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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만 탄다”는 F1 전설 해밀턴, 이젠 인권 전도사로 ‘질주’

중앙일보

입력

루이스 해밀턴. AP=연합뉴스

루이스 해밀턴. AP=연합뉴스

서른여섯 나이에 세계적 자동차 경주대회인 포뮬러원(F1)에서 일곱 번 우승하며 영국 왕실 기사작위까지 받은 루이스 해밀턴. 파란 많았던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30대에 살아있는 전설이 된 그가 최근엔 환경 및 인종 차별 등 사회 문제에 적극 나서고 있어 화제다. 그는 지난 13일(현지시간) BBC 인터뷰에서 “예전에 내가 'F1에는 왜 이렇게 (인종) 다양성이 부족하냐'고 물었을 때 아무도 답을 내놓지 못했던 게 기억난다"며 "(그 답을 찾는 것이) 나의 존재 이유"라고 답했다. 혼혈인 자신이 백인 위주의 F1에서 변화를 이끌겠다는 포부다.

왕성한 현역이기에 파급력도 높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엔 아예 자신의 이름을 딴 해밀턴 위원회를 설립, 인권 운동에 본격 나섰다. 그는 BBC 인터뷰에 이어 14일엔 “해밀턴 위원회가 영국 모터스포츠계의 다양성 증진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했다"며 "매우 자랑스럽다”고도 밝혔다.

그는 이어 “F1엔 수 천개의 일자리가 있지만 그중 1%만이 흑인의 몫”이라며 “위원회의 목표는 이를 바꾸는 것”이라고 전했다. 위원회의 첫 보고서엔 영국 전역 학교의 절반은 흑인이나 아시아인, 소수인종 교사가 없다는 내용도 담겼다. 그는 13일 BBC와 인터뷰에서도 “F1에서 인종과 계층 간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내가 후대에 남기는 유산이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밝혔다.

‘전설’ 미하엘 슈마허 넘어섰다…英 왕실 기사 작위도

경주용 차량에 올라탄 루이스 해밀턴. AP=연합뉴스

경주용 차량에 올라탄 루이스 해밀턴. AP=연합뉴스

해밀턴은 백인 전유물로 여겨졌던 F1의 첫 흑인 선수이자, 데뷔 2년째인 2008년 최연소 챔피언 타이틀(23세 9개월 26일)을 거머쥔 입지전적 인물이다. 지난해 10월 ‘F1 전설’인 미하엘 슈마허(52)의 그랑프리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을 넘어서면서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이런 맹활약을 인정받아 지난 1월엔 영국 왕실 기사 작위를 받았다.

그는 1985년 1월 7일 영국에서 백인 어머니(카멘 라발레스티)와 흑인 아버지(앤서니) 사이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레나다에서 영국으로 온 이민자다. 부모는 해밀턴이 2살 때 이혼했고, 그때문에 어려움도 겪었지만 그는 일찌감치 싹을 틔운 될성부른 떡잎이다. F1에 영향력이 막강한 자동차 기업 맥라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뛰어난 프로로 성장했다. 그의 이복 동생 니콜라스는 뇌성마비 앓고 있는 장애인 F1 선수로도 유명하다. 어머니는 다르지만 두 형제의 우애는 깊다.

해밀턴은 초중반 선수 시절엔 복잡한 사생활 등으로 악동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환경문제 등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며 환골탈태 중이다. 2017년부터 채식주의자로 전향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돼지 동영상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공유하면서 “육식주의자들로 인해 동물들에게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며 채식 동참을 호소했다.

‘탄소 중립’ 선언한 채식주의자…“불가능을 꿈꾸라”

F1 동료 선수들과 '무릎꿇기' 운동에 나선 루이스 해밀턴(가운데). AP=연합뉴스

F1 동료 선수들과 '무릎꿇기' 운동에 나선 루이스 해밀턴(가운데). AP=연합뉴스

2019년엔 자동차 경주 선수인 그가 ‘탄소 중립’을 선언하며 충격을 던졌다. 지난해엔 그는 파가니 존다를 비롯해 포드 머스탱 앨리노어, 1966년식 셸비 코브라 등 자신이 보유한 수퍼카 컬렉션은 더는 타지 않는다면서 “이제 (전기차인) 메르세데스 벤츠 EQC만 탄다”고 밝혔다. 경비행기도 소유했지만 팔았고 일상생활에서도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지난해부터는 인종차별 근절 운동에도 본격 목소리를 냈다. 미국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영향을 줬다. F1 경기장에서도 조지 플로이드를 기리며 인종 차별을 외치는 캠페인인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문구가 적힌 검은색 티셔츠를 자주 착용한다. 이 티셔츠 등판엔 '인종차별 종식(END RACISM)' 문구가 박혀 있다.

한편 그의 질주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해 11월 터키 그랑프리에서 슈마허의 기록과 같은 통산 7번째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F1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그의 소원대로 뿌리 깊은 인종차별의 역사도 종식될 수 있을까. 해밀턴은 당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불가능을 꿈꾸세요.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그리고 절대 자신을 의심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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