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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수소 생산, 폐플라스틱 재활용…재계 필사적 ‘탈탄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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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5호 10면

[SPECIAL REPORT]
뜬구름 잡는 ‘2050 탄소중립’

포스코 포항제철소. [연합뉴스]

포스코 포항제철소. [연합뉴스]

충남 당진에 용광로 3기를 운영 중인 현대제철은 코크스 생산 설비를 기존의 습식소화설비(CSQ)에서 건식소화설비(CDQ)로 교체 중이다. CSQ를 CDQ로 교체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5000억원. CSQ로도 제품을 생산하는 데 문제가 없지만 큰돈을 들여 신규 설비로 교체하는 건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서다. CSQ는 코크스를 식힐 때 물을 사용하는데 반해, CDQ는 질소가스를 이용한다. 질소가스로 코크스를 식히는 과정에서 폐열을 이용해 증기와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현대제철은 폐열을 통해 연간 약 60만t의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온실가스 못 줄이면 생존 장담 못해 #기업 10곳 중 6곳 “탄소 저감 노력” #전자업계, 저전력 반도체 기술 개발 #연구개발·세제 정부 지원 필요

산업계가 ‘탈(脫)탄소’라는 거대 물결을 향해 뛰어들고 있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 세계가 온실가스 저감 노력에 나섰기 때문이다.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기업은 제품을 내다 팔기도, 투자를 받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온실가스 저감을 강제하기 위한 탄소세·탄소국경세 도입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온실가스를 줄이지 못하면 당장 기업의 존립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당장 사무실·공장에서의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을 시작으로 신기술 개발 등 업종마다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4월 탄소배출권 거래제에 참여 중인 기업(684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 기업(403곳)의 64.8%가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에 ‘대응 중’(31.0%) 또는 ‘대응 계획 중’(33.8%)이라고 답했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의 실질적 배출량이 ‘0’인 상태를 말한다. 국내 산업계에서 탈탄소 바람이 가장 거센 곳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철강업계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철강업계는 한 해에만 온실가스 1억1700만t을 배출했다. 산업별 온실가스 배출 비중으로 보면 발전에 이어 2위다.

발전과 마찬가지로 산업 특성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운영을 중단해야 하는 발전산업과 달리 철강산업은 탄소배출 저감 여지가 있다. 실제로 포스코·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업계는 대규모 투자를 통한 시설 확충과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현재제철은 1월 밀폐형 석탄 저장설비를 추가로 설치했고, 친환경 코크스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포스코는 탄소저감을 위해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 등 수소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포스코는 2024년까지 대기오염 물질 배출을 35% 줄이겠단 목표아래 2019년부터 3년 간 약 1조8000억원의 대규모 환경 투자를 진행 중이다.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에너지 효율 개선, 저탄소 원료 대체, 고철 재활용 등을 통해 온실가스를 줄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굴뚝산업’인 정유·석유화학업계도 체질 개선에 나섰다. 이들 에너지기업은 일반 제품 보다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은 친환경 제품 비중을 늘리거나,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기술(CCUS) 개발에 나서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탄소에서 그린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향후 5년 간 30조원을 투자, 탄소 중심이었던 사업 구조를 그린 중심으로 이동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그린 자산의 비중을 현 30%에서 70% 수준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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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솔루션은 2024년까지 플라스틱을 화학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다는 목표다. 폐플라스틱을 고온에서 분해한 열분해유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분자 구조를 변화시켜 나프타를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한다. 폐플라스틱에서 생산한 나프타를 나프타 분해설비를 통해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플라스틱 기초 원료로 다시 생산하면 플라스틱의 반복 사용이 가능해진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양의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그동안 벙커씨유 등 고탄소 연료에서 액화천연가스(LNG) 등 저탄소 연료로의 전환 등을 추진해 온 정유업계도 추가적 탄소 저감을 위해 블루수소 생산, 이산화탄소 포집·활용 기술 개발, 신재생 에너지 사용을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블루수소는 화석연료로 수소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회수·활용해 만든다.

