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의 세계를 캠핑카에”…골프채 대신 공구 든 이 남자

중앙일보

입력 2021.07.18 09:00

지난 14일 오전 문성호씨가 캠핑카 제작소에서 자재 손질에 한창이다. 사진 문성호씨 제공

지난 14일 오전 문성호씨가 캠핑카 제작소에서 자재 손질에 한창이다. 사진 문성호씨 제공

지난 14일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한 공장. 대화가 힘들 정도로 울려 퍼지는 기계음을 뒤로하고 한 남성이 캠핑카를 손질하고 있었다. 땀이 뚝뚝 떨어졌지만, 검은색 장갑을 낀 그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자기 일을 두고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라 했다. “캠핑카를 만들어 달라는 이유는 다양해도 결국 각자 세상을 조금 달리 보고 싶은 마음 아니겠냐”는 게 그의 생각이다. 매일 늦은 밤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이곳은 문성호(33)씨가 운영하는 캠핑카 제작소다.

캠핑카와 사랑에 빠진 듯 보였지만 성호씨가 정작 이 일을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몇 년 전까지 골프선수였다. 골프가 취미였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골프채를 손에 쥐여줬다. 타의로 시작했지만 제법 성과를 냈다. 프로 무대를 누볐고 레슨 수업도 이어졌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엔 늘 허전함이 있었다.

어린 시절 성호씨의 방은 항상 플라스틱 모델로 가득했다. 무언가를 만들고 고치는 일을 동경했던 그는 길을 걷다가도 자동차 정비소와 튜닝업체를 보면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골프에 몰두하면서도 틈틈이 자동차를 분해·조립하던 그였다. 더 늦기 전에 오래전 꿈을 따라가기로 했다. 1주일 밤낮을 고민한 그는 결국 주위의 만류에도 13년간 함께한 골프채를 내려놓았다.

공황장애 딛고 되찾은 꿈

문씨가 승합차를 개조해 만든 캠핑카의 내부. 사진 문성호씨 제공

문씨가 승합차를 개조해 만든 캠핑카의 내부. 사진 문성호씨 제공

꿈을 되찾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다. 무작정 인천의 한 의전 차량 튜닝회사로 찾아가 일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부푼 꿈을 품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지만, 현실은 혹독했다.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을 의전 차량으로 개조하는 건 생각보다 세밀한 작업이었다. 매 순간 긴장과 압박 속에서 2~3년을 버티다 보니 선수 때도 겪은 적 없는 공황장애가 왔고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이 정도면 포기할 법도 했지만 성호씨는 그만두지 않았다. 치료를 받으면서도 틈틈이 목공과 캠핑카 튜닝 일을 배웠다. 마음의 병과 싸우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던 그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 2월 새 자동차 관리법 시행규칙과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이 시행되면서 캠핑카로 튜닝할 수 있는 차종이 늘었다. 캠핑카 튜닝시장이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허름한 봉고차를 ‘나만의 캠핑카’로

문씨가 도면작업을 마친 뒤 나무를 재단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문성호씨 제공

문씨가 도면작업을 마친 뒤 나무를 재단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문성호씨 제공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모아둔 돈을 모두 털어 올해 초 캠핑카 제작소를 차렸다.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도색 일을 하던 지인과 함께 그만의 캠핑카 개조 매뉴얼을 만들었다. 먼저 상담을 거쳐 고객의 취향을 반영한 도안을 만들었다. ‘OK’ 사인이 떨어지면 차량 내부를 탈거하고 바닥과 천장을 손질한다. 이어 단열·배선작업을 하고 도면에 따라 캠핑카의 전체적인 모양을 잡아주는 큰 틀을 만든다.

타일을 시공하고 CNC 목공으로 세부 개조에 들어가면 어느덧 작업의 중반에 이른다. TV, 전자레인지, 인덕션, 냉장고, 환기장치 등을 기본으로 하되 주문에 따라 일부를 더하거나 뺐다. 침상 매트와 커튼을 넣고 관할 구청에 구조변경 승인신청을 하면 2~3주에 걸친 작업이 끝난다. 약 1300만원으로 허름했던 ‘봉고차’가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캠핑카’로 바뀌는 순간이다.

“처음 품었던 꿈 잊지 않길”

문성호씨는 매일 밤 늦은시간까지 캠핑카 제작소에서 작업에 매진한다. 사진 문성호씨 제공

문성호씨는 매일 밤 늦은시간까지 캠핑카 제작소에서 작업에 매진한다. 사진 문성호씨 제공

최근 성호씨는 제작소 규모를 키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캠핑 인구가 늘어나면서 튜닝 의뢰가 한 달에 10건 이상 들어오면서다. 때론 까다로운 주문과 요구에 벅차기도 하지만, 완성된 캠핑카를 보며 기뻐하는 손님을 보면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고 했다. 하루빨리 숙련공으로 성장해 코로나19 시대에 가족, 친구, 연인을 위해 그들만의 세계, 즉 ‘당신만의 캠핑카’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꿈을 찾아 먼 길을 돌아온 이답게 그는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을 무작정 하라고 하진 못하겠어요. 다만 아직 처음 품었던 꿈을 기억하고 있다면 늦더라도 언젠간 그 길을 다시 걷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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