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갈등' 빚은 제천여성도서관…기부자 김 할머니의 뜻은?

중앙일보

입력 2021.07.15 12:32

업데이트 2021.07.15 13:15

제천여성도서관 페이스북 캡처

제천여성도서관 페이스북 캡처

국내 최초 여성전용 도서관인 충북 제천여성도서관이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남성 출입을 허용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이를 두고 찬반이 엇갈리는 가운데 애초 제천여성도서관에 13억원 상당의 부지를 제공한 기증자가 "여성만을 위한 도서관 건립을 원한 적이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최근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주장은 기부자인 김학임 할머니(1997년 작고)가 시민들과 학생들을 위해 도서관을 기증한 것이지, 여성 도서관을 원한 것은 아니다라는 거다. 이들은 여성도서관 부지 기증자인 고 김학임 할머니의 과거 인터뷰한 내용을 갈무리해 근거로 삼고 있다. 이런 주장은 사실일까.

언론 인터뷰서 "여학생 말한 적 없다" 

과거 김학임 할머니 언론 보도. 독자 제공

과거 김학임 할머니 언론 보도. 독자 제공

충북 제천에 위치한 제천여성도서관은 1997년 작고한 김학임 할머니가 기부한 땅(당시 13억원 상당)에 제천시가 예산을 보태 1994년 개관했다.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로, 개관 이후 여성들에게만 개방하다가 2011년 인권위 권고를 받은 뒤 1층에 남성도 출입할 수 있는 북카페를 운영했다.

실제로 김 할머니의 사연을 담은 과거 언론 인터뷰를 살펴보면, 김 할머니는 특별히 여성도서관을 세워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대개 "어린 사람들이 더 많이 배우고 올바른 생각을 가졌으면 하는 것""굳이 도서관 부지로 기증한 이유는 교육보다 더 좋은 재산은 없다는 생각에서다"라고 설명했다.

14일 충북 MBC가 공개한 생전 인터뷰에서 김 할머니는 "도서관을 여학생용으로 지어달라고 하셨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니, 아니에요. 그거(기사) 잘못 썼습니다. 왜 여학생만 해요. 여학생 얘기도 안 했어요"라고 답했다.

김학임 할머니의 생전 인터뷰. 충북 MBC 캡처

김학임 할머니의 생전 인터뷰. 충북 MBC 캡처

하지만 기부 의사를 밝힌 후 구체적으로 도서관 건립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여성도서관 건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고 한다. 일반적인 도서관으로 삼기엔 부지가 협소하고,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독려 되던 상황이 참작됐다고 한다.

회의록엔 '여성 도서관 건립' 동의

김 할머니도 이런 방향 전환에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회의록엔 김 할머니가 여성 도서관 건립에 동의한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김 할머니는 여성도서관의 건립식에도 참석했다.

여성도서관 건립식에 참석한 김학임 할머니. 충북 MBC 캡처

여성도서관 건립식에 참석한 김학임 할머니. 충북 MBC 캡처

제천여성도서관 측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충북 MBC가 공개한 영상은 미처 알지 못했다"면서 "하지만 보도에 나온 회의록은 확인해보니 맞는 내용이었다"고 답했다. 도서관 관계자는 "과거에 회의를 진행하셨던 분들은 지금 남아있지 않는다"며 "서류에 남아 있는 내용을 근거로 도서관을 운영 중"이라고 답했다.

'규모가 작으면 여성도서관이라도 원한다'는 김 할머니의 회의록 내용. 충북 MBC 캡처

'규모가 작으면 여성도서관이라도 원한다'는 김 할머니의 회의록 내용. 충북 MBC 캡처

삯바느질·돼지농사로 모은 돈 기부

당시 보도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48년간 경찰관으로 일한 남편의 박봉을 만회하기 위해 삯바느질과 돼지 사육, 양말공장 사업 등을 통해 생계를 꾸렸다.

부부는 이렇게 모은 재산을 하나뿐인 아들 대신 학생들을 위해 도서관 부지로 내놓았다. 이들은 여생을 20평 남짓한 집에서 50만원 안팎 연금으로 생활했다.

인권위 결정에 "남성 서비스 중단" 국민 청원  

제천여성도서관은 지난해 11월 인권위로부터 "남성 이용자가 완전히 배제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해라"는 권고를 받았다. 이에 따라 지난 14일부터 남성들의 2층 자료열람실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제천여성도서관 페이스북 캡처

제천여성도서관 페이스북 캡처

이를 두고 인권위 홈페이지와 제천시 홈페이지에는 "여성도서관을 바랐던 기부자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이라며 인권위와 제천시를 비판하는 의견이 다수 게시됐다.

한 네티즌은 "제천여성도서관은 과거 우리나라 여성들이 교육에서 배제된 삶을 살아왔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차별을 겪었던 여성의 삶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여성전용'으로 남겨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을 담은 '제천여성도서관의 남성 도서 서비스 중단·폐지를 요구합니다'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은 현재까지 4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국민청원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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