전자업계는 그동안 추진해 온 사업장 내 탄소 저감 정책을 더 강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에 공정가스 처리설치 효율 개선, 고효율 설비 교체 등을 통해 온실가스를 전년 대비 39% 감축했다. 삼성전자는 2018년 293만1000t, 2019년 509만8000t, 2020년 709만1000t 등 매년 사업장 온실가스를 대폭 감축시키고 있다. 올해에는 이 같은 탄소 저감 정책을 더욱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SK하이닉스도 질소산화물 포집 시스템을 이천공장을 중심으로 청주공장 등으로 확대한다. 이를 통해 온실가스뿐만 아니라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질소산화물까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전 산업에서 온실가스 저감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며 “반도체 산업은 생산 과정은 물론 전기 소모를 줄일 수 있는 저전력 반도체 기술 개발해 적극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계의 온실가스 저감 노력을 본격화하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아직은 온실가스 배출을 원천적으로 줄이는 방안보단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식의 방안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글로벌 환경경영인증기관인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한국 보고서를 토대로 38개 기업의 최근 3년간(2017~2019년) 탄소 배출량을 분석한 결과, 실제로 탄소를 줄인 기업은 38곳 중 16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기업은 오히려 배출량이 늘어났다. 산업계는 개별 민간 기업만의 힘으로는 목표 달성이 어려운 만큼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예컨대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그린수소 기술이나 이산화탄소 처리를 위한 CCUS 기술은 탄소중립 구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지만, 정부 지원 없이는 힘들다는 것이다. 대한상의 설문조사에서도 탄소중립을 위해 시급한 정책과제로 ‘탈탄소 혁신기술 개발’(31%)과 ‘재생·수소에너지 공급 인프라 구축’(15.1%), ‘법제도 합리화’(11.2%)라는 응답이 많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새 기술을 적용하더라도 경제성을 갖출 때까지 세제 지원 등의 혜택이 수반돼야 실효성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기업이 개별 노력도 필요하지만 정부도 기술 혁신에 대한 인센티브 지원 강화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MS가 심해 데이터센터 만든 까닭은

미국 MS의 심해 데이터센터. [중앙포토]

미국 MS의 심해 데이터센터. [중앙포토]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노력은 해외 기업도 마찬가지다. 친환경 제품이 아니면 소비자에게 외면 받는 시대가 오면서 기업이 더 적극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펼치는 곳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미국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월 2030년까지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하자, 미국의 주요 기업 408곳이 공개 지지를 표명했다. 보통 기업은 비용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환경 규제를 반기지 않는다. 그런데 근래 미국 기업은 온실가스 저감에 정부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페이스북은 최근 3년 간 온실가스 배출량을 94% 줄였다. 데이터센터에서 에너지 사용량이 많은 냉각 시스템을 친환경으로 바꾸면서 애초 목표였던 75%를 초과 달성한 것이다. 페이스북은 데이터센터 냉방기를 가동하는 대신 기온이 낮은 자연환경을 활용하고, 풍력·수력 등 재생에너지를 통해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발열 문제 해결을 위해 데이터센터를 컨테이너 형태로 개발해 심해에 넣었다. MS는 2025년까지 모든 데이터센터를 풍력·태양열 등 100% 재생에너지로 운영할 계획이다.

애플은 전 세계 협력업체와 함께 앞으로 재생에너지만 사용하는 사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계획대로라면 연 340만 대의 차량을 없애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얻게 된다. 비영리기구 ‘더 클라이밋 그룹’에 따르면 현재까지 RE100(필요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100% 사용하겠다는 서약)에 가입한 미국 기업은 구글·애플을 비롯해 316곳에 이른다. MS·인텔·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을 비롯해 나이키 등도 RE100에 가입했다.

블룸버그는 지난해 말 S&P 500 기업이 그간 내세운 기후 관련 공약들이 얼마나 이행되고 있는지에 대해 분석 자료를 발표했는데, 2020년을 목표로 제시됐던 187곳의 기후 관련 조치 사항들 중 138개가 이행됐다. 37개는 이행 중으로, 이행률은 73.8%에 이른다. 블룸버그는 “기업들이 달성하기 쉬운 목표를 제시한 부분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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