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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선 8개월 앞두고 밀어붙이는 언론중재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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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5호 30면

더불어민주당 언론법 주요 내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더불어민주당 언론법 주요 내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민주당의 언론 길들이기용 입법 움직임이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대표적인 게 언론 보도로 피해를 본 경우,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도록 강제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담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이다.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언론의 자유가 심대하게 손상당할 수 있다는 학계·언론계의 지적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거대 의석을 가진 여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언론 자유 침해 비판에도 거대 여당이 강행 #‘언자완박’으로 비판 언론 재갈 물리기 의심 #헌법 정신 훼손하는 징벌적 손배, 중단해야

당장 시급한 민생 법안이라고 볼 수 없는 언론 관련법을 대통령 선거를 불과 8개월여 앞두고 조급하게 밀어붙이는 데 대해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계속 제기된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무디게 하려는 의도였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검찰개혁에 이어 ‘언론개혁’이란 허울 좋은 구호를 앞세워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라는 의심이 나오는 이유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이어 ‘언자완박(언론 자유 완전 박탈)’이란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본질 면에서 검찰개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소위 언론개혁 입법은 기자 출신인 이낙연 전 대표 시절 강행하려다 여론 반발 등으로 중단됐다. 이후 송영길 대표 체제가 들어서면서 지난 5월 말 미디어 개혁특위가 다시 가동됐다. 일부 언론에 적개심을 표출해온 ‘강성 친문’ 김용민 의원이 위원장이 되면서 충분한 공론화 없이 법안 처리를 밀어붙이고 있다.

예컨대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금액을 최대 3배에서 5배로 올리려고 하는데, 언론 학자들은 “주요 민주 국가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고 비판한다. 가짜뉴스 판별을 정부가 사실상 심판하도록 했으며, 신문 인쇄물에 바코드를 의무화하는 기이한 규제도 포함했다. 한국기자협회는 “한마디로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악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언론 기사로 피해를 본 경우, 피해자가 해당 기사가 노출되지 않도록 언론사 등에 요구할 수 있는 기사열람차단청구권, 정정보도의 기준을 법(방송은 프로그램 시작 때, 신문은 1면에 정정보도)에 명시하는 내용도 논의 중이다. 각각 “언론중재위나 법원의 오보 여부에 대한 판단 이전에 ‘오보 딱지’를 붙임으로써 보도 활동을 제약할 우려가 있다” 거나 “언론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는 과잉 입법”이란 비판과 반발을 사고 있다.

물론 언론 보도로 인해 피해를 본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장치는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권력에 의한 타율적인 통제나 징벌이 아니라 언론의 자정 노력과 현행법의 엄격한 적용을 통해 해결해 나가는 게 맞다. 전문가들은 언론사마다 윤리 규정을 재정비하고, 편집권의 독립 장치를 보강하는 것을 권고한다. 언론계 내부의 자정 노력과 상호 비판 및 견제 기능을 강화하는 것도 개선책일 수 있다. MBC 기자와 PD의 경찰 사칭 사건처럼 언론인과 언론사의 일탈과 불법 행위로 인한 피해 구제는 기존의 형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올해 40주년을 맞는 언론중재위를 통하면 정정 및 반론 보도 등을 통해 권리 구제를 받을 수 있다. 오보에 대해서는 민사상 손해배상도 가능하고, 모욕죄와 명예훼손은 민법과 형법을 활용하면 된다.

민주 국가에서 언론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다. 언론은 산소가 고갈되는 잠수함 속 카나리아 같은 존재다. 카나리아가 질식하면 사람도, 사회도 숨이 막혀 살 수 없다. 중국의 탄압으로 얼마 전 폐간한 홍콩의 빈과일보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 시대착오적인 입법은 당장 멈춰야 한다. 언론은 진실을 보도하고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지켜내는, 그 사회의 ‘에어포켓(air pocket)’과 같은 존재다. 언론 자유를 위축시키면서 민주주의 국가를 자부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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