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대 曰] ‘코로나 의병’이 필요하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17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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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5호 30면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

우리 역사를 보면 나라가 위기에 처한 전쟁의 고비마다 의병(義兵)이 큰 역할을 하곤 했다. 관군의 힘이 좀 부족할 때 의병이 빛을 발했다. 일반 백성만 나선 것이 아니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승려까지 승병을 조직해 나라를 구하는 데 한몫을 한 독특한 역사를 보유하고 있다.

전쟁에서 평화로 발상 전환하는 역할
당파 초월 전문가 그룹이 풍문 정리를

우리는 지난해 2월부터 코로나와의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1년 6개월 넘게 계속되는데 그 끝마저 잘 보이지 않는 듯해 답답하다. 아무래도 전쟁이 너무 오래가는 것 같다. 다시 실시되는 가혹한 통제의 거리를 걷는 시민들의 표정에 웃음기가 사라지고 있다. 예로부터 전쟁은 속전속결이 좋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제 ‘코로나 의병’이 등장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우리 관군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코로나 전쟁 초반에 관군의 역할은 돋보였다. 세계의 선진국들조차 고전을 면치 못할 때, 우리 관군은 잇따라 승전보를 올리며 국위를 선양했다. 우리 백성들의 협조도 눈물겨웠다. 관청에서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했고, 가지 말라면 안 갔다. 마스크 착용만 해도 세계의 모범 시민이라 할 만하다. 이런 백성을 탓하면 안 될 것 같다. 게다가 필요하면 의병으로 나서는 게 이 백성들 아닌가.

초기 대응에 대한 칭송이 지나쳐서일까 지난해 중순을 지나며 좀 방심했던 것 아닌가 싶다. 전투의 장기화를 미리미리 준비했어야 했는데, 백신 보급품 확보에 차질이 생겼다. 그 여파의 충격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다른 나라 백성들은 이제 마스크를 벗고 전투를 끝내간다는 소식도 들리는데, 우리는 역으로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싶다. 우리는 헬스장 러닝 머신 속도까지 규제하는데, 바로 옆 나라 일본에선 올림픽까지 개최한다니 이게 무슨 리얼리티 코미디 같은 현실인가 싶다. 우리보다 방역을 뛰어나게 더 잘하지도 않은 일본 아닌가. 올림픽이 바이러스 확산의 진원이 될 수도 있을 텐데 그런데도 올림픽을 강행하는 그 강심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대체 무엇인가. 아무래도 치명률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풍문에 그 비밀의 일단이 숨겨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 일반 백성들도 치명률이 낮아진다는 풍문을 들어서 그런지 표정은 어두워도 대체로 엄청난 공포를 느끼는 것 같지는 않다. 죽음의 공포가 줄어드는 전쟁, 좀 ‘이상한 전쟁’ 아닌가? 하지만 이런 풍문을 관군의 입장에선 용인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풍문을 용인했다가 만에 하나 전황이 악화하기라도 하면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최악을 대비하는 관군의 부담을 덜어줄 의병이 필요해 보인다. 코로나 의병은 풍문을 정리하며 정보의 혼선을 바로잡는 일에 주력했으면 하는데, 그런 역할이라면 의료 전문가들이 그룹을 구성해야 할 것 같다. 왜 그룹이냐면 개별적으로 나섰다가 자칫 당파 싸움에 휘말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우수한 의료 인력과 감염병 전문가들이 의병으로 나서 충분히 토론하고, 궁극적으론 전쟁을 평화로 전환하는 경로까지 제시해주었으면 좋겠다.

일례로 싱가포르에선 지난달 말부터 확진자 집계를 하지 않고 중증 환자 치료에 집중한다고 한다. 변이 바이러스가 증가하는 영국도 오는 19일 봉쇄를 해제하고 싱가포르의 길을 따른다는 소리도 들린다. 봉쇄 해제란 전쟁하지 않겠다는 얘기 아닌가. 이래도 되는지,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의병 그룹의 정리된 진단을 듣고 싶다. 생계의 벼랑 끝으로 몰려 거리로 나선 자영업자들의 외침 속에도 그런 평화의 요청이 들어있다. 당파 싸움에 매몰되지 않는 전문가들이 임진왜란 때 승병의 마음으로 나서서 전쟁에 지친 일반 백성에게 자비의 웃음을 선물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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