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저성장, 창의적 아이디어 보호가 해법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1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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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5호 20면

모방과 창조

모방과 창조

모방과 창조
김세직 지음
브라이트

장기성장률이 진짜 경제 실력
김세직 교수 역대 정부 분석

5년마다 1% 하락 늪 빠져
재산권·인센티브 강화해야

박근혜 정부 시절 ‘창조 경제’라는 게 있었다. 그런데 그 창조 경제에는 어떤 튼튼한 경제 이론적 배경도 없이 그저 구호만 있었을 뿐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전국에 창조경제혁신센터라는 것을 만들기는 했지만 거기서 어떤 의미 있는 창조적인 아웃풋이 나온 것이 없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모방과 창조』의 지은이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창조 경제를 정책구호로 내세우려면 창조형 인적자본 축적이 성장의 엔진인 경제를 추구했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창조형 인적자본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인적자본을 빼고 창조라는 말만 따로 떼어다가 경제라는 말 앞에 붙여 구호로 만들게 됨에 따라 알맹이 없는 정책이 돼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창조 특히 창조형 인적자본을 강조하는 것은 이것 없이는 한국의 경제성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한 나라의 진짜 실력을 알기 위해선 외부 요인으로 불규칙적일 수 있는 연간 경제성장률보다는 단기적 변동 요인들을 제거한 성장률, 즉 장기성장률을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는 여러 해 경제성장률들의 평균을 구하는 것이다. 장기성장률로 미래를 예측하고 대책을 미리 세울 수 있다.

단기적인 수출 증가가 능사는 아니다. 한국 경제가 장기성장률 하락의 늪에 빠졌다는 진단이 나온다. 지난 6월 부산항 모습. [뉴스1]

단기적인 수출 증가가 능사는 아니다. 한국 경제가 장기성장률 하락의 늪에 빠졌다는 진단이 나온다. 지난 6월 부산항 모습. [뉴스1]

김 교수는 한국의 장기성장률은 1990년대 이래 5년에 1%포인트씩 하락해 왔다고 말한다. 지난 30년 동안 이념 성향이 다른 정권들이 돌아가며 경제를 움직여 왔지만 ‘5년 1% 하락’ 법칙은 보수, 진보 정권 관계없이 강력하게 작동해 왔다는 것이다. 즉 장기성장률은 김영삼 정부 때 6%, 김대중 정부 때 5%, 노무현 정부 때 4%, 이명박 정부 때 3%, 박근혜 정부 때 2%대로 나타났다. 감속 없는 하락 추세가 워낙 강력했기 때문에 우하향 미끄럼틀처럼 직선형으로 추락하는 추세 장기성장률을 진짜 성장능력의 추정치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수 있다는 거다.

김 교수는 “정치하시는 분들이 국민의 소득이 빠르게 증가하는 멋진 유토피아를 제시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실현할 방법에 대한 경제학적 근거 없이 제시된 ‘짝퉁 유토피아’를 만들어 파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가 진정된 후에도 그리고 또 어떤 다른 충격이 지난 뒤에도 5년 1% 하락의 법칙에 따른 선형 추세 하락은 우리 경제의 운명을 계속 규정 지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 추세가 유지된다면 다음 정부에선 장기성장률 0%대의 제로 성장시대가 열릴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되면 실물위기와 금융위기가 광범위하게 현실화할 수 있다. 장기성장률이 0%가 되면 연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가 되는 역성장은 50%의 확률로 즉 2년에 한 번꼴로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게 된다.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하락을 멈추고 2% 후반~3%대에서 앞으로 지속할 것이라는 ‘저성장 고착화’라는 낙관적 예측도 있지만 현대 경제성장이론이나 각국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우리 경제성장률이 그럴 확률은 매우 낮아 보인다고 김 교수는 말한다.

‘5년 1% 하락’ 법칙이 매우 강력하기는 하지만 자연과학의 법칙 같은 필연적 법칙은 결코 아니다. 이를 멈추려면 국민이 이 무서운 법칙을 알고 이 법칙이 가져다줄 심대한 고통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김 교수는 역설한다. 결국 이 시점에서 우리는 ‘모방’을 대체할 구원투수로 ‘창조’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가 주장하는 창조형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는 크게 세 가지다. 창의적 아이디어에 대한 재산권 보장 제도, 창의적 아이디어에 대한 강력한 인센티브 제도, 창조형 인적 자본을 효율적으로 키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제도가 가장 필요하다. 지은이는 특히 자신이 강의시간에 실제로 실시했던 창조형 수업의 사례를 자세하게 소개한다. 이 밖에도 2700만의 취업자들을 재교육하는 ‘창의인재 재탄생 프로그램’ 도입, 창조형 자본주의에 맞는 조세제도, 대학입시 개혁 등의 대안도 제시됐다.

다음 정부에선 제로성장을 피하기 위한 사투가 벌어지겠지만 결국 한국의 스티브 잡스, 한국의 빌 게이츠들이 많이 나오지 않고서는 ‘모방형 자본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결론에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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