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현상의 시시각각

아인슈타인도 아니면서

중앙일보

입력 2021.07.16 00:39

업데이트 2021.07.16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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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재건축 투기 바람을 잠재운다는 명목으로 추진되던 '재건축 조합원 2년 실거주 요건' 법안이 백지화됐다. 전세 불안을 자극하는 등 부작용만 낳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정부의 탁상공론 정책이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대모산 전망대서 바라본 대치동 은마아파트 일대. [연합뉴스]

재건축 투기 바람을 잠재운다는 명목으로 추진되던 '재건축 조합원 2년 실거주 요건' 법안이 백지화됐다. 전세 불안을 자극하는 등 부작용만 낳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정부의 탁상공론 정책이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대모산 전망대서 바라본 대치동 은마아파트 일대. [연합뉴스]

갈릴레이는 피사의 사탑에서 쇠공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은 거울을 들고 빛의 속도로 달리지 않았다. 자유낙하 이론, 만유인력 법칙, 상대성 원리는 실험으로 발견된 게 아니다. 현대과학의 숱한 성과가 실험실에서 이뤄졌지만, 진짜 위대한 발견은 머릿속에서 얻어낸 경우가 많았다. 이른바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이다. 실제 실험이 불가능한 영역에서 과학자들은 이성과 추론으로 별의 순간을 이뤄냈다.

머릿속 실험서 나온 경제정책들
복잡한 현실을 희망회로로 접근
국민고통만 남기고 실패로 귀결

혹시 현 정부가 이런 사고실험의 세계에 빠진 건 아닐까. 최근 유턴하는 부동산 정책들을 보면서 든 느낌이다. 현실의 변수는 고려하지 않고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될 거다'는 단선적 사고로 밀어붙이다 안 되면 슬쩍 물러선다. 시작은 창대했는데, 결말은 보잘것없다. 사고(思考)실험이 사고(事故)실험이 됐다. 하긴, 그네들이 갈릴레이·뉴턴·아인슈타인도 아닐 테니.

정부·여당이 예고했던 '재건축 조합원 2년 실거주 요건'이 국회에서 백지화됐다. 실거주 요건을 강화하면 재건축 투기가 진정될 것이란 실험 설계였는데, 실험에 착수하기도 전에 부작용만 드러났다. 세입자들이 밀려나면서 전·월세가 불안해졌다. 불안이 매매 수요로 이어지면서 잠잠했던 지역에서마저 집값이 폭등해 버렸다. 전문가들이 이런 부작용을 예견했으나 사고실험에 바쁜 정책 담당자들의 머리에 입력될 리 없었다.

민간 임대사업 제도도 마찬가지다. 이 제도가 투기 세력에 꽃길을 깔아준다는 주장에 화들짝 놀란 정부가 폐지로 방향을 잡았다. 결과는 익히 보는 대로다. 임대료 인상 제한을 받는 등록임대사업자 소유 주택의 전세가가 시세보다 30~40%나 싸다는 현장 데이터는 무시됐다. 완충 장치를 없애고는 임대차 3법까지 강행했다. 전세 대란의 쓰나미가 덮쳤고, 난민이 속출하고 있다. 어설픈 사고실험이 참담한 실패로 확인되자 비로소 국토교통부 장관은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물러섰다.

어디 부동산 문제뿐이겠나.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비정규직 문제 등 문재인 정부가 내세웠던 정책들이 하나같이 파열음을 내고 있다. 소득주도성장은 마차가 말보다 앞선다는 조롱을 들었다. 최저임금 과속은 역풍을 불러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연평균 인상률(7.2%)이 박근혜 정부(7.4%)에도 미치지 못하게 돼 버렸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는 공정 이슈를 현 정부의 아킬레스건으로 만들어 버리는 데 일조했다. 무능과 오만에 '신앙'까지 가미된 머릿속 실험이 현실에서 길을 잃은 결과다.

사고실험이 생각대로 안 되면 과학자들은 다시 차근차근 논리의 뼈대를 재조립하면 된다. 피해라 해봤자 고뇌하는 과학자가 쥐어뜯느라 빠지는 머리카락 정도일 게다. 그러나 국민의 삶을 상대로 한 정책 실험은 이야기가 다르다. 경제학 족보에도 없는 소득주도성장 실험은 문 닫는 자영업자, 일자리 잃은 종업원을 양산했다. 고용시장의 현실을 무시한 비정규직 철폐 실험은 기업들의 채용 기피와 취준생의 좌절을 낳았다. 25번의 부동산 실험은 한국을 부동산 노이로제 국가로 만들어 버렸다.

사고실험은 과학과 철학의 영역이다. 자명한 공리(公理)의 토대 위에서 순수한 논리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통제 혹은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가득한 현실 세계에서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정부가 정책에서 손을 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잘못될 수 있다는 겸허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념 충만 정책이 도입될 때마다 전문가들의 경고가 발령됐지만 정부·여당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걱정되는 것은 여권의 대선주자들이 사고실험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미 실패한 정책의 한계를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실험을 극단까지 몰고 가보자는 생각인 듯하다. 아인슈타인이 정의했다. 바보는 다른 실험 결과를 기대하면서 같은 방법을 계속 쓰는 사람들이라고.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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