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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생이가 대선판을 흔들었다" 최재형의 전격 입당 승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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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생이인 줄 알았던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야권 대선판을 흔들어 놨다.”
범야권의 대선주자로 거론돼온 최 전 원장이 15일 국민의힘에 입당하자 당 중진의원이 내놓은 관전평이다. 그만큼 최 전 원장의 입당은 '범생이의 대반전'으로 표현될 만큼 전격적이었다. 그는 이날 오전 10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30분간 비공개 회동한 뒤 “오늘 평당원으로 입당한다”고 선언했다. 불과 30분 뒤 당사에서 열린 입당 행사에서 이 대표에게서 꽃다발을 받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 지도부도 놀랄 정도로 모든 게 속전속결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최 전 원장은 입당 선언 뒤 취재진과 만나 “당 밖에서 비판적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것보다는 정당 안에서 정치를 변화시키는 주체가 돼야 한다는 게 바른 생각”이라고 입당 이유를 밝혔다. 그는 “정권교체도 중요하지만, 교체 뒤 국민의 삶이 전보다 나아지는 게 더 중요하다”며 “미래가 보이지 않는 청년이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제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감사원장으로서 국정의 각 분야를 들여다본 최 전 원장은 “나라가 너무 분열돼 있고, 정부 정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그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되고 있다”며 “온 국민이 고통 받는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정권 교체를 이루는 중심은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라고 밝혔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입당식에서 모바일로 입당신청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입당식에서 모바일로 입당신청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날 최 전 원장의 평당원 입당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입당 행사에서 최 전 원장과 팔꿈치를 맞대고 인사한 이 대표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준석 “모바일 당원 가입과 종이(입당원서) 가입 중 어떤 걸 선호하세요?”
최재형 “모바일로 하시죠”

이 대표는 본인의 명함을 꺼내 뒷면에 인쇄된 QR코드를 보여줬고, 최 전 원장이 이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스캔해 당원 가입을 완료했다. 이 대표는 “동지가 된 걸 환영한다”고 했고, 김기현 원내대표는 “평당원으로 입당한 분에게 이런 거대한 환영식은 처음”이라고 최 전 원장을 치켜세웠다.

최 전 원장은 전날 밤 김영우 캠프 상황실장 등 극소수 인사들과 서울 종로의 임시거처에서 심야 회동한 뒤 밤샘 고민 끝에 입당을 결심했다고 한다. 최 전 원장 측 관계자는 “매우 가까운 지인들도 결심 사실과 방향을 몰랐을 정도”라고 전했다. 그동안 최 전 원장 주변 인사들 중엔 조기 입당에 대한 신중론을 펴는 이들도 일부 있었기 때문이다.  최 전 원장은 일부 지인들에겐 국민의힘 방문 직전 문자 메시지로 자신의 결심을 알렸다.

“다음 행보 궁금하게 만들어”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이준석 대표 예방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이준석 대표 예방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최 전 원장이 외부 주자 중에선 처음으로 입당 승부수를 던지면서 야권 대선 지형의 지각 변동이 예고된다. 야권 중진인사는 "지명도와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최 전 원장으로선 국민의힘 입당외엔 별다른 대안이 없었을 것"이라면서도 "최 전 원장이 얼마나 존재감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범야권의 ‘윤석열 독주’ 구도가 요동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감사원장직 사퇴 9일 만에 정치도전을 선언하고, 17일 만에 입당한 최 전 원장의 ‘속도전’은 일단 범 야권의 대선 경쟁 구도을 흔들면서 정치권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지난달 29일 윤 전 총장의 정치선언에 참석했던 국민의힘 의원은 “벌써부터 ‘최 전 원장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는 말이 의원들 사이에서 나온다”는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날 최 전 원장은 '윤 전 총장과 의식적으로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금까지 다른 분들의 행동이나 선택에 따라 저의 행보를 결정해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최 전 원장이 의도적으로 윤 전 총장과 상반된 행보를 걷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준석 대표와의 회동만 해도 윤 전 총장의 경우엔 지난 6일 비공개로 만났지만, 회동 사실은 이틀이 지나서야 알려졌다. 이후에도 “정치 얘기만 했다”(이 대표) “정치 현안 얘기는 하지 않았다”(윤 전 총장 측)로 설명이 엇갈려 “도통 양측의 의중을 읽기 힘들다”는 말이 야권에서 흘러나왔다.

