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불길 잡은 시민,사기 피해 알려 범인 잡은 금은방 주인

중앙일보

입력 2021.07.15 15:56

업데이트 2021.07.15 16:57

지난 10일 낮 12시10분쯤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의 한 대형상가 건물. 유니폼을 납품하기 위해 이 건물 6층에 들어선 김재관(45·서울시 도봉구)씨는 매캐한 냄새를 맡았다. 주변을 살펴보니 인테리어 공사 자재를 쌓아 놓은 야외 테라스에서 검은 연기와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놀란 김씨는 즉시 주변에 있던 소화기를 들고 야외 테라스로 달려나갔다. 불을 끄면서도 119에 “불이 났다”고 신고했다.

지난 10일 경기도 수원시의 한 대형상가 화재 현장에서 홀로 불을 끈 김재관씨.본인 제공

지난 10일 경기도 수원시의 한 대형상가 화재 현장에서 홀로 불을 끈 김재관씨.본인 제공

쌓여있는 자재들을 태운 불은 점점 거대해졌다. 소화액을 아무리 분사해도 잦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소화액이 바닥나자 김씨는 인근 소화전을 끌고 와 다시 불을 껐다.

하지만, 불길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무엇인가 터진 듯 ‘펑’소리와 함께 유리창이 깨지기도 했다고 한다. 홀로 고전분투하는 김씨를 돕는 사람은 없었다. 점심시간이라 인테리어 공사를 하던 인부들은 모두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 화재경보기 소리를 듣고 나온 사람들은 대피하기 바빴다. 일부는 혼자 불을 끄는 김씨를 보며 발만 동동 굴렀다고 한다.

수원 상가 화재 초기 진압 용감한 시민

수원 상가 화재 초기 진압 용감한 시민

“불이 났다”는 말에 급하게 현장으로 복귀한 일부 인부들이 김씨를 돕기 시작했다. 불은 곧 출동한 소방관들에 의해 20분 만에 꺼졌다.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소방 관계자는 “김씨의 초동 대응으로 조기에 화재를 진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 "당연한 일을 한 건데…"

그러나 김씨의 옷 일부는 열기에 탔고, 다리는 화상을 입어 수포가 올라온 상태였다. 왼쪽 약지는 접질려 벌겋게 부풀어 올랐다. 그는 15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불이 꺼져서 다행’이라는 생각에 부상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저녁에 내 모습을 본 아내가 ‘위험한데 왜 그랬냐’며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왜 신고한 뒤 대피하지 않고 직접 불을 껐냐”고 묻자 김씨는 “초동대처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둘째 형이 현직 소방관인데 항상 ‘불이 나면 진화 작업을 하면서 119에 신고하는 등 초동대처를 제대로 해야 큰 사고로 번지지 않는다’고 강조했었다”며 “이런 말을 계속 들어서 그런지 불을 본 순간 소화기가 어디 있는지부터 찾게 되더라“고 말했다.

김씨에게 초동대처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김씨의 둘째 형은 막상 화재 당시 영상을 보곤 “이렇게 불길이 치솟는 상황이었으면 피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한다. 김씨는“당연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부상자가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수원소방서는 오는 19일 김씨에게 ‘민간인 화재 유공 표창’을 수여한다.

자기가 당한 사기 주변에 알려 범인 잡은 금은방 주인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서 금은방을 운영하는 A씨는 지난 2월 중국 국적의 남녀에게 귀금속을 팔았다가 낭패를 봤다. “현금이 없으니 계좌 이체로 물건값 980만원을 보내겠다”는 이들의 말을 믿고 계좌번호를 알려준 것이 화근이었다. 이후 A씨의 통장 거래가 정지됐다.

확인 결과 이들 남녀가 A씨에게 돈을 보낸 은행 계좌는 보이스피싱 피해자 명의로 된 것이었다. 피해자의 통장에서 빠져나간 돈이 A씨의 계좌로 입금되자 A씨도 보이스피싱 조직원일 수 있다고 의심해 거래가 정지된 것이었다. 은행과 경찰을 차례로 찾은 A씨는 상황을 설명하며 오해를 풀었다. 그러나, A씨의 통장에 들어온 돈 자체가 범죄 수익금이라 즉시 회수되면서 A씨는 980만원 상당의 귀금속만 날리게 됐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사용된 통장을 이용해 범행한 사기단 검거에 도움을 준 A씨(오른쪽). A씨는 본인의 신원이 공개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안산시

보이스피싱 범죄에 사용된 통장을 이용해 범행한 사기단 검거에 도움을 준 A씨(오른쪽). A씨는 본인의 신원이 공개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안산시

A씨는 경찰에 신고한 뒤 자신의 피해 사실을 인근 상인들에게 자세하게 알렸다. 이들이 같은 범행을 또 저지를 것을 예상한 것이다.

예상은 맞았다. 이들 남녀는 안산시의 다른 금은방을 또 찾았다. 이들을 본 금은방 업주 B씨는 A씨의 경고를 떠올렸다고 한다. 이들의 요구에 응하는 척 신분증과 차량 번호 등을 확인했다. B씨가 계좌 이체 요구를 거절하면서 거래는 불발됐다. B씨는 A씨와 함께 이들의 모습 등이 담긴 폐쇄회로 TV(CCTV) 등 증거품을 경찰에 건넸다.

충남 천안경찰서는 사기 등 혐의로 이들 2명과 보이스피싱 알선책 등 3명을 적발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 등이 제공한 증거들이 용의자 선정과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라고 말했다.

안산시는 지난 14일 A씨에게 모범시민 표창장을 수여했다. 그러나 A씨는 얼굴 등 신원이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대신 안산시에 “당연한 일을 한 건데 상을 줘서 감사하다”며 “나는 피해를 봤지만, 다른 사람들은 손해를 입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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