입찰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이다.

통상 공공주체 관련 사업을 주된 사업으로 영위하는 기업이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을 받게 될 경우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며, 심한 경우 폐업에 이를 수 있다. 입찰참가자격 제한의 제도적 필요성, 상대방에 대한 불이익의 정도 등을 고려해 국가계약법 등 관련 법률은 입찰참가자격 제한 사유를 제한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입찰참가자격 제한사유 중에는 ‘입찰 계약 관련 서류를 위조 또는 변조하는 등 경쟁의 공정한 집행을 저해할 염려가 있는 경우’가 포함되어 있다.

공공조달 계약 입찰에 직접 참여한 계약상대자가 입찰 계약 관련 서류를 위조 또는 변조할 경우 국가계약법 등 관련 법률에 따라 그 계약상대자가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을 받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계약상대자가 아닌, 계약상대자의 협력업체가 입찰 계약 관련 서류를 위조 또는 변조해 계약상대자에게 이를 전달했고, 계약상대자가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공공기관에 그대로 제출하였다면 계약상대자는 협력업체의 부정행위를 이유로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을 받게 되는 것일까. 아래 사례를 통해 살펴보도록 한다.

계약상대자가 아닌 협력업체가 입찰 계약 관련 서류를 위조 또는 변조한 경우

A회사는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이 발주하는 공공조달 관련 사업을 주된 사업으로 영위하고 있다. 매출액에서 공공조달 관련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압도적으로 크다. B공공기관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물품 납품에 대하여 입찰공고를 냈는데, A회사는 B공공기관의 위 입찰에 응찰하기로 했다. 다만, A회사는 B공공기관이 발주하는 물품 전체를 자신이 직접 제작하지 않고, 일부 부품 등을 C회사 등 협력업체로부터 납품받아 B공공기관에 납품하기로 했다. A회사는 입찰 계약 관련 서류를 준비하여 B공공기관에 제출하였는데, 그 중에는 C회사가 A회사에게 제공한 시험성적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B회사는 A회사에게 자신이 납품한 품목에 대하여 시험성적서를 제공하였고, A회사는 그 진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B공공기관에 제출한 것이다. 알고 보았더니 C회사가 제공한 시험성적서는 위조, 변조된 것이었다. B공공기관은 입찰 계약 서류가 위조, 변조되었음을 이유로 A회사에게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을 하였다. A회사는 입찰 계약 서류를 위조, 변조한 것은 C회사이므로,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공공조달 계약 관련 법령상 입찰참가자격 제한
공공조달 계약 관련 법령 중 일종의 기본법에 해당하는 것은 국가계약법이다. 다른 관련 법령은 대부분 입찰참가자격 제한과 관련해 국가계약법을 준용하고 있다.

국가계약법상 입찰참가자격 제한사유가 있는 계약자 또는 입찰자(그 대리인, 지배인, 그 밖의 사용인 포함)는 각 중앙관서의 장으로부터 1개월 이상 2년 이하의 범위에서 공공조달 계약의 입찰참가자격을 제한받는다(국가계약법 시행령 제76조 제3항).

입찰참가자격 제한사유에는 계약의 이행을 부실 조잡 또는 부당하게 하거나 부정한 행위를 한 경우, 경쟁입찰·계약 체결 또는 이행과정에서 입찰자 또는 계약상대자 간에 서로 상의하여 담합한 경우, 사기 또는 그 밖의 부정한 행위로 입찰 과정에서 국가에 손해를 끼친 경우, 입찰 계약 관련 서류를 위조 또는 변조하는 등 경쟁의 공정한 집행을 저해할 염려가 있는 경우 등이 있다(국가계약법 제27조 제1항, 동법 시행령 제76조 제1항).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을 받게 되면, 해당 업체는 제한기간 동안 해당 공공주체 뿐 아니라, 타 공공주체가 발주하는 입찰에도 참가할 수 없다(국가계약법 시행령 제76조 제7항, 제8항, 제12항).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을 받게 되면 입찰참가자격 제한기간 동안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에 업체명, 입찰참가자격 제한기간, 제한사유 등이 공개된다(국가계약법 시행령 제76조 제10항).

그러면 계약상대자의 협력업체가 입찰 계약 관련 서류를 위조 또는 변조한 경우라도 계약상대자가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을 받게 될까? 국가계약법 시행령은 부정당업자의 대리인, 지배인 또는 그 밖의 사용인이 특정한 행위를 해 입찰참가자격 제한사유가 발생한 경우로서 대리인, 지배인 또는 그 밖의 사용인의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않은 경우에는, 부정당업자에 대한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하지 않고 있다(국가계약법 제76조 제3항 단서).

앞서 언급한 사례는 대법원 판결 사안으로서(대법원 2020. 2. 27. 선고 2017두39266 판결), 대법원 2017두39266 판결은 아래와 같은 점에 비추어 A회사에 대한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이 적법하다는 취지로 판시하였다.

① 국가계약법 시행령상 계약상대자와 동일하게 취급되는 “그 밖의 사용인”에는 “부정당업자의 책임 하에 그의 의무를 대신하여 처리하는 자 등이 포함됨
② B공공기관(발주자)과의 관계에서 계약상대자로서 계약상 의무를 부담하는 자는 A회사(계약상대자)이지, C회사(계약상대자의 협력업체)가 아님
③ A회사(계약상대자)는 공공조달 계약의 이행을 위해 자신이 선정한 C회사(계약상대자의 협력업체)가 물품을 제작 납품하도록 하였으므로 위 협력업체는 A회사(계약상대자)의 영역과 책임 범위 내에 있음
④ A회사(계약상대자)는 협력업체들로부터 납품받은 품목에 대해 직접 시험검사를 실시하거나 공인시험기관에 시험검사를 의뢰하여 시험성적서를 제공받아 제출할 수 있었음

공공조달 계약의 중요성, 특수성 등에 비추어, 향후에도 대법원 2017두39266 판결 취지와 같이 계약상대자의 입찰참가자격은 엄격하게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공공조달 계약을 주사업으로 영위하는 기업이 협력업체를 사용해 공공입찰에 참여하고자 하는 경우, 협력업체가 제출하는 입찰 계약 관련 서류의 진실성까지도 세심하게 검토하여 부당하게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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