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웰컴 투 디지털 월드

중앙일보

입력 2021.07.16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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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송길영 Mind Miner

송길영 Mind Miner

스마트폰의 오타가 잦아지고 작은 글씨가 잘 안 보이기 시작하자 고질병인 건강염려증이 재발할까 싶어 부리나케 동네 안과를 찾았습니다. 더 심각한 환자들에게 쓸 신경도 부족할 의사선생님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제 나이가 든 것이란 간단한 설명과 함께 굳이 원한다면 안경 처방을 주겠다 합니다. 버텨 보겠다 말씀드리니 그것보다 눈물샘에 자리 잡은 작은 종양이나 제거하라며 대학병원으로 진료의뢰서를 써줬습니다.

IT기술 발전으로 이룬 편리함
일상에 자리잡기 시작했지만
혜택에서 소외된 분들 적잖아
모두가 노력해서 함께 가야

워낙 유명한 병원이라 첫 번째 진료에만 몇 주가, 시술 날짜를 잡는 데만도 2개월이 걸렸습니다. 한 시간도 안 걸리는 시술은 친절한 선생님과 스태프들에 의해 편안하게 끝났습니다. 2주가 지나 최종 결과를 확인하러 가는 날이 다가오자 긴장이 되었습니다. 아침 10시 30분 기차를 타고 지방으로 떠나는 일정이 있었기에 병원에서 조금만 시간이 지체되어도 낭패가 생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약은 8시 50분에 시작하는 진료시간에 맞춰 가장 먼저로 부탁드리곤 전날부터 부지런히 궁리하기 시작합니다. 코로나로 병원 입장에 시간이 걸릴 것을 대비해 미리 도착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주차 시간을 아끼기 위해 택시를 타기로 합니다.

당일이 되자 긴장하는 마음에 새벽같이 일어난 저를 반긴 것은 병원에서 보내준 문자였습니다. 현장에서 입력하는 불편함을 간단한 질문으로 대체해 입장을 위한 QR코드를 발행해 주었습니다. 든든히 아침을 먹고 기차에서 필요한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과 컴퓨터를 챙긴 후 선잠을 깬 고양이들의 밥을 챙겨놓고 앱으로 택시를 불렀습니다. 화면에서 택시가 움직이는 경로를 보며 고양이들의 화장실을 청소해주고 시간 맞춰 나갔습니다.

병원에선 이른 시간에도 키오스크에서 직접 접수를 할 수 있었습니다. 기다리며 스마트폰으로 메일을 확인하고 있으니 예약 5분 전부터 담당 교수님은 환한 미소와 함께 환자를 맞기 시작하셨습니다. 전문가들의 익숙한 솜씨로 검진부터 수납과 처방전의 수령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진료협력과에 들렀다 가라는 이야기에 어리둥절하자 평소 다니는 동네 병원으로 진료내역이 공유된다 합니다. 자료가 서면뿐 아니라 디지털로도 연계된다는 설명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병원 로비에 있는 실손보험 키오스크에 개인정보와 보험사 이름을 넣고 진료 내역을 누르자 바로 청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 모든 프로세스를 마치고 시계를 보니 진료가 시작된 후 20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빅데이터 7/16

빅데이터 7/16

여차하면 기차 시각을 이야기하며 읍소하리라 계획했던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40분의 택시 이동의 시간을 더했어도 10시도 되기 전에 기차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 일찍 도착해 하릴없이 주변을 산책하며 여유를 즐겼습니다. 고속철에 올라 이 글을 쓰고 있는 중 보험사에서는 왜 아직 약을 사지 않았냐며 약제비 영수증을 문자로 보내달라는 전화까지 걸려왔습니다. 제가 병원을 나선 지 아직 2시간도 미처 안 지났는데 말입니다! 그야말로 저는 엄청난 디지털 월드에 살고 있습니다.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향하는 중 나이가 지긋하신 기사분은 아직 고속철을 한 번도 못 타봤다 수줍게 말씀하시며 기차표는 역에서 구입할 수 있냐고 물어보셨습니다. 현장 구매도 가능하긴 하지만 매진이 잦기에 앱으로 사셔야 한다 답해 드리는 중 이른 아침에 만난 한 분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8시도 되기 전 접수창구에는 저보다 먼저 오신 분이 계셨습니다. 한 눈에도 나이가 한참 드신 할머니께서 진료를 언제 받을 수 있나 물어보셨습니다. 예약하셨냐고 묻자 그냥 왔다는 답변에 간호사 선생님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진료를 볼 수 없다는 대답의 목소리에 담긴 안타까움은 그 공간에 있던 모든 이들의 마음에도 퍼져나갔습니다. 담당 교수님을 정해서 예약해야 하기에 녹내장이나 백내장같이 어떤 종류의 문제가 있냐는 질문에도 동네 병원에서 잘 못 고치기에 큰 병원에 혼자 오셨다는 두루뭉술한 답을 하시는 그 분에게 제가 해드릴 수 있었던 것은 떨어뜨리신 지팡이를 집어 건네드리는 것 말고는 없었습니다.

제게 이미 와버린 디지털 월드는 오늘 뵌 택시 기사분이나 할머니에게는 아직 오지 못한 것 같습니다. 같은 나라에 살고 있어도 그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서비스의 사각지대에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모습에 죄스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조금 더 노력해서 그 분들도 새로운 세상으로 꼭 함께 모시고 가야겠다 다짐하며 저의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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