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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일제가 맛에 반해 빼돌린 칡소···10마리 '얼룩빼기'로 부활

중앙일보

입력

정지용 시인 ‘향수’ 등장한 줄무늬 칡소 

지난 14일 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의 한 축사. 취재진을 보자 ‘씩씩’ 소리를 내며 다리를 번쩍 들어 올려 성을 내는 줄무늬 소가 보였다. 아버지에 이어 7년째 소를 키워온 최수호(29)씨는 “호랑이처럼 검은 줄무늬가 선명한 게 칡소”라며 “야생성이 워낙 강하다 보니 예방 접종할 때마다 진땀을 뺀다”고 했다. 우리 안에는 칡넝쿨로 칭칭 감아놓은 듯한 칡소가 황우(黃牛), 흑우(黑牛)와 뒤섞여 놀고 있었다.

[e즐펀한 토크] 최종권의 충청기사 왔슈 #

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의 한 축사에 사육 중인 토종 한우 칡소. 프리랜서 김성태

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의 한 축사에 사육 중인 토종 한우 칡소. 프리랜서 김성태

"칡소 아빠, 황우 엄마" 몸집 더 큰 송아지

어깨 근육이 두툼하고 콧등에는 검은빛이 돌았다. 최씨는 “칡소는 전국적으로 개체 수가 많지 않아 근친 교배가 많고, 품종 개량이 더딘 탓에 일반 한우보다 몸집이 작다”며 “인공수정 시기가 되면 좋은 씨수소를 찾기 위해 충남 천안, 경북 등 각지를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최씨는 토종 한우인 칡소를 보존한다는 자부심과 함께 고민도 있다. 수십 년을 거치며 품종 개량이 이뤄진 황우보다 칡소는 중량이 덜 나가고, 사육 기간이 길어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최씨는 “똑같은 사료를 먹여 키워도 황우에 비해 칡소 몸무게가 100㎏(생체중) 이상 덜 나간다”며 “30개월 기준 소 출하 가격은 평균 200만원 정도 낮아서 손해를 감수하며 칡소를 기르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 한우의 종(種) 보존과 농가 소득을 놓고 고민하던 충북도가 묘수를 내놨다. 우수 형질을 가진 칡소와 암컷 황우를 교배하는 방식의 ‘칡소 우량 송아지 생산’ 사업이다. 보통 칡소보다 몸집이 더 크고 질병에 강한 우수 종을 늘리는 게 목표다.

토종 한우 칡소를 복원하고 충북 청주에서 칡소와, 흑우, 황우가 한 우리에 모여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토종 한우 칡소를 복원하고 충북 청주에서 칡소와, 흑우, 황우가 한 우리에 모여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칡소 우량 송아지 10마리 출산 임박 

충북도 동물위생시험소에 따르면 내수읍 축산시험장에서 기르는 암컷 황우 10마리가 오는 10월께 개량 칡소를 출산한다. 시험소는 지난해 12월 경북 지역에서 가져온 우량 칡소 정액을 황우 난자와 인공수정 시키는 데 성공했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송아지 중 암컷을 다시 칡소(씨수소)와 재교배하는 방식으로 2025년까지 개량 칡소를 증식할 계획이다.

전순홍 충북동물위생시험소 생명자원팀장은 “우리가 아는 한우(황우)처럼 잘 자라고 칡소의 줄무늬를 가진 송아지가 태어나길 기대한다”며 “확률상으로는 황우와 칡소가 나올 확률이 각각 25%, 둘의 장점을 가진 송아지가 나올 확률을 50% 정도로 보고 있다”고 했다.

충북도가 개량 칡소 개발에 나선 건 소를 키울수록 농가 손해가 커지는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황우의 경우 거세우 기준 27~30개월 정도면 몸무게가 750㎏에 달해 출하가 가능하다. 반면 30~32개월까지 다 기른 칡소는 650㎏에 불과하다. 농가들은 생체중 1㎏당 2만원으로 따져, 칡소 한 마리를 출하할 때마다 220만~250만원의 손실을 보는 실정이다.

전순홍 충북동물위생시험소 생명자원팀장이 칡소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전순홍 충북동물위생시험소 생명자원팀장이 칡소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몸집 큰 줄무늬? 황갈색?…확률은 50% 

전 팀장은 “황우는 10마리 중 9마리가 1등급 판정을 받지만, 칡소는 1등급 이상 비율이 40.7%로 낮다”며 “칡소의 명맥을 잇는 사업은 시험장에서 유지하되, 농가에는 개량 칡소를 보급해 수익성을 높일 방침”이라고 말했다.

충북의 개량 칡소는 제주 흑돼지 개량방법을 참고했다. 제주 농가는 재래 흑돼지를 영국의 버크셔종과 결합한 비육용 흑돼지를 육성하고 있다. 재래 흑돼지는 몸집이 너무 작아 상품성이 충분한 고기를 얻기 힘들어서다.

칡소는 우리 역사와 함께한 토종 한우다. 한우라고 하면 누런색 또는 적갈색을 띠는 한우, 즉 황우만 생각한다. 하지만 한반도에는 황우를 비롯해 검은색의 흑우, 흰색의 백우(白牛), 검푸른 색의 청우(靑牛) 등 다양한 소가 2000년 이상 살아왔다. 이 중 하나가 바로 칡소다.

동요 ‘송아지’에 나오는 얼룩송아지와 정지용 시인의 ‘향수’에 나오는 얼룩백이(얼룩빼기가 표준어) 황소도 바로 칡소다. 지방산을 구성하는 올레인산 함량이 높아 맛이 고소하다.

칡소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멸종 위기에 처했다. 일제가 고기 맛이 좋은 칡소를 일본으로 대량 반출하고, 한우를 황갈색 한가지로 표준화하는 심사제를 시행하면서 개체 수가 100마리도 안 됐다.

한우이렇게달라졌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한우이렇게달라졌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일제 심사제로 씨마른 칡소…90년대 부활 

충북도는 1996년 ‘향토 새 옷 입히기’ 사업을 추진하면서 칡소 복원에 뛰어들었다. 수소문 끝에 음성군 원남면 농가에서 칡소 2마리를 구입한 뒤 종축장에서 개체 수를 늘렸다. 당시 복원 사업에 참여한 최재원 음성축산물검사소장은 “우수한 칡소를 교배해 수정란을 생산하고 인공수정을 거쳐 개체 수를 늘렸다”며 “300만 마리에 달하는 황우와 달리 칡소는 개체 수가 적어 품종 개량을 위한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때 전국에 4000마리까지 늘어났던 칡소는 지난해 기준 3000여 마리로 줄었다. 충북은 31개 농가에서 470마리를 기른다.

충북도는 2025년까지 14억원을 투입해 도내 칡소 수를 1000마리까지 늘릴 계획이다. 칡소 농가에는 마리당 30만원이던 출하장려금을 올해부터 100만원으로 올렸다. 송아지 생산비용, 포장재 비용도 지원한다.

안호 충북도 축수산과장은 “칡소와 황우의 교배시험을 통해 개량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한다”며 “칡소를 충북을 대표하는 축산브랜드로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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