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암투병 日음악가의 인생무상

중앙일보

입력 2021.07.15 19:00

업데이트 2021.07.15 19:38

사카모토 류이치. 2018년 방한해 본지와 인터뷰 했을 때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카모토 류이치. 2018년 방한해 본지와 인터뷰 했을 때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ㆍ69)라는 이름은 모를 수 있지만 그의 음악은 한 번쯤 들어봤을 터다. 일본인 피아니스트이자 현대음악가로 미국 뉴욕에서 주로 활동해온 그의 곡은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다. ‘레인(Rain)’ 등이 대표적이다.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다. 1987년작 ‘마지막 황제’ 음악 감독으로서다. 한국 영화 ‘남한산성’(2017)의 음악도 그의 손을 거쳤다. 그런 그가 두 번의 암 투병과 팬데믹을 거쳐 최근 내놓은 신작의 제목은 ‘시간(Time)’이다. 뉴욕타임스(NYT)는 14일(현지시간) “세계적 아티스트인 사카모토가 꿈과 환생과 인간의 투쟁, 그리고 시간에 대한 탐구로 돌아왔다”며 그와의 화상 인터뷰를 소개했다. 그는 뉴욕에서 30년 이상 거주했지만 지난해 11월부터 일본 도쿄에서 암 치료를 위해 거주 중이다. 그는 2014년엔 인두암, 지난해엔 직장암 판정을 받았다.

이번 신작은 그가 인두암 극복 후 내놓았던 ‘에이싱크(Async)’와 흐름을 같이 한다. 비(非) 동시성과 인생무상, 혼돈 등을 주제로 했던 당시 음반에서 사카모토는 현대음악가로서의 실험적 면모를 드러냈다. 이번 ‘시간’은 그간 전시회며 공연에 연기 등 다양히 외연을 넓혀온 그의 궤적을 반영한다. 단순한 앨범으로 구성된 작품이 아니라, 짧은 영상까지 함께 봐야 완성되는 작품이다. NYT는 “일종의 오페라”라고 정의했고, 사카모토 자신은 “음악과 설치미술의 만남이라고 생각해달라”고 전했다.

그는 NYT에 “우리는 시간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뮤지션인 나는 항상 소리를 시간에 맞추어 조작해내는 게 일”이라며 “인간과 시간은 무상하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을 두고는 일본 전통 극의 일종인 ‘무겐 노’(夢幻 能)를 차용했다고 설명했는데, 꿈 또는 상상 속에서 펼쳐지는 스토리텔링 기법의 일종이다. 그는 이 기법을 쓴 데 대해 “우리의 꿈 속에서 시간의 모든 요소는 파괴된다”며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 이야기를 꺼냈다.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사카모토 류이치가 행사장에서 핸드프린팅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사카모토 류이치가 행사장에서 핸드프린팅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자가 나비가 되어 날고 있는 꿈에서 깨어난 뒤, 자신이 나비가 된 꿈을 꾼 게 맞는지, 아니면 자신이 나비가 꾸고 있는 꿈인지 의문을 갖는다는 내용이다. 그는 “나비가 장자인지, 장자가 나비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한한 존재인 우리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려고 애쓰지만 결국 모든 것은 무상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번 작품의 주제는 ‘시간은 천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라며 “잠깐 낮잠을 잤을 뿐인데 깨고 보니 50년이 지나있다는 (일본 전통극) 노(能)의 내용처럼, 결국 모든 것은 덧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그의 철학적 면모엔 연이은 암 투병도 한몫한 듯 하다. 그는 NYT에 “암 투병이라는 건 시간이 참 오래도 걸리는 일”이라며 “올 가을 또 한 번의 수술을 앞두고 있다”고 담담히 말했다. 투병은 그러나 그의 의지까지 꺾지는 못했다. 기존의 악기 연주를 넘어 자신이 구현하고 싶은 소리를 낼 수 있는 새로운 악기까지 고안하려고 계획 중이라고 한다. 그는 “내 작품활동 궤적을 보면 (하나의 일관된 선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지그재그”라며 “그래도 ‘에이싱크’에서부터 이번 ‘시간’까지, 인간의 무상함에 대한 주제는 계속 파고 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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