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에서] 국제사회에 안 먹히는 '대북전단' 해명...동문서답만 도돌이표

중앙일보

입력 2021.07.14 17:16

업데이트 2021.07.14 17:26

"책임 있는 국가는 인권 기록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피하지 않는다. 위대한 국가는 결점을 숨기지 않으며,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투명하게 개선하려고 노력한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13일(현지시간)이 자국 내 인종차별 문제를 조사해달라며 유엔(UN) 특별보고관들을 미국에 공식 초청하며 올린 글이다. 지난달 유엔 인권사무소가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지난해 5월) 등을 언급하며 "미국에서 아프리카인 및 아프리카계 사람에 대한 인종 차별이 심각하다"고 지적하자 이를 수용, 문제를 파악해 달라며 자진해 보고관들을 초청한 것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AP. 연합뉴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AP. 연합뉴스

후폭풍만 키운 3개월만의 답변

블링컨 장관의 '당당한 반성'은 대북 전단 금지법(개정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ㆍ이하 전단법)과 관련, 최근 정부가 유엔에 밝힌 입장과 묘하게 비교된다.
정부는 이를 통해 전단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과잉 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유엔 특별보고관들의 우려를 반박하는 데만 집중했다. "국제 규약이 허용하는 수준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며 "전단법은 표현의 '수단'을 최소한으로 제한하지,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본질적인 '내용'을 제한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부, 유엔 지적에 "표현 내용 말고 수단 제한"
국제인권단체 "터무니 없고 비논리적 답변"
논점 빗나간 해명 대신 정면돌파 해야

하지만 국제사회는 납득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로버트 킹 전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14일(현지시간) 미국의 소리(VOA)에 "유엔에서 한국의 중요한 역할을 고려할 때, 유엔 특별보고관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실망스러운 모습"이라고 밝혔다.
필 로버트슨 휴먼라이츠워치(HRW) 아시아 담당 부국장은 12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한국 정부의 반응은 터무니없다. 전단법처럼 특정 행동을 전면 금지하는 것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어떤 타당한 제약의 범위도 훨씬 넘어서게 된다"고 지적했다.
수잰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도 같은 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표현의 자유는 있으면 있는 것이고, 없으면 없는 것"이라며 "한국 정부의 주장은 비논리적"이라고 반박했다.

정부는 지난 8일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앞으로 보낸 A4용지 3장 분량의 서한에서 대북전단금지법의 입법 취지와 향후 적용 계획 등에 대해 설명했다. 지난 4월 유엔 북한 인권특별보고관들이 해당 법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데 대한 답변이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홈페이지에 게시된 정부의 답변서 캡쳐.

정부는 지난 8일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앞으로 보낸 A4용지 3장 분량의 서한에서 대북전단금지법의 입법 취지와 향후 적용 계획 등에 대해 설명했다. 지난 4월 유엔 북한 인권특별보고관들이 해당 법에 대한 우려를 전달한 데 대한 답변이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홈페이지에 게시된 정부의 답변서 캡쳐.

정부, 논점 빗나간 해명만 반복

정부가 인권을 고리로 국제사회와 공방을 벌이는 모양새가 반복되는 이유는 계속 논점을 벗어난 동문서답식 대응만 하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유엔 등 국제사회 지적의 초점은 '대북전단 자체가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전단 살포를 법까지 만들어 처벌하는 게 무리'이며 '향후 예상되는 부작용은 어떻게 방지할 것인지'에 있다.

하지만 정부는 '한반도 상황이 이 정도로 특수하며, 대북전단이 접경 지역 주민에게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아느냐'는 도돌이표 같은 답만 반복한다. 전단법의 당위성을 방어하는 데만 급급하니, 스텝은 점점 꼬이는 모양새다.

"내용 대신 수단만 제한한다"는 정부의 해명에 어폐가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통일부는 "외설적 선전물 등 내용적 측면은 남북관계발전법에서 규율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앞서 지난해 12월 통일부는 설명 자료를 통해 외설적 선전 및 가짜뉴스 등 전단의 내용을 문제 삼았다.
또 법안을 대표 발의했던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본회의 처리 당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서 "북한에서는 최고존엄이라고 하는 김정은 위원장을 모욕했다"고 지적하는 등 전단의 사진과 표현을 하나하나 짚으며 비판했다. 법 개정 취지로 실컷 전단의 내용을 문제 삼다가 이제는 '법 자체에는 그런 말 없다'며 선 긋기에 나선 것은 자기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2009년 파주 임진각에서 남북자가족모임 등이 대북전단을 날리는 모습. 중앙DB.

지난 2009년 파주 임진각에서 남북자가족모임 등이 대북전단을 날리는 모습. 중앙DB.

'회피' 대신 '정면돌파' 혹은 '지적 수용'해야 

물론 국제사회의 지적이 절대적으로 맞고 한국 정부의 입장이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표현의 자유와 인권 문제는 보편적 가치이지만, 국가별 특수성도 고려할 부분이 있다.
일례로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이동 및 집회의 자유 제한도 국가마다 다르게 인식한다. 세계인권선언에 법적 구속력을 불어넣은 국제인권규약도 조항의 해석을 놓고 이견이 발생하곤 한다.

다만 정부여당이 대북전단금지법에 '전단 등'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살포 금지 대상을 광범위하게 규정하고, 세세한 기준 없이 '최대 3년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처벌을 명시한 만큼 이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책임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너희가 걱정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 우릴 믿고 지켜봐 줘"라는 식의 논리에 국제사회가 고개를 끄덕일 리는 만무하다.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우려를 정당한 논리로 제대로 불식시키든지, 아니면 결함을 인정하고 법을 다시 손볼 일이다. 블링컨 장관의 말을 다시 인용하자면 그게 '책임 있는 국가', '위대한 국가'가 취할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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