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더오래]더 늙기 전 ‘테메노스’서 인고의 시간 가져야 장수한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15 13:00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87)  

머리는 쳐들고 눈은 숙이며 테메노스의 공간을 향해 외줄을 당긴다. [사진 pixabay]

머리는 쳐들고 눈은 숙이며 테메노스의 공간을 향해 외줄을 당긴다. [사진 pixabay]

신발 끈을 조이며

눈앞에 우뚝 솟은 천 길 암벽은
두 번째 생을 부활시킨
늙은 독수리의 제단

생의 절정에서 추락을 각오한 몸부림
제 부리를 부러뜨리고 발톱을 뽑던
핏빛 자취를 찾아 경배하라고
심해처럼 검푸르게 출렁이고 있다
바위도 울렁거린다더니
한 뼘의 길이가 얼마나 긴 침묵인지
남은 생명의 두께가 그렇게 가벼운지
견주어 보라고
묵 빛 가슴으로 유혹하고 있다

不和하는 말이 끊어진 자리
머리는 쳐들고 눈은 숙이며
테메노스*의 공간을 향해
미끄러지지 않을 외줄을 당긴다
질끈 발끝의 외뿔을 조인다

해설
코로나19 사태가 새로운 국면으로 빠져들었다. 봉쇄 수준인 4단계가 발령되었다. 잠시 방심한 틈을 비집고 들어온 변이 바이러스가 무섭게 번지고 있다. 불화하는 말처럼 세상을 시끄럽게 할 뿐 가닥이 잡힐 줄 모른다.

날짐승의 우두머리인 독수리는 인간의 수명과 비슷하다. 70~80년간을 산다고 한다. 생애의 절정 시기에 중대한 결심을 한다. 구부러진 부리와 발톱이 자랄 대로 자라 발과 제살을 파고들게 된다. 한창때의 기능이 소실되어 간다. 어차피 늙어 기능을 잃은 채 서서히 죽어 갈 것인지 아니면 발톱과 부리를 뽑아버리는 고통을 감내하며 새로운 생명의 도구를 재탄생시킬 것인지 선택의 시간에 맞닥뜨린다.

새로 태어나기로 결정한 독수리는 비장한 각오로 높은 산 정상의 바위에 오른다. 가혹한 환경에 둥지를 트고 바위에 강하게 부리를 쪼아 못쓰게 된 부리를 뽑아낸다. 새 부리가 돋아나기까지 먹이를 먹지 못하는 기아의 고통을 견딘다. 새 부리로 자신의 발톱을 하나하나 뽑아낸다. 또 힘찬 날갯짓으로 낡은 깃털을 뽑아버린다. 이렇게 약 반년의 혹독한 시련을 거친 독수리는 재탄생하게 된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부수는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 하는 거다.

사람에게 부리는 말이다. 사람은 말로서 세상과 교류하며 먹이를 획득하고 나누는 것이다. 사람도 정상의 시기가 다가오면 그동안 부리와 발톱으로 제살을 파고들어 갉아먹은 사연이 쌓여간다. 나부터도 돌아보면 말실수가 한둘이 아니다. 주워 담고 싶은 사연이 정말 많다.

사람도 정상의 시기가 다가올수록 말로 제 살을 파고들어 갉아먹은 사연이 쌓여간다. [사진 pixabay]

사람도 정상의 시기가 다가올수록 말로 제 살을 파고들어 갉아먹은 사연이 쌓여간다. [사진 pixabay]

그런데 보통 나이가 들어가면 오히려 귀를 닫고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게 된다. 내 말만 줄기차게 내뱉는다. 조그만 권력과 힘을 지니고 있으면 그 정도가 더 심하다. 해가 갈수록 세상이 시끄러운 이유도 여기서 비롯한다.

독수리가 고독한 산꼭대기 둥지에 거처를 삼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인고의 시기를 보내듯 사람도 그런 시간을 가져야 한다. 독수리가 낡고 쓸모없는 부리와 발톱을 부수고 뽑아내듯이 사람도 자신의 언행을 돌아보며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야 한다.

독수리는 누구도 오를 수 없는 바위산에 스스로 올라갔다. 재탄생의 조건은 단절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심리학자 칼 융은 그런 공간을 그리스 신화를 빌어 ‘테메노스’ 공간이라고 불렀다. 고대 희생제의가 치러지던 신성한 공간을 말한다. 융은 각 개인도 이런 심리적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융은 건강한 심리를 가지려면 ‘개성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개성화는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길은 반드시 제 부리와 발톱을 뽑는 고통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불화하는 말을 멈추고 자기 본성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 개성화는 한 발짝 가까워진다.

만천하에 공개된 SNS에 여과 없이 쏟아낸 말과 글은 테메노스의 공간을 거쳐 숙성된 내면의 소리가 아니다. 창피함을 모르는 부끄러운 행동이다.

자신의 문제를 자기 내면에 담아두고 경솔한 실수를 두 번 범하지 않게 막는 일, 화를 가져오는 일을 예방하는 것, 이런 게 성숙이다. 논어에 공자는 수제자 안회를 평하며 ‘불천노 불이과(不遷怒不貳過)’라고 말했다. 인간의 본성에서 벗어나는 잘못을 저지르는 걸 예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칭찬이다. 안회야 말로 테메노스의 공간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독수리처럼 부리와 발톱을 갈아 재탄생시키고 높이 난 인물이다. 비록 일찍 생을 마감했을망정 안회라는 유일무이한 인물로 살아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었다. ‘불천노 불이과’의 삶이 문득 그리워지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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