반면 최 전 원장 측은 이날 오전 공보 카톡방을 통해 이 대표와의 만남을 공개적으로 알렸다. 그리고 전광석화처럼 입당을 결정했다. 입당을 미루며 중도확장에 공을 들이는 윤 전 총장과는 확연히 대비된다.

‘전언 정치’라는 비판을 받았던 윤 전 총장을 겨냥하는 듯한 발언도 나왔다. 최 전 원장은 '따로 대변인을 두지 않는 게 전언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런 의미가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 최 전 원장 측 캠프 인사들은 윤 전 총장이 캠프 내부에 대변인, 부대변인 등 직제를 둔 것을 언급하며 “무직책, 업무 중심으로 캠프를 꾸리자”고 최 전 원장에게 제안했다고 한다.

“조기에 우군 눌러 담는 ‘압력밥솥’ 전략”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12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아 고 백선엽 장군 묘소와 천안함46용사묘역, 제2연평해전 전사자묘역, 연평도포격 전사자묘역을 차례로 참배한 뒤 현장 취재진을 만나 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성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12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아 고 백선엽 장군 묘소와 천안함46용사묘역, 제2연평해전 전사자묘역, 연평도포격 전사자묘역을 차례로 참배한 뒤 현장 취재진을 만나 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성태

최 전 원장이 입당을 통해 국민의힘 내부의 잠재적 우군을 조기 선점할 기회를 얻었다는 분석도 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학과 교수는 “대선을 앞두고 다양한 정치적 이해 관계가 분출되기 전에 조기 입당해 당내 지지 여론을 꾹꾹 눌러 남겠다는 일종의 ‘압력밥솥 전략’”이라며 “정치 기반이 없는 최 전 원장에게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캠프 상황실장을 맡고 있는 김영우 전 의원은 이날 TV에 출연해 "최재형이라고 하는 '진짜'가 나타난 것"이라며 "믿을 수 있고 반듯한 대통령감, 대세는 최재형이 될 것"이라고 당내 지지세 확산을 기대했다.

실제로 당 밖의 최 전 원장을 반신반의하던 당 기류가 일부 달라지는 조짐도 있다.
이날 당 최고위원들과 성일종 의원이 입당식을 찾았고, 조해진 의원, 천하람 당협위원장 및 일부 PK(부산·울산·경남) 지역 의원들의 캠프 합류설도 흘러나왔다. 2012년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기소돼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김용판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자청해 최 전 원장을 공개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김영우 전 의원외에 '이명박 청와대'에 몸담았던 실무진 일부가 참여해 급한대로 캠프도 골격을 갖춰가는 중이다.

최 전 원장의 약점으로 꼽히는 낮은 인지도와 지지율 문제가 입당 이후 일정 부분 해소될 거라는 분석도 있다. 최 전 원장 측 관계자는 “제1야당 대선 주자로 출마를 선언하면 ‘정치인 최재형’의 무게감도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부산지역 의원은 “이번 입당으로 다른 당 주자들과 단번에 동일 선상에 설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정치 초보인 최 전 원장이 당 내 주자들의 견제를 뚫고, 불쏘시개 역할을 넘어서 윤 전 총장에 버금가는 다크호스로 성장하려면 어려움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이날 유승민 전 의원은 “좋은 분과 함께 경선을 치르게 돼 기쁘다”는 입장을 냈고, 원희룡 제주지사는 “정권의 집요한 방해를 뚫고 감사원의 역할을 다한 뚝심으로 정권 교체에 큰 힘이 돼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최 전 원장 입당에 대해 “정치하는 분 각자의 선택을 존중한다”며 “정치적인 손해가 있더라도 한번 정한 방향은 일관되게 걸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전 총장이 당분간 마이웨이 전략을 고수할 거로 보인다. 최 전 원장 입당의 파장을 좀 더 지켜보자는 의도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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