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콕 때문에…엥겔지수 20년 전으로 돌아갔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1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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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국내 소비 지출에서 식비 비중인 ‘엥겔지수’와 임대료 등이 차지하는 ‘슈바베지수’가 올해 1분기 크게 높아졌다. 14일 서울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밀키트 제품을 고르고 있다. [뉴시스]

국내 소비 지출에서 식비 비중인 ‘엥겔지수’와 임대료 등이 차지하는 ‘슈바베지수’가 올해 1분기 크게 높아졌다. 14일 서울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밀키트 제품을 고르고 있다. [뉴시스]

#공무원 최모(52)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한 지난해부터 한달 식비 지출이 20만원 넘게 늘었다. 각각 대2·고3인 두 자녀가 끼니 대부분을 집에서 해결하면서다. 배달 음식도 많이 주문하고 있다. 최씨는 “여행이나 문화생활에 쓰는 돈이 다 식비로 나간다”고 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 이후 최고
1분기 식음료 지출, 총소비의 12.9%
여가소비 줄고 물가 크게 오른 영향
거주비 ‘슈바베지수’도 19.7%로
집값 뛰며 전·월세 부담도 커져

#서울 강남이 직장이고 인근 원룸에 사는 박모(35)씨는 최근 이사를 하려고 집을 알아보다 놀랐다. 2년 전보다 월세가 최소 5~10만원 올라서다. 박씨는 “이전까지 월세 60만원을 냈는데 이제 그 돈으로는 근처에 살 수 있는 집이 없다”며 “월세만 70만원 넘게 나가게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의식주’ 중 ‘먹거리(식)’와 ‘잠자리(집)’에 관한 국내 소비 지출 비중이 20년 전인 2001년 수준으로 돌아갔다. 2001년은 이른바 ‘IMF 사태’로 불리는 외환위기를 막 벗어난 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기침체 여파로 여가소비는 줄고, 집값과 식재료값은 폭등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20년 전보다 높아진 ‘식·주’ 지출 비중.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20년 전보다 높아진 ‘식·주’ 지출 비중.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최씨와 박씨의 고충은 올해 1분기 국내 ‘엥겔지수’와 ‘슈바베지수’로도 나타난다. 소비지출에서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엥겔지수, 임대료와 공과금 등 이른바 ‘거주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슈바베지수라고 부른다. 통상 엥겔지수와 슈바베지수는 경제가 발전해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낮게 나타나기 때문에 ‘선진국 지표’로도 불린다.

14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국내 소비지출액(217조9855억원) 중 임대료 및 수도·광열 지출(42조9561억원) 비중은 19.7%에 달했다. 슈바베지수는 2019년 17.6%에서 지난해 18.7%로 1.1%포인트 상승한 데 이어 올해도 급등했다. 1분기 임대료 지출이 나머지 분기에 비해 높은 임대 시장 경향을 고려해도 20%에 육박한 건 이례적이다. 20년 전인 2001년 슈바베지수는 19%였다.

치솟는 소비자물가지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치솟는 소비자물가지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올해 1분기 식료품·비주류음료 지출은 28조2013억원으로 국내 소비지출의 12.9%를 차지했다. 외환위기 막바지였던 2000년(13.3%)에 근접하는 수준이다. 엥겔지수는 2017년 11.6을 기록한 이후 낮아지는 추세였지만, 지난해 12.9로 2000년 이후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흐름이 올해 1분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주택매매가격 상승과 이에 따른 전·월세 비용 상승이 슈바베지수 급등 원인”이라며 “집값 상승이 전·월세 시장의 불안정성을 유발했다”고 분석했다. 실제 주택매매가격지수 증가율은 2019년 1.4%에서 지난해 3.8%로 급등했다. 이에 따라 전·월세 임차료도 증가세다.

지난해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5%로 저물가 수준을 유지했지만,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 물가는 4.4% 올랐다. 이른바 ‘장바구니 물가’만 올랐다는 뜻이다. 밥상 물가 상승의 영향을 받는 엥겔지수는 올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에 따라 여가·문화 생활이 이달 들어 더 제약되고 있고, 생선·채소 등이 포함된 소비자물가 신선식품지수는 올해 2분기(128.34) 지난해보다 12.6% 올랐기 때문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먹고 자기 위해 쓰는 돈은 줄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슈바베·엥겔지수가 높은 건 소득 하위계층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라며 “국민 생활 수준이 낮아졌다는 시그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상반된 해석도 나온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엥겔지수가 높아진 건 코로나19로 돈을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해서 나타난 현상”이라며 “이전과는 양상이 다르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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