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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문화어 사용하라".. 北, '부르주아 침투'와의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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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들고 덤벼드는 대적보다 더 위험한 것은 부르주아 사상 문화적 침투책동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8일 "청년들은 우리 민족 고유의 본태가 살아 숨 쉬는 평양문화어를 적극 살려 써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북한이 사회 전반적으로 기강 단속을 강화하면서 특히 청년층의 사상 동요를 막는 데 안간힘을 쓴다는 분석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7일 당이 부르는 어렵고 힘든 부문들로 용약 탄원 진출하는 청년들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청년들의 탄원 열풍이 계속되고 있다고 선전했다. '탄원'이란 스스로 청원하는 행위를 말한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7일 당이 부르는 어렵고 힘든 부문들로 용약 탄원 진출하는 청년들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청년들의 탄원 열풍이 계속되고 있다고 선전했다. '탄원'이란 스스로 청원하는 행위를 말한다. 노동신문. 뉴스1.

신문은 이날 '청년들은 사회주의 사상과 문화의 체현자가 되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세상에 우리의 평양문화어처럼 아름답고 고상하며 풍부한 언어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청년들이 평양문화어를 "체질화"해 "온 사회에 아름답고 건전한 언어생활 기풍을 확립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언어가) 사람의 품격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건전한 사상 없으면 혁명 말아먹어" #청년층 중심 언행 단속 고삐

신문에서 언급한 '평양문화어'는 북한의 표준어다. 1960년대부터 김일성 주석의 교시에 따라 쓰이게 됐다. 북한은 1940년대부터 언어에서 '비혁명적 요소'를 제거하는 이른바 '말다듬기 운동'을 시작했는데, 북한은 문화어가 "남북한이 언어의 이질화를 막고 단일성을 유지하기 위한 한민족 언어의 본보기"라고 주장해왔다.

북한은 언어적 측면에서 문화어가 한국의 표준어보다 자주성 및 정통성 차원에서 우위라는 점도 꾸준히 내세웠다. 지난 3월 노동신문은 "평양문화어를 생활에서 적극 구현해나야 한다"며 "불건전한 사상문화 침투로부터 민족성을 고수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다만 최근 들어선 북한 당국이 단순히 국가 상징 중 하나로서 문화어를 앞세울 뿐 아니라 사회주의 수호 움직임과 맞물려 활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는 "최근 들어 북한은 언어 사용 문제를 비사회주의ㆍ반사회주의와 연계하고 있다"며 "김정은 정권 초기에 북한은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가관을 정립하고자 했지만 이 같은 세계화 노력이 결국 좌절되면서, 이제 외부 위협으로부터 내부의 것을 지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7일 청년들의 탄원 열풍이 계속되고 있다고 선전했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7일 청년들의 탄원 열풍이 계속되고 있다고 선전했다. 노동신문. 뉴스1.

이날 보도에선 북한의 청년세대에 대한 당의 인식도 드러났다. 신문은 "(청년세대는) 감수성이 빠르고 새것에 민감하다"며 "자라나는 새 세대들이 건전한 사상 의식과 혁명성을 지닐 때 나라의 앞날은 창창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사회제도도 혁명도 말아먹게 된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북한의 '언행 단속'은 청년층이 집중 대상이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8일 국회 정보위에서 북한 당국이 청년층을 대상으로 '남친'(남자친구), '쪽팔린다'(창피하다)는 표현이나 남편을 '오빠'로 부르는 등 한국식 말투에 대해 '혁명의 원수'로 규정하고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정보위 야당 간사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북한에서 비사회주의 행동 단속에 걸리는 연령대의 80%가 10대부터 30대, 우리로 치면 MZ세대"라며 "(북한 당국은) 북한판 MZ세대가 ‘동유럽 (혁명 당시) 배신자’와 같이 등장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17일 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주재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지난달 17일 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주재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제6차 당 세포비서 폐회사에서 "청년들의 옷차림, 머리단장, 언행을 통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북한 선전매체들은 한국의 청년들을 향해 'N포세대', '이태백' 등 용어를 쓰며 깎아내리는 반면, 자국 청년들 중 험지 근무를 자원하는 경우를 모범 사례로 소개하며 치켜세우고 있다.

경제난 심화로 인한 민심 동요를 막기 위해 젊은 층부터 사상 무장에 나선 것인데, 여기엔 김 위원장의 개인적인 성장 경험도 한 몫 했다는 평가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 위원장은 본인이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한 경험에 비추어 젊은이들이 새로운 언어와 문화에 쉽게 스며든다고 체감한 듯 하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은 지난해 12월 반동문화사상배격법을 제정해 한국 영상물을 시청하거나 유포할 경우 최대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실제 처벌 사례는 아직 북한 매체에서 보도되지 않았지만, 북한 당국이 내부 결집을 목적으로 사실상 대중 공포 정치를 이어간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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