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그린장벽’ 세웠다…국내 철강·자동차 발등에 불

중앙일보

입력 2021.07.16 00:03

업데이트 2021.07.16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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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14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원국 밖 수입 제품에도 탄소 배출 비용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핏 포 55’를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14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원국 밖 수입 제품에도 탄소 배출 비용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핏 포 55’를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다른 나라에서 생산한 제품에도 역내 제품과 같은 환경 비용을 물리는 탄소국경세를 도입한다. 생산지와 상관없이 환경 비용을 부과한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나온 규제 중 가장 강력한 것으로 평가된다. 선진국 환경 규제를 피해 반사이익을 누렸던 한국을 비롯한 중국 등 개발도상국이 직접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2026년부터 탄소국경세 청구서
철강·시멘트·알루미늄 등 5개 품목

철강, 작년 EU 수출액 1.7조 달해
“한국기업, 탈탄소 서둘러야 생존”

14일(현지시간) EU 집행위원회는 2050년 탄소 중립을 위한 핵심 12개 법안이 담긴 ‘핏 포 55(Fit for 55)’를 공개했다. ‘핏 포 55’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1990년 대비 55% 줄이는 정책이다. 특히 주목하는 분야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탄소국경세)다. 탄소국경세는 제품을 만들 때 나온 탄소가 자국 제품보다 많으면 그 초과분에 비용을 물리는 제도다. 2023년부터 적용하지만, 3년 전환 기간 뒤 실제 비용 부과는 2026년부터 시작한다. 철강·시멘트·비료·알루미늄·전기 5개 분야만 우선 적용하며 장기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EU가 탄소국경세를 도입한 이유는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서다. EU 환경 규제 부담에 기업이 해외로 생산시설을 옮기자 생산시설 아닌 제품에도 비용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이러면 환경 기술에서 앞선 EU 기업을 보호하면서 개발도상국의 ‘무임승차’를 막는 효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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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는 탄소국경세 부과를 위해 수입 제품에 ‘탄소 배출권 거래제(ETS)’를 적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EU에 수출하려는 기업은 배출권 가격을 기준으로 만든 CBAM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인증서 구매에 추가 비용이 든다는 점에서 사실상 관세를 부과받는 효과를 가진다.

철강과 알루미늄 업계가 직격탄을 맞게 됐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EU로 수출한 한국 철·철강은 15억2300만 달러(약 1조7385억원)로 탄소국경세 적용 5개 종목 중 가장 많다. 이어 알루미늄이 지난해 약 1억8600만 달러(2123억1900만원)를 수출했다. 비료는 EU 수출액이 미미하고, 시멘트와 전기는 전무해서 영향이 없다. 산업통상자원부도 15일 철강과 알루미늄 업계만 불러 탄소국경세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피해 규모는 분석 기관마다 천차만별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EU가 탄소국경세로 t당 30유로를 전 업종에 적용하면 연간 10억6100만 달러(약 1조2200억원)를 부담할 것으로 봤다. 관세율로 치면 약 1.9% 정도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더 비관적이다. 2019년 온실가스 배출량에 t당 10달러를 물리면 전체 산업이 7조2557억원, t당 50달러면 36조3000억원의 추가 부담이 생길 것으로 봤다. 특히 철강은 세액에 따라 1조3532억~6조7658억원의 비용을 내야 한다.

다만 정부와 전문가는 탄소국경세 규모를 추정하기에는 이르다는 입장이다. 탄소국경세는 EU에서 생산한 제품보다 탄소 배출이 많았을 경우 그 초과분에 비용을 내는 개념이다. 모든 배출량에 비용을 내는 것은 아니다. 또 만약 국내에서 탄소 배출 비용을 이미 납부했다면 그 액수만큼 면제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국내 환경 규제를 EU에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한국도 EU와 같이 ETS 제도는 물론 RE100과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같은 탄소 중립 제도를 운용 중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국은 유럽 이상의 탄소 중립 정책을 취하고 있어 탄소국경세 적용에서 빼야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동근(전 한국기후변화학회장)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탄소 중립 계획의 방향성은 모두 옳다”면서도 “다만 기후변화를 야기하며 발전했던 선진국에서 그 책임을 외국에 부과하는 꼴이 된다면 불공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탈 탄소 경제로의 전환이 우리 수출 기업에도 더는 미룰 수 없는 생존의 조건으로 부상했다”며 “국내 산업계와 정치계가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업계 셈법은 복잡하다. 국내 기업 부담이 커지긴 하지만, 중국 등 다른 경쟁국을 밀어낼 지렛대로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EU에 수출하는 철강업체의 환경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환경 기술에서 앞선 EU 철강 기업 매출 증가가 예상된다”면서도 “다만 EU에 수출하는 국가 중 러시아·우크라이나보다는 한국 기업의 탄소 저감 능력이 앞서 있기 때문에 상대적 우위가 있다”고 말했다.

EU ‘탄소국경세’
EU로 수입되는 제품의 탄소 함유량에 EU ETS(탄소배출권거래제)와 연계된 탄소 가격을 부과해 징수하는 조치. 제품을 만들 때 나온 탄소가 자국 제품보다 많으면 그 초과분에 비용을 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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