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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인사, 어디까지 망가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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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사회디렉터

김원배 사회디렉터

‘법무부의 탈(脫) 검찰화’. 문재인 정부 들어 본격화된 인사 기조다. 검찰 출신이 법무부 장관과 차관은 물론이고 법무부 실·국장이나 과장 등 주요 보직에 돌아가며 기용되면서 수사뿐 아니라 법무 행정까지 장악하는 관행을 끊어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박상기·조국·추미애·박범계 등 비(非) 검사 출신이 법무부 장관에 기용됐다. 법무부 법무실장을 지내다 14일 승진·임명된 강성국 법무부 차관도 판사 출신이다. 택시기사 폭행 사건으로 사퇴한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후임이다. 이 전 차관 역시 판사 출신으로 법무부 법무실장을 지냈다. 이 과정에서 친정부 성향의 법조인들이 법무부의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무장관 지휘권 행사, 코드 인사 #기소 검사 승진, 검찰의 자기 부정 #소신 있게 수사할 검사를 내몰아

우려스러운 점은 탈 검찰을 외치면서 법무부의 검찰 장악력이 과도하게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들어 법무부 검찰국장이 검찰의 최고 핵심 보직인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직행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성윤 서울고검장은 법무부 검찰국장을 지낸 뒤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이동했고, 이정수 현 서울중앙지검장도 직전 보직이 법무부 검찰국장이었다.

검찰국장은 검찰 인사를 담당하고 수사 보고를 받는 요직이다. 법무부에서 정권의 기조에 맞는 정책을 집행하던 사람이 곧바로 주요 수사를 지휘하는 자리로 바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탈 검찰화를 한다면 그것에 맞게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해야 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있다.

안 그래도 추미애 전 장관과 현 박범계 장관은 검찰을 상대로 직접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며 힘을 과시했다. 지난해 10월 추 전 장관이 가족 및 측근 의혹 사건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대검이 지휘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김오수 검찰총장이 취임한 이후에도 이 지시가 유지되고 있다. 박 장관은 지난 5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자율성·책임성을 위해 (윤 전 총장 가족·측근 사건 수사가) 서울중앙지검장에게 맡겨진 것인데, 그 기조하에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는 윤 전 총장 가족·측근 사건을 얼마 전까지 검찰국장으로 자신을 보좌하던 이정수 지검장에게 맡기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원래 검찰은 준사법기관으로 독립적으로 수사하며, 법무부는 검사 인사와 예산으로 검찰을 통제한다. 하지만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직접 발동하고, 편가르기식 인사가 이어지면서 이런 균형이 무너졌다.

서소문 포럼 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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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에선 이를 검찰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고 정당화하지만, 그러기엔 인사의 난맥상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친정부 성향의 검사들이 중용되는 것은 물론이고, 범죄 혐의로 기소됐음에도 자리를 지키거나 승진을 하는 일이 버젓이 벌어진다. 반면 정권에 불편한 수사를 한 검사들은 대부분 좌천된다.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법 출금 의혹을 공익신고한 A 검사는 최근 인사에서 좌천성 보복 인사를 당했다며 박 장관을 국민권익위에 신고했다. 현행 공익신고자보호법엔 공익신고를 이유로 본인 의사에 반하는 인사나 전보 등 불이익을 주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다.

반면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혐의로 기소된 이규원 검사는 정부 부처 파견 검사라는 보직을 유지하고 있다. 불법 출금 의혹 수사를 무마한 혐의로 기소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서울고검장으로 승진했다.

기소는 범죄 혐의가 있다고 보고 검사가 법원에 재판을 청구하는 것이다. 국민을 상대로 형벌권을 행사하면서 그 대상이 된 검사들은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다. 이는 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기소의 가치를 스스로 부정한 행위다.

지난해 7월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한동훈 검사장에게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감찰 대상이 됐지만, 얼마 후 광주지검 차장검사로 승진했다. 지난해 10월 독직폭행 혐의로 기소까지 됐지만 인사 조치되지 않았다. 이번 인사에서 울산지검 차장검사로 이동한 정 차장검사는 다음달 12일 1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반면 후임자인 변필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은 채널A 전 기자와의 유착 의혹 사건에서 한 검사장에 대한 무혐의 의견을 냈다. 그는 청와대의 기획 사정 의혹 수사를 하다 창원지검 인권보호관으로 좌천됐다.

이런 인사가 일선 검사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 편은 보호하지만 말 듣지 않으면 좌천이란 거다. 이래선 소신 있게 수사할 검사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이게 그렇게 소리 높게 외쳤던 ‘검찰개혁’의 진정한 목적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