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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작곡가' 정치 등판했다, 엄청난 지지율 업고 [고전적하루]

중앙일보

입력

지지율이 오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정치인이 됐습니다. 이탈리아의 국민 작곡가였던 주세페 베르디(1813~1901)가 오디오 콘텐트 ‘고전적하루’의 여섯번째 주인공입니다.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 [사진 Wikimedia Commons]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 [사진 Wikimedia Commons]

그의 뜨거웠던 출세작은 ‘나부코’였습니다.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될 때 모든 이가 경탄했고, 이후 유럽의 극장을 휩쓰는 작품이 됐습니다. 여기에는 이탈리아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었습니다. ‘나부코’는 이탈리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유다 왕국이 중동 아시리아의 침공을 받아 유대인이 바빌로니아로 강제 이주됐던 이야기가 배경입니다. 하지만 1840년대 당시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이탈리아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이야기로 봤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이 고된 생활 중 고향을 그리워 하면 부르는 합창은 이탈리아의 저항가, 찬송가, 제2의 국가가 됐죠. 이때부터 베르디는 이탈리아 독립, 그리고 조각나 있던 나라의 통일을 상징하는 정신적인 어른이 됐습니다. 공연을 할 때마다 ‘비바 베르디!(베르디 만세!)’가 울려 퍼졌습니다.

베르디는 기대에 부흥하고자 ‘애국 오페라’를 여럿 작곡합니다. 이탈리아가 외세에 맞서 이긴 이야기, 나라를 위한 개인의 희생, 민중이 힘을 합하는 이야기까지, 베르디의 오페라는 이탈리아의 영혼이 가득한 민족주의 예술이었습니다. 인기는 점점 올라가서 마침내 ‘이탈리아의 왕’이라는 별칭까지 얻었죠.

1860년 마침내 이탈리아에 통일된 정부가 들어섰고, 베르디는 하원의원 선출을 거쳐 상원의원이 됩니다. 주변의 권유와 본인의 의지가 결합했습니다. 베르디는 꽤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면서 음악 분야를 위한 재원 확보에 노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고, 베르디는 다시 음악으로 돌아옵니다. 정치인들의 싸움, 일하는 방식이 그와 맞을 리 없습니다. 베르디는 고향에 집을 짓고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살며 작곡에 전념합니다. 상대는 소프라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 사생아 셋을 기르는 주세피나를 두고 사람들은 국민 영웅 베르디와 어울리지 않는 여인이라 손가락질 했죠. 하지만 베르디는 끝까지 여인을 보호했습니다.

오페라 '나부코' 실황. [사진 중앙포토]

오페라 '나부코' 실황. [사진 중앙포토]

베르디다운 작품은 그제서야 나옵니다. 장애인 광대의 비극을 측은히 여기는 오페라 ‘리골레토’, 고급 창녀였던 여인의 운명적 비극을 세심히 돌보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인간 고찰과 시선을 나란히 한 ‘맥베스’‘오텔로’‘팔스타프’.

애초에 베르디가 ‘나부코’를 작곡한 일은 우연이었습니다. 다른 작곡가가 한 번 반려했던 대본을 밀라노의 극장장이 베르디에게 쥐어줬죠. 결과적으로 베르디는 엄청난 민족주의 예술가로 명성을 얻어 현실 정치에도 뛰어들었지만, 정말 중요한 대목은 이겁니다. 정치에 염증을 느낀 후, 그때 진짜 자기 예술이 나왔다는 점 말입니다.

고전적하루는 중앙일보 팟캐스트 플랫폼 J팟(https://www.joongang.co.kr/Jpod/Channel/9)에서도 들으실 수 있습니다.

고전적하루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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