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아니, 우린 브랜드 경험을 판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17 12:47

업데이트 2021.07.17 13:23

H&M 그룹의 북유럽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아르켓'이 아시아 최대 규모의 매장을 콕 집어 신사동 가로수길에 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이곳은 지하 1층에서부터 지상 3층에 이르기까지 기존 패션 브랜드의 매장과는 사뭇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매장 안은 여유롭고 모든 제품은 군더더기 없다. 매장 내 비건 카페에서의 커피타임은 북유럽의 어느 카페의 한적함까지 담아낸다. 패스트패션 매장의 분주한 브랜드 경험에 지친 MZ세대의 탈출구로 떠오른 아르켓 가로수길점만의 '슬로우 브랜드 경험'을 소개한다.

H&M 그룹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아르켓'의 가로수길 매장. 아시아 최대 규모 매장이다. [사진 아르켓 공식SNS]

H&M 그룹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아르켓'의 가로수길 매장. 아시아 최대 규모 매장이다. [사진 아르켓 공식SNS]

어떤 공간인가요.

신사동 가로수길에 지난 4월 문을 연 아르켓의 아시아 두 번째 매장입니다. 첫 번째 매장은 여의도 '더 현대서울'에 있어요. 한국을 필두로 아시아에 진출한 이유를 매장에 가보니 바로 알겠더군요. 아르켓에는 한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실용적이고 깔끔한 타임리스(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아이템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어요. 북유럽 스타일을 지향하는 아르켓은 토종 한국인인 저희 취향도 충분히 만족시켰습니다. 한편으로 아르켓은 친환경과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브랜드이기도 해요. 리사이클 소재, 지속 가능한 소재들을 사용합니다. 그동안 패스트패션을 소비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사람이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처음 아르켓을 알게 된 건 패션 유튜버 '런업'의 '올여름 흰 반팔 티셔츠에 박혀 있어야 할 브랜드들'이란 영상을 통해서였어요. 아르켓이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던 1년 전인데, 몇몇 패션 유튜버가 추천할 만큼 괜찮은 브랜드로 입소문을 타고 있었습니다. 속옷이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체형은 커버 해주고, 적당한 두께로 통기성 좋은 여름 흰 티 찾기에 목 말랐던 저는 너무 공감되더라고요. 그래서 이곳에서 처음 구매한 게 바로 흰 티셔츠였어요.

[민지리뷰]
라이프스타일 숍
아르켓 가로수길점

관심이 생긴 이유가 있나요.

처음 이 공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아르켓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어요. 더군다나 아르켓이 오픈하는 건물이 오랫동안 비어있던 패션 브랜드 '난닝구'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네프호텔'이 있던 곳이란 걸 알고 더욱 궁금해졌어요. 좋아했던 분위기의 건물이었는데 어떤 식으로 변할지 호기심이 일었거든요. 아르켓의 정체성인 지속가능성을 증명이라도 하듯, 외관의 큰 변화 없이 매장을 오픈했습니다. 제가 좋아했던 건물 안에 아르켓 만의 분위기를 더한 스토어가 탄생한 것이죠.

왜 하필 이곳을 소개하려 하나요.

제가 경험한 좋은 브랜드 경험을 꼭 소개하고 싶었답니다. 같은 그룹에서 운영하는 H&M이나 또 다른 SPA 브랜드 '자라'에서는 어떤 경험을 했는지 묻고 싶어요. 많은 옷이 걸려 빡빡한 옷걸이, 길게 늘어선 탈의실의 줄, 세일 기간 여기저기 널브러져있는 옷…. 많은 사람이 공감할 거예요. 아르켓의 경험은 분명 달랐어요. 채광이 가득 드는 건물, 꼭 필요한 옷만 걸린 깔끔한 매장, 널찍한 쇼핑 동선, 2층 카페에서 풍기는 고소한 빵 냄새는 무척 여유로웠어요. 질 좋은 옷과 여유로운 매장 분위기는 고객의 태도까지 점잖게 만들고 있었어요. 쇼핑백·제품포장 등 매장에서의 모든 경험이 일관적이었습니다.

