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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최저임금 줄악재…832조 자영업자 빚 폭발력 커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성동구에서 18년간 식당을 운영한 성모(56)씨는 지난달 은행에서 2000만원을 대출받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한 지난해 5월 3000만원을 빌린 데 이어 두 번째 받은 대출이다. 이번에 받은 대출금은 임대료와 기존 대출 이자를 내는 데 사용하고 있다.

성씨는 “코로나19로 매출이 줄어들어 빚을 내 빚을 갚을 수밖에 없다”며 “그래도 7월 들어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는데 거리두기가 강화돼 이런 희망마저 사라졌다”고 말했다.

12일 서울 서대문구 한 상가에 임대 광고가 붙어 있다. 뉴스1

12일 서울 서대문구 한 상가에 임대 광고가 붙어 있다. 뉴스1

832조원에 달하는 자영업자 부채의 폭발력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의 재확산세 속 수도권에 사실상 통금 수준인 거리두기 4단계가 시작된 데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빚을 갚을 수 있는 여건이 더 나빠지면서다. 코로나19로 줄어든 매출을 빚을 내 버텨왔지만, 한계에 다다랐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자영업자 245만6000명이 받아간 대출 규모는 831조8000억원이다. 개인사업자 대출(541조원)과 가계대출(290조8000억원)을 합친 수치다. 국내 기업과 가계대출의 27.1%를 차지한다. 한은이 자영업자 대출 통계를 모은 2012년 이후 최대치다. 자영업자는 사업자등록을 한 뒤 개인사업자 대출을 받거나 개인 자격으로 가계대출을 낼 수 있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 빚도 늘어난다. 문제는 증가 속도와 대출의 질이다. 자영업자의 가계대출은 올해 1분기에만 1년 전보다 18.8% 늘었다. 2012년 이후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르다. 전체 가계대출 증가율(9.5%)의 두 배 가까운 수치다.

늘어난 대출의 속내를 보면 코로나19의 영향이 그대로 보인다. 여가(31.2%), 도소매(24.2%), 숙박음식(18.6%) 등 코로나19의 매출감소 충격을 받은 업종의 빚이 빠르게 늘었다.

코로나 19 이후 자영업자 대출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코로나 19 이후 자영업자 대출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대출의 질도 나빠지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자영업자의 은행 대출 증가율은 16.2%다. 저축은행·카드·대부업체 등 비은행권의 대출 증가율은 24.4%였다. 비은행권은 시중은행보다 금리가 높다. 그 결과 자영업자의 고금리 대출 잔액은 지난해 1분기 36조5000억원에서 올해 1분기 43조6000억원으로 1년 만에 7조원 가까이 늘었다. 상환 부담이 무거워졌다는 의미다.

게다가 자영업자 중 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도 급격히 늘고 있다.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개인사업자 기업대출 중 다중채무자는 2018년 11만2000명(대출액 87조원)→2019년 12만8799명(101조원)으로 완만히 증가하다 지난해 말에는 19만9850명(129조원)으로 급격히 늘었다.

한은도 지난 6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코로나19 이후 대면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자영업자 대출이 큰 폭으로 증가한 가운데 고금리대출 비중도 커지며 자영업자 대출의 질이 악화했다”고 평가했다. 빚을 갚을 능력도 떨어지고 있다. 자영업자들의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2020년 3월 195.9%에서 지난해 말 238.7%까지 악화했다.

업종별 대출 증가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업종별 대출 증가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문제는 앞으로다. 상황이 더 악화할 수 있어서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세지며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매출 감소는 피할 수 없는 상태다. 내년부터는 최저임금도 9160원(5.1% 인상)으로 오른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 교수는 “이번 최저임금 인상은 경제 상황의 정상화를 상정하고 정한 수치"라며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매출은 줄어드는 데 인건비 등 비용 부담이 커지면 자영업자의 부채 문제도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올해 안으로 예상되는 기준금리 인상도 변수다. 금융연구원은 단기대출 관련 금리가 1%포인트 올라갈 경우 자영업자들의 추가 이자 부담을 3조6000억원으로 추산됐다.

돈을 빌릴 길도 막히고 있다. 이달부터 가계대출에 강화된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적용되면서다. 사업자대출과 가계대출을 동시에 보유한 경우가 전체 자영업자 대출의 84%를 차지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DSR규제는 가계대출에만 해당하기 때문에 사업자대출에는 영향이 없다"면서도 "사업자대출을 더는 받을 수 없는 자영업자가 가계대출로 자금을 조달하기도 마땅치 않아졌다"고 말했다.

업권별 대출 증가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업권별 대출 증가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대출 만기 연장 등으로 숨겨진 부실이 한꺼번에 폭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 3월 기준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0.24% 수준이다. 코로나19 위기가 본격화된 2020년 5월 연체율(0.35%)보다 떨어졌다.

대출의 총량은 늘어난 반면, 오는 9월 만료되는 대출 만기 연장과 원금 및 이자상환 유예 등 금융지원 조치로 연체 금액이 줄어서 생긴 착시 효과다. 만기연장 및 원금·이자상환 유예 지원금액은 지난달 기준 204조2000억원에 이른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 교수는 “만기연장 등의 조치가 계속되며 부실이 상당 부분 누적돼 부채의 폭발력이 더 커졌다”며 “더 심각해지기 전에 옥석 가리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도 “이자조차 못 내는 자영업자 등을 대상으로 한 이자상환 유예 조치는 종료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 교수는 “코로나19가 정상화된 뒤 그동안 늘려놓은 부채를 갚을 수 없는 자영업자 문제가 본격화할 것”이라며 “단순히 빚을 늘려주는 금융정책 외에 재정정책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고민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상환 시점을 조정하거나 분산시키는 등 연착륙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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