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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훈 칼럼

내년 대선, 초(超) 대통령제 해소가 관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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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선거는 민주주의라는 변덕스런 정치가 정기적으로 방향을 조정하는 방향타이다. 유권자들은 5년마다 과거의 선택들을 곱씹으며 공동체의 항로를 리셋해왔다. 선거는 또한 민주주의라는 백화제방 사회의 용광로이다. 저마다 중요한 수십, 수백 가지의 요구, 희망, 제안들은 후보들 몇 사람의 공약집 속으로 녹아들게 된다.

대통령, 국회·사법부 위에 군림 #초 대통령제는 세계적 걱정거리 #대통령은 문제해결 슈퍼맨 아냐 #정책만큼이나 후보 성품이 열쇠

정치 시계가 대통령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우리 사회이니만큼, 막이 오른 2022년 대선 무대에 우리 사회의 온갖 고민거리와 걱정거리가 쏟아지고 있다. 기본소득 논쟁, 중산층 경제, 지속가능 경제라는 공약부터 공정과 상식이라는 추상적 원칙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약속과 정책의 홍수 속에서, 필자는 앞으로 8개월간 초대통령제의 해소라는 관점에서 선거를 지켜보려 한다. 기왕에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말이 있지만, 지난 10여 년 한국 대통령제는 제왕적 대통령을 넘어 슈퍼맨 대통령이 이끄는 초대통령제로 변화해왔다. 대통령은 국회와 사법부 위에 우뚝 선 초월적 권력으로 어느덧 변신하였다. 대통령은 또한 시민 자유의 범위, 내용을 결정하고 정치적 올바름을 정의 내리는 철인왕으로 올라섰다.

세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우리는 어쩌다 세계적 흐름이 되어버린 초대통령제의 길에 들어서게 됐을까? 둘째, 거대한 권력에도 불구하고 초대통령은 왜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을까? 셋째, 이번 대선에서 우리는 초대통령의 등장을 막을 수 있을까?

먼저 초대통령제의 세계적 흐름부터 짚어보자. 최초의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의 정치학자들은 꽤 오래 전부터 대통령제 정부에서 가장 위험스런(영어로 표현하자면 dangerous and disruptive) 존재로 대통령을 지목해왔다. 모든 정치체제는 권력을 최대한 끌어 모아 구심력을 발휘하려는 힘과 그에 맞서 저항하는 힘 사이의 줄다리기 과정 속에 있다. 대통령제 정부에서 권력을 과도하게 끌어 모으는 권력집중의 중심에는 바로 대통령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 대통령들은 헌법상 의회의 독점 권력인 입법 권력을 우회하는데 전념해왔다. 의원들과 끝없는 줄다리기를 해야만 하는 입법화 노력 대신에, 전임 트럼프나 현직 바이든 대통령 모두 법을 대체하는 대통령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을 남발해왔다. 트럼프는 임기 4년간 220건의 행정 명령을 발령하였다. 그 악명 높은 테러 위험국가로부터 미국으로의 여행금지 명령을 포함해서. 바이든 대통령의 페이스는 더 빠르다. 임기 6개월 만에 벌써 51건의 행정명령을 뿌려대고 있다. (7월 10일 기준)

입법, 사법부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초대통령제(내각제 국가에서는 초수상제)는 중유럽, 남미에서는 훨씬 노골적이고 위험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폴란드의 카친스키나 헝가리의 오르반 등이 즐겨 사용한 수법은 이를테면, 갑작스레 법관들의 정년퇴임 연령을 70세에서 62세로 낮추고 퇴임에 따른 수많은 자리를 정권에 우호적인 법관들로 채우는 식이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청와대 정부』라는 책에서 한국의 초대통령제 현상들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보수, 진보정부 구분 없이 청와대 조직과 예산은 꾸준하게 늘어나면서 초대통령제의 기반을 닦아왔다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대통령이 국회, 정당을 대하는 방식이다. 탄핵으로 물러나기 전까지 전임 대통령은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 내의 반대파까지 철저하게 외면하고 초대통령의 독주를 이어갔었다. 『청와대 정부』는 이런 양상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한낱 대통령의 참모가 여당 의원들에게 ‘개혁입법’을 주문하고 독려하는 것은 입법부를 거느린 초대통령제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둘째, 모든 정책결정이 대통령의 손에 집중되는 초대통령제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수많은 정치사회경제 이슈를 풀어가기에 부적합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 체제의 결정적 특징은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매우 솔직한 체제라는 점이다. 자유롭고 솔직하게 제기되는 다양하고 방대한 이슈들을 대통령과 50~60대 남성 중심의 청와대 참모들이 해결해보겠다고 씨름하는 것은 낡은 계산기 한 대를 들고 21세기 우주개발 계획을 세우려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셋째, 초대통령제라는 위태로운 흐름을 멈춰 세우기 위해, 필자는 후보들의 정책보다는 성품에 주목할 것이다. 내년 3월까지 쏟아지는 달콤한 정책 약속들은 실은 우리를 배신할 운명을 타고난 것들이다. 5000만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며 각자의 삶을 돌보는 거대한 사회에서 정책을 통한 삶의 기적이란 쉽사리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설익은 정책들이 삶을 흔들거나 혼돈 속에 몰아넣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안도할 따름이다.

정책과 달리 성품은 후보자들 스스로와 유권자를 속이기 어렵다. 후보들은 마음을 열고 두루 듣는 자세를 지녔는지? 민주 정치의 일상사인, 언짢은 이견을 계속 수용할 참을성과 도량을 갖췄는지? 단임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겸손함을 체득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