아르켓 가로수길점 매장 전경. 기존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공간과 달리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사진 오해인]

아르켓 가로수길점 매장 전경. 기존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공간과 달리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사진 오해인]

2층의 카페 공간. 이곳 또한 여유있는 공간 배치로 이곳이 쇼핑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진 오해인]

2층의 카페 공간. 이곳 또한 여유있는 공간 배치로 이곳이 쇼핑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진 오해인]

첫 인상이 좋았던 것 같아요.

여유로운 매장에서 질 좋은 상품을 만져보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경험을 하면서 아르켓이 가진 브랜드 정체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어요. 먼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답게 의류 외에도 다양한 상품들이 어우러져 진열된 게 눈에 띄었어요. 액세서리와 홈가드닝 상품, 심지어 음료까지도 함께 진열했더군요. 특히 2층에 자리한 홈데코 상품들이 기억에 남는데, 상품 수가 많지 않았지만 ‘아르켓다움’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어요. 방문하기 전부터 2층 비건 카페에 대해 기대를 많이 했어요. 이곳에서 비건 쿠키는 처음 맛봤는데 특유의 고소한 매력에 빠져버렸어요.

북유럽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공간이라 의류는 물론이고 패브릭, 화분, 음료까지 브랜드 DNA가 담긴 다양한 제품을 주요 공간에 진열해 보여준다. [사진 오해인]

북유럽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공간이라 의류는 물론이고 패브릭, 화분, 음료까지 브랜드 DNA가 담긴 다양한 제품을 주요 공간에 진열해 보여준다. [사진 오해인]

공간의 여유로움을 한껏 느끼게 해준 화분과 식물 제품. [사진 오해인]

공간의 여유로움을 한껏 느끼게 해준 화분과 식물 제품. [사진 오해인]

음료를 진열하고 파는 패션 브랜드 숍이라니! [사진 오해인]

음료를 진열하고 파는 패션 브랜드 숍이라니! [사진 오해인]

이곳이 특별해진 순간을 떠올려주세요.

쇼핑을 마치고 카페에서 주문하니 쿠키 4분의 1 조각을 곁들여 주더군요. 커피잔에 올려진 작은 쿠키 조각이 참 귀엽더라고요. 물론 맛도 훌륭했고요. 커피와 쿠키 한 조각을 먹으며 창밖으로 가로수길을 보며 잠시 한국을 떠나 북유럽의 작은 카페에 온 것 같았어요. 기존 접했던 SPA 브랜드 공간에선 느낄 수 없었던 경험이었어요.

아르켓 카페의 비건 쿠키들. 처음 맛본 비건 쿠키는 예상 외로 달지 않고 고소한 특유의 매력이 가득했다. [사진 오해인]

아르켓 카페의 비건 쿠키들. 처음 맛본 비건 쿠키는 예상 외로 달지 않고 고소한 특유의 매력이 가득했다. [사진 오해인]

이곳이 특별했던 그 순간을 사진으로 담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시나몬롤, 그리고 비건 쿠키 한 조각까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어우러져 마치 북유럽의 어느 카페에 온 듯 했다. [사진 오해인]

이곳이 특별했던 그 순간을 사진으로 담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시나몬롤, 그리고 비건 쿠키 한 조각까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어우러져 마치 북유럽의 어느 카페에 온 듯 했다. [사진 오해인]

이런 컨셉트의 공간에서 눈여겨볼 점은 무엇일까요.

브랜드 정체성을 매장에 녹이고 고객이 문을 여는 순간부터 나가는 순간까지 통일된 브랜드 경험을 선사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그런 점에서 아르켓은 좋은 사례입니다. 아르켓은 매장에 사계절 옷을 모두 디스플레이 해요. 그 이유는 한 철 입고 버리는 옷이 아닌 '지속가능한 옷'을 추구하기 때문이죠. 반팔과 긴 바지, 패딩, 조끼, 셔츠들이 같은 공간에 조화롭게 스타일링해 계절별로 아르켓의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공간 기획자를 칭찬한다면요.

헤비 웨이트 셔츠(HEAVY WEIGHT- SHIRTS)의 디스플레이를 예로 들어볼게요. 탄탄하고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옷이란 걸 자랑하듯 옷을 뒤집어 유리관 안에 진열하고 있었어요. 같은 옷이더라도 마치 전시작품을 보듯 옷을 바라보니 꼼꼼한 바느질에 감탄하게 됐답니다. 이런 진열방식은 고객들이 옷을 더 세심하게 바라보게 해요. 또 그만큼 제품에 자신감도 있다는 말이겠죠.

