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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다음은 알고리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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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수련 기자 중앙일보 산업부장
박수련 팩플 팀장

박수련 팩플 팀장

“기사님, 네비대로 말고, 다음 사거리에서 좌회전해주시면 좋겠는...데요.” 묵묵부답이던 그는 차를 휙 돌렸다. 잠시후 택시에서 내리자 콜택시 앱엔 기사님 평가 화면이 떴다. 퀴퀴한 택시 냄새가 떠올랐지만 별점은 남기지 않기로 했다. 일관된 기준을 갖고 누군가를 평가할 자신이 없었다. 기분 탓일 때가 많다. 게다가, 경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내게 그는 별을 몇 개나 줬을지 신경 쓰이기도 했다.

승객인 내가 받는 별점에 따라 당장 손해 볼 일은 없다. ‘당근마켓 매너온도’(거래 상대의 평가가 결정)처럼 공개되는 점수가 아니고, 미국 우버 앱처럼 별점 낮은 승객이 배차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상호평가 제도 덕에 어느 한쪽(보통은 소비자)이 무조건 왕인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그런데 소비자가 여전히 왕인 줄 아는 시장도 있다. 영세 상인이 많은 외식업, 특히 배달 음식 시장이다. 소비자의 일방적 갑질이 의심되는 ‘별점테러’를 받고 밤잠 설쳤다는 사장님들이 인터넷 게시판에 수두룩하다.

노트북을 열며 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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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식당 주인이 호의적인 리뷰를 돈 주고 사는 ‘허위리뷰’도 급증했다. 배달앱 1위 배달의민족은 지난해 13만건의 허위리뷰를 걸러냈다고 한다. 1년 전(2만건)의 6배 이상이다. 지난 5월엔 돈을 받고 전국의 배달식당에 대한 리뷰 350건을 쓴 업자가 법원에서 실형 선고를 받았다. 리뷰 많고 별점 높은 업체에 주문이 몰리고, 앱 상단에 노출되니 생기는 일이다. 코로나19 시대의 배달 앱 리뷰는 미슐랭가이드보다 더한 파워를 자랑한다.

눈여겨볼 건 플랫폼과 ‘리뷰 시장’의 관계. 플랫폼도 악질 리뷰를 걸러내려 노력한다지만, 한계가 있다. 소비자들이 남긴 상세 리뷰가 쌓일수록 플랫폼은 흥하기 때문. 이커머스 플랫폼들이 구매후기 작성하면 적립포인트를 주는 이유다. 그래서 별점을 없애고 가게 특색 중심의 리뷰를 받는다는 네이버 방식이 더 좋을지, 잘 모르겠다. 별점은 집단지성으로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었다.

정부와 국회가 뒤늦게 플랫폼의 리뷰 관리 책임을 묻겠다고 한다. 필요한 조치다. 이왕 얘기가 나온 김에, 소비자들이 남긴 리뷰 데이터가 플랫폼 기업의 이익으로 이어지는 과정도 보길 바란다. 택시업계는 승객의 기사 별점과 여러 변수를 엮은 알고리즘을 콜 배차에 반영하는 상품이 논란이다. 소비자도 택시 배차가 잘 안되면 1000~3000원씩 웃돈을 낸다. 내가 기사에게 받은 별점이 배차에 반영될 날이 올 수도 있다. 배달앱보다 조금 더 앞서 있는 택시 시장을 보니, 소비자 다음 왕은 확실히 알겠다. 알고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