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日오염수 제소 보고서 완성...외교부 아닌 법무부 주도

중앙일보

입력 2021.07.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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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오염수 탱크가 설치된 후쿠시마 제1원전 전경. 교도=연합뉴스

오염수 탱크가 설치된 후쿠시마 제1원전 전경. 교도=연합뉴스

정부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와 관련,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제소하기 위한 검토 보고서를 완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제 쟁송인데도 이례적으로 외교부가 아닌 법무부가 이를 주도했다.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 시나리오 검토
소송서 정부 대리할 로펌 명단도 작성
국제법 해석ㆍ대응, 외교부 소관인데…
"'외교 해법' 우선시해 배제됐나" 관측
전문가 "외교적 파장 간과될 우려"

18일 복수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달 약 50쪽 분량의 보고서를 완성해 청와대에 보고했다. 청와대는 이를 토대로 관계부처 회의도 소집했다.
보고서의 내용은 오염수 방류 문제를 해양법재판소에 제소하기 위한 시나리오 등으로, 실제 제소할 경우 정부를 대리할 로펌들의 명단도 이미 추려져 있다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제소 ‘여부’가 아니라 제소를 전제로 한 보고서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1순위에 올린 로펌은 국제중재에 전문성을 가진 미국계 로펌 A사였다.

지난 문재인 대통령이 4월14일 주한 대사 신임장 제정식에서 기념촬영 후 이동하는 아이보시 고이치 일본대사를 바라보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지난 문재인 대통령이 4월14일 주한 대사 신임장 제정식에서 기념촬영 후 이동하는 아이보시 고이치 일본대사를 바라보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이는 앞서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의 방류 결정 직후인 지난 4월 14일 해양법재판소에 대한 잠정조치 요청과 제소 검토를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일본을 압박할 수 있는 대응카드로서 고려 중인 셈이다.

하지만 이를 국제법에 대한 해석과 대응을 담당하는 외교부가 아니라 법무부가 주도하는 데 대해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실제 외교부는 법무부가 작성한 제소 관련 보고서도 공유 받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 4월 28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바다는 쓰레기통이 아니다’며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결정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4월 28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바다는 쓰레기통이 아니다’며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결정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이를 두고 외교적 협상을 통한 해결을 중시하는 외교부의 특성 때문에 논의 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강공’을 바라는 청와대의 입장과 온도 차가 났기 때문이라는 취지다.

실제 외교부가 일본의 방류 결정 전 국제 로펌에 자문받은 결과는 ‘제소는 힘들다’였다. 지난 4월 2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외교부가 해외 로펌을 통해 검토해서 (제소는)안 된다는 상황, 법률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확인했는데 이 내용을 청와대에는 보고하지 않았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5월 19일 오후 울산 앞바다에서 어업인들이 배를 타고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규탄하는 해상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19일 오후 울산 앞바다에서 어업인들이 배를 타고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규탄하는 해상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청와대는 정부 출범 초기부터 외교부에 대한 불신이 깊었다. 외교부가 해외로펌에서 자문받은 대로 유엔해양법협약 절차상의 제소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면, 청와대는 이후 정부 내 논의 과정에서 외교부에 힘을 실어주지 않으려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부 당국자는 “법무부가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해서 논의 과정에서 외교부가 배제되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다. 부처 간에 주기적으로 원활하게 소통과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구윤철 국무조정실장이 지난 4월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관련 일본 동향 및 우리 정부 대응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구윤철 국무조정실장이 지난 4월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관련 일본 동향 및 우리 정부 대응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해양법재판소 제소를 검토하며 외교부가 아닌 법무부가 주도권을 쥐는 것은 일본과 국가 간 소송전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하는 데 있어 외교적 영향 등이 다각적으로 고려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외교부는 우선 일본과 협의를 통해 투명하고 객관적인 정보 공유를 이끌어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최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후쿠시마 원전수 검증단에 한국 전문가가 포함된 것도 한ㆍ일이 이런 협의를 통해 일부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정부 차원에서 중재재판 제안 정도는 충분히 고려해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외교 사안인데, 외교부가 아닌 법무부가 키를 잡고 진행할 경우 외교적 측면을 감안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관련 일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후쿠시마 원전 사고 관련 일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해양법재판소 제소가 실제로 얼마나 유효성 있는 카드가 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앞서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때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카드를 썼다. 2019년 11월 한ㆍ일이 이를 봉합하기 위한 합의를 하며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해소를 위한)한ㆍ 일 간 수출 관리 정책 관련 대화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동안 한국은 WTO 제소 절차를 정지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WTO 제소가 일본을 수출 규제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는 카드가 됐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IAEA가 사실상 일본의 결정을 지지하는 데다, 당시엔 한ㆍ일 사이를 오가며 중재자 역할을 했던 미국이 오염수 방출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의 투명한 결정에 감사한다”(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며 일본 쪽 손을 들어주는 형국이다.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은 지난 5월 28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에서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만나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에 대한 우려를 전했다. 연합뉴스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은 지난 5월 28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에서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만나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에 대한 우려를 전했다. 연합뉴스

또 해양법재판소 제소가 법적 절차상 가능한 선택지이지만, 오염수 방류로 인한 피해 입증 책임은 한국에 있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기도 하다. 양국 간 쟁송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외교적 협상을 통한 해법 도출도 어려워지고, 시간도 오래 걸려 그사이 일본의 오염수 방류가 시작돼버릴 수도 있다.(2023년 4월 예상)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해양법재판소 제소 검토는 정부가 당연히 준비해야 하는 안이지만, 핵심은 객관적ㆍ과학적 접근”이라며 “일본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처럼 비치면 오히려 불리하다. 외교적 협의를 통해 검증 참여, 정보 공유 등 객관적 절차를 우선 밟고 그래도 일본이 우려를 해소하지 못할 경우 최후의 선택지로 제소 카드를 활용하는 게 적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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