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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병원 접고 6개월 놀다가 시간제로 일하는 소아과 의사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90)

뉴스를 보니 소위 명품이라는 샤넬 핸드백이 이달에 가격을 대폭 인상했다. 특히 인기 품목이라는 샤넬 클래식 라지는 가격이 1049만원으로 올라 샤넬 백 1000만원 시대를 열었다. 지난달에는 가격을 인상한다는 소문에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고 한다. 코로나 감염 사태로 모두가 어렵다고 하소연인데 우리나라 사람은 왜 샤넬 백에 그렇게 목매는지 궁금하다.

오래전 스칸디나비아반도를 여행할 때다. 현지 교포가 전하기를 명품 브랜드숍이 들어왔다가 제품이 팔리지 않아 1년 만에 철수했다고 한다. 그곳은 세계에서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인데, 가격이 비싼 명품은 안중에 없었다. 그것보다는 싸고 실용적인 제품을 선호했다. 스웨덴에서 만드는 이케아가 대표적인 상품이다.

언젠가 이케아 회장에게 기자가 물었다. “회장님이 타고 다니는 볼보 자동차가 10년이나 되었는데 부자가 왜 그렇게 오래된 중고차를 타세요?” “아직 내 차는 10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라고 답한 회장은 5년을 더 타고서야 새 차로 바꾸었다. 이케아 그룹의 임원은 지금도 업무상으로 비행기를 탈 때는 이코노미석을 이용한다.

유럽의 대표 '갓성비' 가구 브랜드 이케아 그룹의 임원은 지금도 업무상으로 비행기를 탈 때는 이코노미석을 이용한다. [사진 pixabay]

유럽의 대표 '갓성비' 가구 브랜드 이케아 그룹의 임원은 지금도 업무상으로 비행기를 탈 때는 이코노미석을 이용한다. [사진 pixabay]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에서도 한국은 중요한 위치에 있다. 벤츠의 경우 전체 판매순위에서 한국 시장은 중국·미국·독일·영국·프랑스의 뒤를 이어 6위에 올랐다. 가장 고급모델인 S클래스의 판매순위에선 3위다. 우리나라의 소득이 그리 높은 편도 아닌데 왜 그런 소비가 일어날까. 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베블런 효과’라 한다. 미국 사회학자 베블런이 가격이 오르는 데도 일부 계층의 과시욕이나 허영심 등으로 인해 수요가 줄지 않는 현상을 꼬집었는데, 주위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따서 부른 데서 유래했다.

한 소아과 의사의 이야기다. 그는 의사라는 직업에 걸맞게 고소득을 올리며 명품 브랜드숍을 애용하는 등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 당연히 주위에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났다. 소득이 늘더라도 지출이 많다 보니 그에겐 저축한 돈이 별로 없었다. 큰 집을 팔고 그 반 정도 되는 작은 집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단순한 삶을 살기로 작정했다.

그러자 동료와 친구들이 반감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그 방식을 고수했다. 결국 일부 친구와 우정이 끝나기도 했다. 그는 내친김에 1년 동안 병원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기로 했다. 그리고 존재하는 것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정원을 가꾸고, 휴식하고, 독서하고, 사색하고, 음악을 듣는 것이 그의 생활 전부였다. 어떤 날에는 아무 계획 없이 무작정 여행을 나서기도 했다.

죽어가는 사람이 지나온 생을 돌아보며 무엇을 후회하는지 조사했더니, 남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는 걸 가장 많이 후회했다. [사진 pixabay]

죽어가는 사람이 지나온 생을 돌아보며 무엇을 후회하는지 조사했더니, 남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는 걸 가장 많이 후회했다. [사진 pixabay]

그런 생활을 6개월쯤 하고 나자 그는 병원 일이 다시 하고 싶어졌다. 자기가 싫어한 것이 의사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단지 스트레스와 압박 속에서 전임 의사로 일하는 것이 싫었을 뿐이다. 예전처럼 전일제로 일하기보다는 소득이 적더라도 시간제 의사로 일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의료계에서 그러한 일자리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여자와 이야기하다가 그 집 아이들이 다니는 소아과 의사를 만나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는 그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시간제 의사 일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대는 한참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믿을 수가 없군요. 두 살배기 아기 때문에 지난 2년 동안 시간제로 일해 줄 의사를 얼마나 애타게 찾았는데, 괜찮다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만나고 싶군요.” 그는 뛸 듯이 기뻤다. 두 사람 모두 원하던 상대를 만난 것이다. 그 후 그는 1주일에 20시간 그곳에서 근무하며 남은 시간에는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지낸다.

호주의 한 호스피스 간호사가 죽어가는 사람이 지나온 생을 돌아보며 무엇을 후회하는지 조사한 바 있다. 가장 많이 했던 후회는 남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는 뉘우침이었다. 그걸 그때야 깨닫는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어쩌면 명품 브랜드 상품을 선호하는 심리도 그중 하나가 아닌지 모르겠다. 공연히 남의 관심을 받으려고 애써 모은 돈을 외국업체의 마케팅 상술에 넘어가 헛되이 써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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