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인간 안의 어리석은 짐승을 부른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1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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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5호 21면

세상의 끝

세상의 끝

세상의 끝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 지음
김용재 옮김
봄날의책

세상은 넓고 소설은 많다. 다시 말하면, 읽을 만한 소설 역시 많다. 포르투갈 작가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79)의 소설은 지금까지 단 한 권이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됐을 뿐이다(2016년 소설가 배수아의 번역으로 『대심문관의 비망록』이 출간됐다). 하지만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주제 사라마구(2010년 작고)와 함께 포르투갈 현대 문학을 지탱하는 두 기둥으로 꼽힌다고 한다. 같은 노벨상급 작가라는 얘기다.

두 번째로 소개되는 『세상의 끝』은 안투네스의 초기작이다. 작가에 데뷔한 1979년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하지만 그가 왜 지금과 같은 성가를 누리는지 살피는 데 모자람이 없어 보이는 작품이다. 그렇게 평하고 싶다. 문자예술 소설이 할 수 있는, 그러니까 영화는 하기 힘든, 그리고 좋은 소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제대로 하는 것 같다. 짜릿하고 묵직하다. 머리와 몸이 한꺼번에 뜨거워진다.

소설은 발표됐던 1970년대 후반 시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이다. 70년대 초반 포르투갈은 앙골라 내전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제국주의 끝물이었다. 몇 남지 않은 아프리카 식민지를 그나마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때다.

포르투갈의 대표적 현대 작가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 [사진 봄날의책]

포르투갈의 대표적 현대 작가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 [사진 봄날의책]

안투네스는 작가 지망생이었으나 의사가 본업이었다. 앙골라 내전 참전이 계기가 돼 결국 전업작가로 돌아섰다고 한다. 당시 체험을 살린 소설이 앙골라 동부, 안투네스의 고향 리스본에서 따지면 그야말로 ‘세상의 끝’이나 다름없는 곳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이다.

거칠게 요약하면 역시 전쟁 고발이 소설의 핵심 메시지라고 해야겠지만 그것만일 리 없다. 안투네스, 아니 소설 화자에 따르면 전쟁은 멀쩡하던 사람을 잔인하고 어리석은 짐승으로 바꿔버린다. 피의 맛을 본 탓이다. 전쟁터의 사람들은 죽음이 코앞에 있는데도 욕망을 어쩌지 못한다. 여자 나체 사진으로 막사 벽을 도배하다시피 해놓고, 자위하고 총을 쏜다.

간추리면 이렇지만, 많은 좋은 소설이 그렇듯 읽기가 결코 쉽지 않다. 쉼표로 이어지는 만연체 문장이 좀처럼 끝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예 안투네스의 스타일일지도 모르겠다. 문단 분량의 한 문장 안에서 쉼표로 분리되긴 하지만 과거와 현재가 불쑥불쑥 뒤섞인다. 심지어 한 문장 안에서 화자가 뒤바뀌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과거와 현재, 전쟁터와 침대가 어지럽게 뒤섞이는 가운데 결국 남는 건 우리 자신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들이다.

저자는 왜 굳이 쉬운 길을 놔두고 돌아가는 걸까. 쉬운 읽기를 방해하는 소설 형식 말이다. 그렇게밖에 쓸 수 없어서일지 모르겠다. 쉼표들로 이어지는 긴 문장은 얼핏 거친 호흡을 연상시킨다. 어떤 체험은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재현하기 어려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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