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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손정의 "야놀자 지분 최대한 확보하라" …2조 투자한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2021.07.19 05:01

업데이트 2021.09.05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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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팩플 인터뷰
문규학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매니징 파트너

쿠팡, 올 2월 뉴욕증시 상장 전까지 해외에선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미는 기업’(Softbank Vision Fund backed-Coupang)으로 소개되곤 했다. 줄곧 적자인 한국 이커머스 기업을 글로벌 시장이 주목할 이유는, 상당 부분 ‘손정의 픽(Pick)’이어서였다.

'야놀자 2조 투자' 이끈 문규학 비전펀드 매니징 파트너

그 리스트에 최근 한국 유니콘 한 곳이 추가됐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이하 SVF)가 오랜만에 한국 유니콘에 조(兆)단위 투자를 결정했다. 대상은 여행 플랫폼 야놀자. 손 회장이 2019년 결성한 비전펀드2가 이 회사에 17억달러(약 2조원)를 투자한다고 15일 발표했다. 비전펀드2의 129건 투자 중 역대 두 번째 규모다. SVF의 지분율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야놀자가 인정받은 기업가치는 약 8조~9조원으로 추정된다.

이날 오후 일본 도쿄에 있는 문규학(57) 소프트뱅크비전펀드 매니징 파트너를 화상으로 만났다. 그는 2018년까지 그룹 벤처캐피탈(VC)인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였고 지금은 한국·동남아 등 아시아태평양(APAC) 지역 투자를 맡고 있다. 이번 야놀자 투자도 그가 이끌었다. 문규학 매니징 파트너는 “15분 전에 계약서에 사인했다”며 “창업자 이수진 총괄대표가 ‘또다른 차원의 도전 기회를 갖게 해 줘서 고맙다’길래 먹먹하고도 안심이 됐다”고 말했다.

문규학 소프트뱅크비전펀드 매니징 파트너. [사진 소프트뱅크그룹]

문규학 소프트뱅크비전펀드 매니징 파트너. [사진 소프트뱅크그룹]

손정의 “야놀자 지분, 최대한 많이 사라” 

야놀자의 어떤 비전을 보고 투자했나.
야놀자는 기술기업이다. 그렇게 된 지 오래다. 사물인터넷, AI, 빅데이터 처리, 블록체인까지…선진 기술을 다 내재화했다. 여행 소비자뿐 아니라, 서비스 제공자들도 모이는 ‘플랫폼’이 될 잠재력이 크다. 사실 여행이 신산업도 아닌데, 그 가치를 끌어올려 산업을 혁신한다는 건 쉬운 일 아니다. 그런데 야놀자는 소비자 만족도와 서비스 제공자의 생산성을 다 높일 수 있는 기술을 갖췄다.
알려졌던 규모(1조원)보다 더 많이 투자했다. 왜 2조원?
잘못 알려진 거다. 비전펀드 내부에도 ‘야놀자에 그렇게까지?’라는 소수 의견도 있었다. ‘한국에서 1등’이라는 건 비전펀드가 투자해야할 이유로 부족하다. 야놀자가 앞으로 더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란 믿음이 필요했다. 그런데 손 회장이 결정했다. ‘묻고 더블로 가’라고.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연합뉴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연합뉴스]

손 회장은 야놀자의 뭘 보고 확신했나
기술기업으로서 가치, 특히 AI를 예약시스템 등 다양한 서비스에 구현한 기술력 등에 감동했다. 그는 에어비앤비에 투자하려고 수차례 검토해봤고, 여행·숙박 분야에 투자도 여러번 했다. 손 회장이 ‘야놀자 지분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라’고 주문했다.
애초에 야놀자에 왜 관심갖게 됐나.  
4~5년 전부터 지켜봤다. 그런데 어디까지 성장할지 의구심이 좀 있었다. 비전펀드는 대체로 기업가치 1조원일 때 투자해서 10조짜리 회사가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에 코로나19로 여행산업이 붕괴되다시피 했는데, 전세계 여행 업계에서 야놀자만 ‘유일하게’ 성장했다(매출 1920억원, 전년대비 43.8%↑). 손 회장도 이 점을 높이 샀다. 이수진 대표에게 ‘이런 실행력으로 비전펀드와 더 큰 도전을 함께 해보자’고 했다.
야놀자는 국내에 상장하려고 했었다. 향후 미국에 상장하나.
투자 과정에서 그 누구도 야놀자의 상장 시점이나 장소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IPO가 회사의 목적이 아니니까.
그럼 목적이 뭔가.
성장하는 것이다. 야놀자라면, 최고의 글로벌 여행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게 꿈이자 목적이어야 한다. 그걸 위해 필요하다면 IPO를 하고, 그보다 먼저 성취해야할 게 있다면 IPO는 좀 미뤄도 된다.
이수진 야놀자 창업자 겸 총괄대표. [사진 야놀자]

이수진 야놀자 창업자 겸 총괄대표. [사진 야놀자]

비전펀드는 거기에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나.
여행 준비에서 호텔 예약은 극히 일부다. 모빌리티, 공연이나 액티비티, 식당 예약, 콘텐트⋯ 다 필요하다. 비전펀드가 전세계에서 투자한 기업들 중에 야놀자와 접점 있는 곳이 아주 많다. 이를 잘 연결하는 작업을 도울 거다.