티셔츠 하나를 전시하듯 진열해 놓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진 오해인]

티셔츠 하나를 전시하듯 진열해 놓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진 오해인]

지속가능성 컨셉트의 다양한 패션 액세서리와 음료가 함께 전시된 모습은 기존의 패션 매장 디스플레이 공식을 깬다. [사진 오해인]

지속가능성 컨셉트의 다양한 패션 액세서리와 음료가 함께 전시된 모습은 기존의 패션 매장 디스플레이 공식을 깬다. [사진 오해인]

그렇게 좋은 공간이라면 제품 가격이 높지 않나요.

가격대는 자라·H&M 보다는 높지만 코스보다는 저렴합니다. 백화점 브랜드 옷보다 퀄리티가 더 좋아 충분히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산 물건들의 가격을 되짚어보면, 헤비 웨이트 티셔츠 5만9000원, 기본 나시탑 2만9000원, 마 소재로 된 롱 원피스 12만9000원, 에코백 9000원 등입니다. 보통 상품가격은 티셔츠가 2만~3만원대, 셔츠 7만원대, 원피스 9만~15만원대, 바지 8만~10만원 대, 신발 20만원대였어요.

아쉬운 점은 없나요.

2층 라이프스타일 존을 1층으로 이동하면 화분·러그 등과 같은 라이프스타일 상품이 자연스럽게 매장 인테리어에 스며들 것 같아요. 가드닝과 인테리어 상품이 매장과 겉도는 느낌이 아쉬웠어요. 해외 매장의 경우 1층에 라이프스타일군을 배치하고 윗층에 패션군을 구성한 경우가 많은 이유가 이 때문이라 생각해요. 한 가지 더하면, 1층 카운터와 진열방식을 개선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곳에서는 옷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포장하기 때문에 대기 시간이 긴 편입니다. 줄 서 있는 고객이 볼 수 있도록 카운터 뒤쪽 벽면이나 매대에 여러 상품들을 진열해 두면 어떨까 싶어요.

'여기서 이것만은 꼭 해라'라는 게 있을까요.

아르켓 카페는 반드시 들러보세요. 한가한 주말 아침 시간을 노려본다면 창가 자리에 앉을 수 있어요. 창밖으로 보이는 가로수길 풍경과 테이블에 놓인 꽃 장식을 보는 것은 여유로움 그 자체랍니다. 카페에는 여러 비건 메뉴들이 있는데 그중 쿠키류는 정말 추천합니다.

이곳의 백미는 바로 '아르켓 카페'. [사진 아르켓 공식SNS]

이곳의 백미는 바로 '아르켓 카페'. [사진 아르켓 공식SNS]

카페의 창가 자리. 이곳에 앉아야 제대로 이 공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사진 오해인]

카페의 창가 자리. 이곳에 앉아야 제대로 이 공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사진 오해인]

이곳을 방문한 결정적인 이유가 궁금해요.

철학이 있는 공간에 끌리는 것 같아요. 많은 소비자가 똑똑해져서 브랜드의 '흉내 내기'를 단번에 알아챕니다. 브랜드만의 철학을 먼저 세우고, 그 철학을 흔들리지 않고 지켜내며 모든 공간과 경험에 고르게 드러내는 브랜드가 좋아요. 그런 점에서 아르켓은 상품·매장·인테리어·패키지·서비스경험까지 고른 브랜드 경험을 선사했어요.

이 공간을 방문한 후 바뀐 게 있다면요.

'질 좋은 옷을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그동안 가격대가 높은 브랜드 제품을 백화점이나 아울렛에서만 사야 오래 입을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곳에서의 경험으로 브랜드 철학과 제품에 대해 이해하게 됐고 호감이 생겼죠. 이들이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패션'을 보며 그동안 옷을 한 철 입고 버렸던 것에 대한 반성도 했고요. 공간이 주는 경험의 힘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요.

민지리뷰는...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소비로 표현되는 시대. 소비 주체로 부상한 MZ세대 기획자·마케터·작가 등이 '민지크루'가 되어 직접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공간·서비스 등을 리뷰합니다.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