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파 PD와 느림보 작가…아마존의 눈물, 싸움의 산물”

중앙일보

입력 2021.07.15 00:03

업데이트 2021.07.15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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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아마존의 눈물’ ‘남극의 눈물’ 등을 만든 스타 PD와 작가로도 유명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아마존의 눈물’ ‘남극의 눈물’ 등을 만든 스타 PD와 작가로도 유명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번 결정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남자와 한번 자리를 잡으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여자. 미련이나 집착, 오기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행동파 PD와 세상의 잡소리 따위 한 귀로 흘리고 제 속도를 지키는 사유파 작가는 함께 할 수 있을까.

김진만·고혜림 부부가 사는 법
서브연출과 메인 작가로 첫 만남
‘남극의 눈물’ ‘곰’ 히트작 만들어
신간 『호모 미련없으니쿠스』 출간
“정반대 성격…다큐 제작에 큰 도움”

지난달 30일 출간된 에세이 『호모 미련없으니쿠스』(위즈덤하우스)에는 김진만 PD와 고혜림 작가 부부의 라이프 스타일이 고스란히 담겼다. 함께 만든 MBC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2009~2010)부터 ‘남극의 눈물’(2011~2012), ‘곤충, 위대한 본능’(2013), ‘곰’(2018~2019) 등이 히트하면서 관련 내용을 책으로 펴낸 적은 있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를 쓴 것은 처음이다.

지난 8일 서울 상암동에서 만난 이들은 “책 쓰는 것도 방송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김 PD가 매번 촬영한 1000개 안팎의 테이프를 내놓으면 고 작가가 나서서 5시간 분량 방송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처럼, 이번에도 마구 아이디어를 던지면 목차를 정리해 나눠서 쓰는 식이었다.

고혜림 작가와 김진만 PD 부부가 쓴 에세이 『호모 미련없으니쿠스』 표지. [사진 위즈덤하우스]

고혜림 작가와 김진만 PD 부부가 쓴 에세이 『호모 미련없으니쿠스』 표지. [사진 위즈덤하우스]

김 PD는 “아무래도 사람이 가기 힘든 곳을 많이 가다 보니 여행기 제안을 받았는데 코로나19로 발이 묶이면서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의 비중이 더 커졌다”며 “마치 『냉정과 열정 사이』를 쓰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고 작가는 “방송 일도 함께하고 같이 살다 보니 공통 주제가 많은 편이다. 뉴스를 봐도 이야기가 쏟아진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프로그램은 ‘우리시대’(2001~2003). 1991년과 1996년, MBC에 공채 작가와 PD로 각각 입사해 메인 작가와 서브연출로 처음 만났다. 고 작가는 “갓 입봉한 PD치고 결정이 빨랐다”고 회고했고, 김 PD는 “고 작가에게 다큐의 모든 것을 배웠다”고 밝혔다.

예능·교양·편성국을 떠돌다 ‘아마존의 눈물’에 투입된 김 PD는 “솔직히 말하면 길을 잃었었다”고 고백했다.

두 사람은 1~2년에 한 번은 장기 여행을 떠나기로 계획하고 실천에 옮기고 있다. [사진 위즈덤하우스]

두 사람은 1~2년에 한 번은 장기 여행을 떠나기로 계획하고 실천에 옮기고 있다. [사진 위즈덤하우스]

“이게 문명인가 환경인가도 잘 모르겠고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안 오더라고요. 성격도 급해서 다들 제가 자연 다큐에 안 맞을 거라고 했어요. 지금 빨리 곰이 연어를 잡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데 고 작가는 태평했죠. 기다리면 나올 거다. 못 잡아도 잡는 듯이 보여주겠다.”

‘휴면다큐 사랑’(2006~2018)에서 ‘로봇다리 세진이’ ‘엄마의 고백’ 등 숱한 화제작을 만든 고 작가에게도 자연 다큐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초반에는 ‘이야기 속으로’(1996~1999) ‘성공시대’(1997~2001) 같은 매주 방송도 많이 했는데 느긋한 성격이라 그런지 장기 프로젝트가 잘 맞더라고요. 휴먼 다큐나 자연 다큐 모두 대본도 없고 연출도 쉽지 않으니 결국 오랜 시간 곁에서 지켜보면서 이야기를 찾아가야 하거든요.”

김 PD는 “다큐에서도 제일 중요한 건 결국 캐릭터와 스토리”라며 “동물도 보다 보면 주인공이 보이기 마련”이라고 거들었다. ‘아마존’의 김남길을 시작으로 ‘남극’ 송중기, ‘곤충’ 이승기, ‘곰’ 정해인 등 당대 최고 톱스타를 내레이션에 기용한 것 역시 “감정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고 작가가 창의성은 좋지만 활동성이 매우 낮거든요. 아마존에서 슬로스를 봤는데 어딘지 낯이 익더라고요. 하루 24시간 중 20시간을 가만히 나무에 매달려 있고 최대 시속은 0.9㎞라니, 고 작가다 싶었죠.”

“김 PD는 호구가 진상을 부르는 스타일이죠. 바이러스가 꼭 물리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거리두기가 필요해요.”

각자 첫 번째 결혼 생활을 마치고 2013년 재혼한 이들은 삶에 대한 철학도 조금씩 바뀌었다고 했다.

한번 떠나면 1~2년씩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오지 전문’ 김 PD는 일이 아닌 자신을 위한 여행을 꿈꿨고, 좀처럼 집밖에 나서지 않는 ‘집순이’ 고 작가는 은퇴 후를 준비하며 1~2년에 한 번은 한 달짜리 장기 여행에 따라나섰다.

“자동차 여행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오지 촬영은 제한이 많으니까 멈추고 싶을 때 못 멈추지만 자유 여행은 그게 되잖아요. 다음 가고 싶은 곳은 그때그때 달라지는데 우선은 코로나19가 하루빨리 종식됐으면 좋겠어요.”

준비했던 차기작도 모두 멈춰진 상태다. 아마존에서도 10주년을 맞아 촬영을 허가했고, 요리연구가 백종원과 함께 남극으로 떠날 계획도 짜놨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불투명해졌다.

예전과 달리 지상파에서도 좀처럼 대형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에 대해 김 PD는 “다채널 다매체 다장르 시대를 맞아 다큐의 힘이 약해졌다. 그렇다고 다큐 장르가 죽은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넷플릭스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서 드라마나 예능을 보다가 다큐로 건너가는 사람도 많아요. 새로운 기회가 생긴 거죠. 다큐는 보편적 가치를 다루기 때문에 언어적 한계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에요. K다큐 시장도 충분히 더 넓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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