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수술실 CCTV’ 이낙연 ‘토지독점규제’…與 입법경쟁

중앙일보

입력 2021.07.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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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여권 대선주자인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왼쪽)와 이재명 경기지사. 연합뉴스

여권 대선주자인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왼쪽)와 이재명 경기지사. 연합뉴스

“아주 논쟁이 심한 차별금지법, 이런 건 날치기 하면 안 되고 사회적 타협을 통해서 계속 논쟁하고 합의에 이르러야 되는데 정말로 필요한 민생에 관한 것 있지 않나. 이런 건 과감하게 날치기 해줘야 된다.”

지난 15일 이재명 경기지사가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한 이 말은 한때 정치권을 긴장시켰다. 야권에선 “의회 민주주의를 묵살하고 국민을 우습게 보는 것이 참으로 실망스럽다”(유승민 전 의원)는 반응이 나왔지만 민주당 내부의 긴장은 이유가 달랐다. 비(非)이재명계로 분류되는 한 수도권 의원은 “이 지사가 자신의 정책 테마를 실현하기 위해 지나치게 당을 압박하려 든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걸린 이번 추경안 외에도 자신이 이슈화한 입법 현안에 대해선 강행처리를 불사해야 한다는 주문을 이어가고 있다. 이 지사는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은 이미 충분히 논의가 성숙했다”며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처리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이 외에도 ▶개 식용 금지법 ▶공무원 부동산 백지신탁 의무화법 ▶광주 철거사고 방지법 등의 정기국회 처리를 도모하고 있다. 지난달 페이스북에선 “수술실 CCTV 법안을 당론 채택해달라”며 당 지도부를 압박했고 지난 5일에는 여야 국토교통위 소속 의원 30명에 ‘광주 철거사고 방지법’을 촉구하는 서한을 띄웠다.

이낙연 “대토지 보유 제한” 맞불…경쟁 본격화

그러자 추격자들도 속속 입법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이낙연 전 대표는 지난 15일 ‘토지독점규제 3법’(택지소유상한법 제정안 및 개발이익환수법·종합부동산세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이 중 택지소유상한법 제정안은 국민 1인당 1320㎡(400평) 이상의 택지를 소유할 수 없게 하는 내용이다. 이 전 대표는 강훈식·전용기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게임 셧다운제 폐지안’에 대해서도 “(셧다운제는) 한국에만 있는 기이한 규제”(지난 13일)라고 동조했다.

여권 대선주자 입법경쟁.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여권 대선주자 입법경쟁.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기관의 공매도 상환 만기 기한을 ‘무기한→6개월’로 단축하는 내용의 ‘공매도 불평등 개선법’을 내겠다고 예고했고 박용진 의원은 지난해 6월 자신이 대표 발의한 ‘가상화폐 투자자 보호법’(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의 정기국회 처리를 추진한다. 김두관 의원도 기본자산법 제정안의 정기국회 통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들이 앞다퉈 내놓은 법안들은 모두 사회적으로 찬반이 첨예하게 갈린다는 게 공통점이다. 수술실 CCTV 의무화법에 대해선 의료계의, 개식용 금지법에 대해선 개식용 업계와 일부 소비자의 반발이 거세지만 이 지사는 “효율적인 법안일수록 저항이 거세다”(지난달 1일 페이스북 등)며 밀어붙이고 있다. 이 전 대표의 택지소유상한법에 대해선 경쟁자인 정 전 총리조차 “공급을 어렵게 하고 가격상승을 부추기는 정책”이라는 우려를 내놨지만 이낙연 캠프에선 “지지층의 호응이 적지 않다”는 반응이다.

과반 의석과 후보 조기 선출 맞물리며 진풍경 

대선 주자들이 당선 후 공약이 아닌 당장의 입법 우선순위를 두고 다투는 건  낯선 풍경이다. 단독 입법이 가능한 171석 거여와 시기적으로 정기국회와 9월 대선 후보 선출이 맞물리는 특수 상황이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입법은 정책 의지를 과시하기 가장 좋은 수단”이라며 “과반 의석이라 마음만 먹으면 뚝딱 처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린 것 같다”고 말했다.

2019년 이재명 경기지사가 국회에서 '수술실 CCTV 국회는 응답하라!' 토론회를 열었다. 이 지사는 당 외곽에서 입법을 촉구하며 주목을 받아왔다. 뉴스1

2019년 이재명 경기지사가 국회에서 '수술실 CCTV 국회는 응답하라!' 토론회를 열었다. 이 지사는 당 외곽에서 입법을 촉구하며 주목을 받아왔다. 뉴스1

경쟁을 촉발한 직접 원인이 된 건 1위 주자의 캠페인 전략이다. ‘이재명은 합니다’라는 슬로건을 앞세운 이 지사에겐 ‘이재명표’ 입법이 곧 대선 캠페인이다. 이재명 캠프 소속 의원은 “9월 후보 선출 이후 연말까지 입법과 예산을 통해 본선을 대비하려는 전략이 있다”며 “단독 처리 여건을 갖추고도 정기국회에서 입법 성과가 없다면 유권자들이 우리 다른 공약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캠프 관계자는 “경기도민이 느끼는 정책 효능감을 확산시키기 위해서도 이재명표 입법 실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세균·박용진도 가세...일각선 “부작용 우려” 

지도부는 이런 경쟁이 달갑지만은 않은 눈치다. 민주당 원내지도부 소속 의원은 “국민 동의를 받은 일부 법안은 단독 처리할 수 있겠지만, 대선주자가 원하는 모든 법안을 처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당내에선 “지난해 7월 단독 처리한 ‘부동산 임대차 3법’이 4·7 보궐선거의 패인으로 작용했던 것처럼 무리한 갈등 법안 처리가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수도권 재선 의원)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인 김두관, 박용진, 이낙연, 정세균, 이재명, 추미애 후보(왼쪽부터). 뉴스1

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인 김두관, 박용진, 이낙연, 정세균, 이재명, 추미애 후보(왼쪽부터). 뉴스1

전문가들은 다른 각도에서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입법은 국회가 주도해 공론화와 여론 수렴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며 “주자들의 득표 전략이 입법으로 이어지면 절차적 과정이 생략돼 정책의 공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휘락 교수는 “행정부 수반이 되겠다는 주자들이 선(先) 입법 경쟁을 펼쳐지는 것 자체가 삼권분립 정신을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진곤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권 주자들이 무리하게 법안을 통과시켰다가 만약 정권이 교체되면 이를 되돌리는 과정에서 갈등과 혼란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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