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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칫거리’ 불가사리로 제설제 만들어 연매출 100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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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상재 기자 중앙일보 경제산업부디렉터

R&D 패러독스 극복하자 ② 양승찬 스타스테크 대표

얼핏 보면 반려동물용 사료 같다. 그만큼 포장이 깔끔하고 고급스럽다. 봉지를 열어보니 쌀알만 한 크기의 흰색·황토색 알갱이들이 섞여서 나온다. 지난 13일 서울 구로에 있는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양승찬(26) 스타스테크 대표는 이 작은 알갱이를 가리키며 “세계 최초로 불가사리 추출 성분으로 만든 친환경 제설제”라고 소개했다. 스타스테크는 이 제품 하나로 지난 회계연도(2020년 7월~2021년 6월)에 100억원대 매출을 올렸다.

바다 무법자 불가사리 추출물 #차량 부식 막고 환경 훼손도 없어 #효율 우수한 제설제 개발에 성공 #전역 후 창업…4년 만에 시장 1위 #“다음엔 멍게·굴 껍질 활용한 #친환경 제품 개발 도전 나설 것”

스타스테크가 설립된 것은 2017년 11월이다. 국내 제설제 시장 규모가 한해 1000억원대 남짓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불과 4년도 안 돼 시장점유율 10%를 넘어선 것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조달부문에서는 1위다. 양 대표는 “해마다 세 배로 성장하고 있고, 계획했던 대로 순항 중”이라고 말했다. 그에겐 어떤 계획이 있었던 것일까.

영재고 시절 읽은 논문서 사업 힌트

불가사리 추출물을 사용해 만든 친환경 제설제 ECO-ST1(왼쪽) 개발에 성공한 양승찬 스타스테크 대표는 대학 3학년 휴학 중이다. 지난 13일 서울 구로동 사무실에서 양 대표를 만났다. 김경록 기자

불가사리 추출물을 사용해 만든 친환경 제설제 ECO-ST1(왼쪽) 개발에 성공한 양승찬 스타스테크 대표는 대학 3학년 휴학 중이다. 지난 13일 서울 구로동 사무실에서 양 대표를 만났다. 김경록 기자

스타스테크의 시작은 군대였다. 강원도 인제의 육군 포병부대에서 군 생활을 하던 양승찬 대표(당시 상병)는 2017년 ‘국방 스타트업 챌린지’에 도전한다. 군 복무 중 창업이 활발한 이스라엘 모델을 벤치마킹해 현역 군인의 창업 아이디어를 겨루는 자리였다.

당시 양 상병팀은 ‘불가사리 제설제’를 들고 나왔다. 제설제 원료로 불가사리에서 추출한 뼛조각(다공성 구조체)을 활용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다공성(porous·多孔性)은 고체의 표면이나 내부에 작은 공기구멍이 촘촘히 있는 구조를 말한다.

겨울철 필수품인 제설제는 주로 염화칼슘·염화나트륨 성분이다. 하지만 눈을 녹이면서 배출되는 염화이온 때문에 자동차 부식이나 콘크리트(아스팔트) 파손, 가로수 고사 같은 문제가 생긴다. 어린이나 반려동물의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기도 하고, 땅이나 하수도로 흘러들어가면 토양·수질오염의 원인이 된다. 이때 불가사리에서 뽑아낸 다공성 구조체를 활용하면 부식 억제 효율을 높이고, 염화이온에 달라붙어 환경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설명이다. 양 상병팀은 이 아이디어로 ‘국방 스타트업 챌린지’에서 참모총장상을, ‘도전! K-스타트업’에서 국방부장관상을 각각 받았다.

그런데 왜 불가사리일까? 이번엔 그의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양 대표는 경기과학영재고 때 불가사리에서 다공성 구조체 추출이 가능하다는 연구를 한 경험이 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 첫 연구 프로젝트가 다공성 구조체였어요. 숯이나 제올라이트(규산염 광물) 등으로 실험을 했지요. 또 다른 후보 물질로 찾다가 ‘불가사리 소재의 세라믹을 이용한 중금속 제거’라는 논문을 읽게 됐습니다.”

군대 동기들과 1억2000만원 모아 창업

고교 때 처음 연구했던 불가사리가 창업 경진대회 수상으로, 나중엔 실제 사업으로 이어진 셈이다. 양 상병팀의 이름은 스타스(STAR’s), 지금은 회사명이 됐다. 함께 참여했던 네 명 중 세 명이 전역하자마자 창업에 나섰다.

스타스테크는 어떤 회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스타스테크는 어떤 회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서로 창업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자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설득해 4000만원을 빌렸습니다. 지금은 각각 영업과 생산을 맡은 심규빈(28)·김도범(25) 이사가 2000만원씩을 마련했어요. ‘반드시 이뤄내자’는 배수의 진 같은 거지요. 이때 같은 부대에 근무했던 부사관 한 분도 ‘아내 몰래 가져왔다’며 3000만원을 투자했습니다. 그새 부모님께 빌린 돈 다 갚았고, 지금은 용돈도 드리고 있지요.”

창업하면서 곧바로 충남 당진에 공장을 빌려 생산시설을 만들었다. “샘플이라도 있어야 우수한 성능을 알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샘플 20t을 만들어 정부기관에 무상으로 뿌렸다. 자동차 두 대를 빌려 3개월간 전국을 누볐는데, 대당 주행거리가 7만㎞였다. 하루 평균 800㎞ 가까이 이동하면서 25㎏들이 샘플을 8~9개씩 뿌리는 강행군이었다.

