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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투어’ 열풍 낳은 이건희 컬렉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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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경호 기자 중앙일보 광주총국장
최경호 내셔널팀장

최경호 내셔널팀장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7일 ‘이건희 미술관’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자 전국이 들끓었다. “미술관 건립 후보지로 서울 송현동 부지와 용산가족공원 인근 땅 두 곳이 결정됐다”는 발표였다. “전문성을 갖춘 국립중앙박물관 인근에 들어서야 보존과 전시에 필요한 경험과 인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설명도 했다.

지방 지자체들은 반발했다. “그동안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 공을 들여온 터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라는 반응이다. 부산시는 발표 직후 “최소한의 공정한 절차도 거치지 않은 일방적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대구시도 “정부가 강조해온 문화 분권, 균형발전 정책 기조에 역행하는 결정”이라고 가세했다. 경남 창원과 진주시 등은 “수도권 집중을 더욱 부채질하는 망국적 결정”이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이건희 컬렉션을 토대로 국립 근대미술관을 만들자”고 주장해온 문화예술인들도 “원점 재검토”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지난 12일 “하나의 기관을 설립해 그곳에 모든 기증품을 모으는 것은 기관별 특성에 맞춰 기증한 취지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분산 기증한 기증자들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구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 대구미술관]

대구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 대구미술관]

앞서 고(故) 이건희 회장 유족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외에도 광주시립미술관(30점), 전남도립미술관(21점), 대구미술관(21점), 강원도 양구 박수근미술관(18점), 제주 이중섭미술관(12점) 등에 나눠 작품을 기증했다.

이건희 미술관을 둘러싼 경쟁은 지난 4월 28일 이 회장 유족 측이 미술품 기증의사를 밝히면서 촉발됐다. ‘이 회장 소유의 고미술품과 세계적 서양화 작품 등 2만3000여 점을 기증하겠다’는 말에 전국이 들떴다. 이 회장 유족이 기증한 작품의 총 감정가는 3조원, 시가는 10조원가량으로 추정된다.

미술품 기증 발표가 나오자 각지에서 앞다퉈 러브콜을 보냈다. 수도권 지자체는 물론이고 부산시와 세종시·광주광역시·대구시·수원시·용인시·진주시·의령군 등이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균형발전·문화분권 차원에서 미술관은 반드시 지방에 와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이들의 주장은 전국 곳곳을 달군 ‘이건희 컬렉션’ 열풍과도 궤를 같이한다. 현재 이 회장 기증품이 전시 중인 서울 덕수궁미술관과 대구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양구 박수근미술관 등에는 연일 관람객이 몰린다. 워낙 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관심이 높다보니 이들 미술관을 찾아 전국을 도는 마니아 투어족도 생겼다.

전국 투어에 나선 관람객들은 한결같이 “이건희 기증품과 전국 관광을 동시에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한다. 이건희 컬렉션 투어 특수를 누리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지방 도시에서도 좀 더 많이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절충안은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