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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약국 없어도, 관광 헬기는 있어요…영덕 깡촌의 반전 매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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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농촌 ③ 영덕 고래산마을

경북 영덕 고래산마을. 평범한 농촌같지만, 전국에서 유일하게 헬기 투어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영덕과 동해안 일대를 누빌 수 있는 관광 헬기 10대가 마을 안에 있다. 백종현 기자

경북 영덕 고래산마을. 평범한 농촌같지만, 전국에서 유일하게 헬기 투어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영덕과 동해안 일대를 누빌 수 있는 관광 헬기 10대가 마을 안에 있다. 백종현 기자

경북 ‘영덕’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보통 두 가지다. 마디마디 고소한 향을 품은 대게와 코발트 블루의 실체를 보여주는 짙푸른 바다. 관광객 대부분이 항구와 해변만 돌다가 떠난다. 하나 축산면 상원리 ‘고래산마을’에 가면 또 다른 재미가 있다. 겉보기엔 평범한 농촌 같지만, 노는 방식이 다르다. 들녘 한복판에 캠핑장, 키즈카페, 범퍼카 따위를 두고 손님을 맞는다. 가장 놀라운 건 헬기 투어다. 마을에서 한나절을 보냈는데 경운기나 트랙터보다 헬기를 더 많이 목격했다. 낯선 시골에서 인생의 버킷리스트 하나를 이뤘다.

하늘에서 본 영덕

7번 국도는 강원도 고성에서 출발해 해안을 따라 쭉 내려오다 영덕에 이르러 내륙으로 파고든다. 영해면 읍내를 빠져나와 들판을 달리다 보면 느긋한 전원 풍경이 나타나는데, 이게 고래산마을이다. 고래산(291m) 자락에 80여 가구가 듬성듬성 모여 촌락을 이룬다. 편의점이나 약국‧학교는커녕 식당 하나 없는 깡촌이지만, 근래 전국에서 가장 신나는 농촌으로 떴다.

마을 한복판의 다목적회관이 관광 허브 역할을 한다. 마을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방송국과 객실이 있다. 농민과 관광객을 위해 시골밥상을 내는 식당도 있다. 다목적회관의 앞마당은 너른 야영장이요, 헬기장이다. 백종현 기자

마을 한복판의 다목적회관이 관광 허브 역할을 한다. 마을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방송국과 객실이 있다. 농민과 관광객을 위해 시골밥상을 내는 식당도 있다. 다목적회관의 앞마당은 너른 야영장이요, 헬기장이다. 백종현 기자

마을 한복판의 축산초등학교는 10년 전 문을 닫았다. 2019년 쓰러져가는 폐교를 헐고, 지금의 다목적회관과 키즈카페 등을 지었다. 다목적회관 1층은 마을 방송국이다. 주민이 손수 기획하고, 출연하고, 촬영‧편집까지 해 마을 홈페이지와 유튜브에 홍보 영상을 올린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매끈한 헬기장이다. 5인승부터 14인승까지 헬기 종류가 다양하다. 국내 유일의 헬기 투어 상품을 운영하는 ‘더 스카이’의 기지가 바로 이곳이다. 항공사엔 동해안을 코앞에 둔 입지가, 마을에선 히트 관광 상품이 절실했단다. 그렇게 2019년 6월 10대가 헬기가 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헬기에서 본 영덕 경정항. BTS가 2015년 ‘화양연화’ 프롤로그 영상을 찍었던 장소다. 백종현 기자

헬기에서 본 영덕 경정항. BTS가 2015년 ‘화양연화’ 프롤로그 영상을 찍었던 장소다. 백종현 기자

관광 헬기는 10여 분간 마을 상공을 누빈다. 600m 상공에서 고래산 정수리를 내려다보고, 축산항으로 나갔다가 동해안을 날아 마을로 돌아온다. BTS가 2015년 ‘화양연화’ 프롤로그 영상을 찍었던 경정항 해안도 지난다. 1명당 10만원(4인 이상)을 받는다. 헬기에서 본 풍경은 이교찬(80) 어르신의 회상으로 대신한다.

“눈물이 날 뻔 했쓰요. 60년 넘게 고래산을 오르내렸는데도 몰랐으니. 우리 마을이 정말 그림 같더라고.”

아이 없는 시골에 키즈카페

고래산마을 의외의 히트 상품은 키즈카페다. 영덕엔 아이들이 맘껏 뛰놀 수 있는 실내 놀이터가 드물었다. 사진 고래산마을

고래산마을 의외의 히트 상품은 키즈카페다. 영덕엔 아이들이 맘껏 뛰놀 수 있는 실내 놀이터가 드물었다. 사진 고래산마을

2019년 약 8000명, 2020년 약 1만5000명. 관광 농촌으로 거듭난 뒤 고래산마을에는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 대개의 농촌 체험마을과 달리, 고래산마을에는 이른바 농산물 수확이나 장 만들기, 목공예 같은 토속적인 체험 프로그램이 없다. 마을 최고의 인기 상품은 의외로 키즈카페다. 트램펄린과 정글짐, 볼 풀장 등을 갖춘 일반적인 실내 놀이터지만 영덕에선 전례가 없었다. 키즈카페의 앞마당은 물놀이장이자, 범퍼카 체험장이다.

“분교 하나 없는 시골에 키즈카페를 만든다고 했을 때 다들 말렸지만, 근사한 놀이터가 생기니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고 오기 시작했다”고 전병길(51) 고래산마을 위원장은 설명했다. 덕분인지 젊은 귀농인도 늘었단다.

고래산 아래에 한옥 ‘은혜당’이 있다. 100년 고택을 고쳐 손님을 받는 찻집이자 민박집이다. 백종현 기자

고래산 아래에 한옥 ‘은혜당’이 있다. 100년 고택을 고쳐 손님을 받는 찻집이자 민박집이다. 백종현 기자

고래산마을을 즐기는 팁 하나. 하룻밤 자고 가는 것이 남는 장사다. 다목적회관에 고래산과 들녘을 바라다보는 객실(7만원부터)이 7개 있는데 11월까지 방값을 50% 깎아준다. 이미 8월까지 손님이 꽉 찼다. 텐트 18동을 칠 수 있는 야영장(3만원)도 있다. 하룻밤 묵어가는 손님에게는 잔디가 깔린 마을 축구장(2시간 5만원)을 공짜로 빌려준다.

마을 곳곳이 생생한 놀이터다. 고래산 정상은 40분이면 오를 수 있다. 산 아래에는 ‘은혜당’이라는 ‘ㅁ’ 자형 한옥이 있다. 100년 고택을 고쳐 손님을 받는 찻집이자 민박집이다.

마을 주민이 다목적회관 1층에서 날마다 점심상(7000원)을 차린다. 주변 농민을 위한 음식이라, 점심만 운영한다. 농민 틈에 앉아 고등어조림, 된장국, 야채전 등이 담긴 시골밥상을 맛봤다. “소박한 시골밥상인데, 어째 요샌 관광객이 더 좋아한다”고 말하는 김호숙(66) 부녀회장의 얼굴에서 푸근한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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