국적, 벤처투자에서 의미없다

비전펀드2는 최근 3개월 동안에만 90개 가까운 기업에 투자했다. 하루에 1개꼴이다. 위워크·우버 등 한 곳에 수조씩 투자하던 비전펀드1 때와 달라졌다. 특히 올 상반기엔 한국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잇따랐다. 문규학 매니징 파트너는 영상자막 번역 미디어기업 아이유노(1800억원), AI 교육솔루션 기업 뤼이드(2000억원)에 대한 투자도 총괄했다.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한국 스타트업 투자가 늘어난 배경은.
한국 벤처에 세대 교체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 20년간 게임, 전자상거래, 포털이 주류였지만 5~6년 전부터 분야별로 기존 시장의 질서를 깨는 새로운 기업들이 나온다. 쿠팡은 그런 상징적 기업이다. 비전펀드는 규모가 좀 있는 투자를 하기 때문에, 그동안 이들의 성장을 기다렸다. 검토할 기업들이 더 있다.
쿠팡 상장 이후, 한국에 대한 글로벌 자본의 관심이 커진 건가.
벤처투자에서 국가 단위로 시장을 보는 건 의미없다. 창업자 국적이 뭐고 기업 위치가 어디든, 글로벌 자본은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할 기업에 투자한다. 최근 한국에 그런 기업들이 눈에 띄고 있는 건 맞다. 이제 국적 얘기보단, 해외 나가서 더 크게 성장하려는 스타트업이 늘어나면 좋겠다. 아이유노는 한국인이 창업했지만 본사는 해외다. 이런 창업자가 늘어나는 것도 세대 교체다.
중국이 규제를 강화하니, 비전펀드 자금이 한국 등에 간다는 해석도 있는데.
아니다. 벤처투자와 주식투자는 다르다. 우린 투자지속 기간이 길다. 짧게는 4년, 길게는 10년. 중국에서 5년 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알겠나. 비전펀드의 중국 전략은 변하지 않았다. 투자할 만한 기업이면 투자한다. 엊그제도 중국 스타트업 2곳에 투자했다.
비전펀드2는 많은 기업에 더 작게 투자한다. 왜 달라졌나.
기업가치 1조 이하 스타트업의 성장 패턴이 코로나이후 크게 달라졌다. 갑자기 훅 큰다. 조기에 발굴하는 게 중요해졌다. 손 회장은 또 ‘AI 모멘텀이 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컨셉 수준이 아니라 검증할 수 있는 수준으로 AI 기술을 가진 기업엔 빨리 투자한다. 뤼이드가 딱 그런 경우다.
뤼이드 장영준 대표가 사내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 뤼이드]

뤼이드 장영준 대표가 사내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 뤼이드]

뤼이드는 왜 투자했나.
메가스터디 류의 인터넷강의가 ‘오프라인 교육을 온라인으로’ 한번 성장시켰지만, 그 온라인 교육을 다시 혁신한 기업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뤼이드가 AI로 개인화된 학습 및 시험 시장에 도전한다기에, 지켜보고 있었다. 한국서 창업했지만 미국 등 글로벌 교육시장에서 성과낼 기업이다.
아이유노는 한국 소프트뱅크벤처스에서 먼저 투자한 곳이다.
“소프트뱅크벤처스가 발굴한 기업에 비전펀드가 후속 투자에 참여한 경우다. 아이유노 외에 동남아 토코피디아도 그랬고. 앞으로도 이런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

동남아, 한국 기술 스타트업에 기회 

동남아는 한국 스타트업에 어떤 기회인가.
동남아는 그 자체로 글로벌 시장이다. 스타트업들이 아세안 6억8000명 규모 시장을 다 먹어보겠다며 사업한다. 다만, ‘딥테크’, 즉 심층기술 기반 스타트업은 많지 않다. 실리콘밸리나 중국, 한국, 이스라엘 제외한 대부분 나라가 사실 그렇다. 한국 기술 기업이 동남아의 서비스 시장과 만나면 기회가 있다. 똑똑한 대기업들은 동남아 유니콘에 이미 투자하고 있는데, 그런 도전이 대기업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맡고 있는 동남아 모빌리티 기업 ‘그랩(Grab)’이 나스닥 상장 준비 중이다. 
그랩은 미국 증시에 상장하는 최초의 동남아 기업이 될 것이다. 규모도 꽤 클 것이고. 동남아의 벤처 역사는 10년 정도 된 셈인데, 한국보다 훨씬 빠르게 나가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고 있어, 10조원 이상 규모의  평가를 받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벤처캐피탈리스트란.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업이다. 기도하듯 기다리기보단, 기업과 아주 다이내믹한 교감이 필요하다. 기업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꾸준히 궁금해 해야 하고, 필요하면 조언도 한다. 그러나 조급증을 가져서도, 내 판단을 과신해서도 안 된다. 잘할 것 같은 기업이 실패하기도 하고, 소식이 없어 망한 줄 았았던 기업이 무섭게 성장하기도 한다. 그런 창업가들로부터 배우는 게 벤처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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