숫자로 본 불가사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숫자로 본 불가사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어떨 때는 하루 한 시간도 못 자고 일했어요. (웃으면서) 어렵사리 담당 공무원을 찾아가면, 아무리 설명을 해도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어 난감했던 때도 있었지요.”

스타스테크가 개발·판매하는 ‘ECO-ST1’ 제설제는 염화칼슘과 비교해 1.5~2배 비싸다. 양 대표는 “부식 억제율은 염화나트륨 대비해 0.8%, 콘크리트 파손은 24%, 융빙 성능은 166%”라며 “도로 보수비용까지 더하면 (불가사리 제설제가) 더 경제적이다”고 강조했다.

3개월간 7만㎞ 다니며 샘플 20t 뿌려

게다가 판매가 늘수록 불가사리 피해를 줄이는 효자 역할도 한다. 불가사리는 조개·전복·굴 등 갑각류와 어류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어 ‘바다의 무법자’ ‘진짜 해적’으로 불린다. 번식력이 강한데다 천적도 없다. 어망을 찢어놓기도 해 국내 양식업에 주는 피해가 줄잡아 4000억원대로 추산된다. 지자체와 수협 등이 한해 3000~4000t을 수매하는 이유다. 그나마도 독성과 악취가 있어 소각 폐기하는 형편이었다. 스타스테크는 지자체 등으로부터 연 300~400t의 불가사리를 무상 공급받고 있다.

최근 3년 새 매출은 10억→35억→100억여 원으로 늘었다. 올해는 300억원대가 목표다. 수출 길이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가능해졌다는 설명이다. 캐나다 5~6개 주(州) 정부와 조달 계약을 앞두고 있고, 미국에선 아마존·로이스·홈디포 등 유통업체와 공급 가격을 협상 중이다. 동유럽 파트너는 슬로바키아에 생산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그러면 경쟁 사업자들이 ‘미투 상품’을 내놓을 가능성은 없을까. 양 대표는 “불가사리 구조체를 활용한 제설제의 핵심기술에 대해 원천적으로 보호받고 있다”며 “특히 추출 기술은 내부 영업기밀로 관리하고 있어 쉽사리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북미 진출, 동유럽엔 공장 짓는 중

불가사리는 조개·소라·고동 등 어패류를 잡아 먹어 바다의 무법자로 불린다. [중앙포토]

불가사리는 조개·소라·고동 등 어패류를 잡아 먹어 바다의 무법자로 불린다. [중앙포토]

제설제는 ‘계절사업’이라는 한계가 있다. 시장 규모가 아주 크지도 않다. 스타스테크가 제시하는 신성장 아이템은 화장품 원료와 액상 비료 사업이다. 역시나 불가사리에서 뽑아내거나 남은 폐기물을 처리하는 사업이다.

우선 뽑아내는 건 피부를 매끈하고 탱탱하게 해주는 콜라겐이다. 마스크팩·세럼 등에 쓰이는 콜라겐은 주로 돼지에서 추출한다. 또 피부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다. 생선에서 추출할 경우 일부에서 알레르기 문제가 생겼다. 불가사리는 이런 문제에서 벗어나 있다. 콜라겐이 피부로 전달되는 효과를 높여주는 TDS(경피전달체계) 기술도 최근 개발을 마쳤다.

양 대표는 “콜라겐 브랜드(‘페넬라겐’) 상표를 등록했고, 하반기 중에 페넬라겐을 주요 원료로 화장품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콜라겐 추출과 TDS 기술을 공동연구한 김동휘 고려대 KU-KIST 융합대학원 교수는 “콜라겐이 진피층까지 도달하는 문제를 해결해 화장품 원료로서 상품성이 커졌고, 불가사리 활용도를 높임으로써 사회적 가치를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불가사리 사업화를 개척한 박희연 미라클바이오텍 대표(전 국립수산과학원 박사)는 “동물성 콜라겐을 기피하는 중동지역을 개척하면 시장 잠재력이 크다”고 조언했다.

여기에다 폐기물을 활용한 비료 사업을 더한다. 지금까지 제설제를 만들고 난 불가사리 부산물은 폐기하거나 인근 농가에 퇴비로 제공해왔다. 앞으로는 이를 액상 비료로 만들어 저가에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공장에서 배출되는 불가사리와 화학소재 폐기물을 제로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조달 혁신이 기술 창업 키운 사례”

『축적의 길』 저자인 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기술 창업의 경우 회사가 성장하는데 시간과 자금이 필요한데 스타스테크 사례는 (친환경 제설제 구매에 적극적인) 공공부문이 테스트베드로 역할 한 사례”라며 “그만큼 정부의 재정이 스프링보드(도약대)로서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현재의 사업 아이템을 변화·심화하고, 대학과 공동연구를 통해 스케일 업하는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 대표의 다음 계획도 ①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②선도 기술 기반의 ③바이오화학 회사에 맞춰져 있다. “회사를 세울 때 슬로건이 ‘쓰레기로 환경을 구하자’입니다. 당연히 지금도 유효하지요. 불가사리 다음 타깃은 멍게 껍질이나 굴 폐각, 해파리 등이 될 수도 있지요.(웃음)”

제대하면서 바로 창업한 그는 현재 서울대 화학생명공학부 3학년 휴학 중이다. 복학 계획에 대해선 “당장은 아니다”며 “아마도 30대에 (복학해) 젊은 후배들 밥 사주면서 창업을 독려할 듯하다”며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