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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반갑스무니다" 7년 뒤…한국은 왜 일본에 '을'이 됐나[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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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욱 정치팀장의 픽: 문 대통령의 도쿄행

 “박근혜 대통령님, 오늘 만나서 반갑스무니다.”
지난 2014년 3월 25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미국 대사관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왼쪽에 앉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바마 오른쪽의 박근혜 대통령에게 서툰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굳은 표정으로 눈길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다.

2014년 3월 네덜란드 헤이그 미국 대사관저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오른쪽에 앉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4년 3월 네덜란드 헤이그 미국 대사관저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오른쪽에 앉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과거사 문제로 등을 돌렸던 한·일 정상이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겨우 한 자리에 앉았던 한·미·일 정상회담의 이례적인 풍경이었다. 당시 필자는 도쿄특파원, 일본 언론들이 이 장면을 "굴욕적"이라며 자세히 보도했던 기억이 난다. 

한·미·일 공조 복원이 시급했던 미국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고노 담화 수정 움직임 등 아베의 역사 수정주의에 "실망했다"며 강하게 제동을 걸었다. 아베로선 한국과의 대화가 절실했다. 아베라면 치를 떨던 청와대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국장급 협상 재개 등을 명분 삼아 대화의 문을 살짝 열어줬다. 아베의 "반갑스무니다"와 박 대통령의 무반응, 확실하게 한국은 ‘갑(甲)’, 일본은 ‘을(乙)’이었다.

그 후 7년여의 세월이 흐른 지금, 입장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할 테니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최소 한 시간의 회담 시간을 내달라는 한국에 일본은 “정중한 대응 차원에서 15분 정도는 만나줄 수 있다”고 맞섰다.

일본 언론엔 “일단 오시면 정상회담 정도는 해 줄 수 있다”는 일본 관료들의 거만한 발언이 연일 소개됐다. 하지만 이번 방일을 한·미·일 공조와 대북 문제 진전을 모멘텀으로 만들고 싶은 문재인 대통령은 쉽게 "노(NO)"를 하지 못했다.

결말이 어떻게 날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갑과 을'의 처지는 바뀌었다.

그동안 한·일관계엔 도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위안부 합의 사실상의 불인정, 화해·치유 재단의 해산, 대법원의 징용판결, 일본의 경제보복,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과 우여곡절끝의 '종료 효력 정지', 일본 기업 자산 압류와 현금화 논란 등 수많은 일이 벌어졌다.

역사문제든, 독도문제든, 경제보복이든 '본질적 가해자'는 일본이다. 또 아베 총리 시절부터 이어져온 역사 수정주의가 양국 관계 악화의 근본 원인임도 분명하다. 하지만 최근 일본의 기고만장한 태도엔 한국이 빌미를 준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대일외교 기조의 일관성 관점에서 특히 그랬다. 문 대통령은 정부 출범 후 3년여간 ‘죽창가’로 대표되는 강경 기조를 증폭시켜왔다. 그 때마다 야당은 "국내 정치용"이란 비판을 쏟아내고, 언론들은 "양국 관계 개선"을 외쳤지만 이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 출범 뒤인 올해 들어선 "같은 정부가 맞나"싶을 정도로 완전히 달라졌다.

문 대통령이 지난 1월 신년회견 때 “2015년 (위안부)합의는 공식 합의였다. (일본 정부의 위안부 피해 배상 책임을 인정한)위안부 판결은 곤혹스럽다” "일본 기업 자산 현금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고 밝힌 것이 압권이었다.

한·미·일 공조를 통해 남북 관계를 개선해 보겠다는 계산이든, 아니면 다른 목적이 깔려있든 빈대떡을 뒤집는 듯한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국민들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에 일본은 더욱 콧대를 높였다. “한국정부가 해법을 찾아오라”며 고자세를 풀지 않고 있다.

이 정부나 여당 인사들은 툭하면 “토착 왜구”,”친일파”라고 야당에 손가락질을 해왔다. 하지만 일본의 기를 누가 살려줬느냐, 누가 일본의 콧대를 높였느냐의 관점에서 보면 '친일파'란 비판을 받아야할 사람이 누구인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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