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축은 미안하다, 피부색은 사과 못한다" 英흑인선수의 '위엄'

중앙일보

입력 2021.07.14 16:56

업데이트 2021.07.14 17:09

잉글랜드팀 축구 선수 마커스 래시포드가 자신에 대한 인종차별적 비난에 소신 발언을 내놨다. [래시포드 인스타그램]

잉글랜드팀 축구 선수 마커스 래시포드가 자신에 대한 인종차별적 비난에 소신 발언을 내놨다. [래시포드 인스타그램]

“내 경기력에 대한 비판은 종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흑인이라는 점에 대해선 절대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영국의 국가대표 축구선수 마커스 래시포드(23)가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고 BBC가 지난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래시포드는 지난 11일 열린 2020 유럽축구연맹(UEFA) 선수권대회(유로2020)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득점에 실패했다. 축구 열기가 남다른 영국에서 벌어진 홈경기였다. 이탈리아를 상대로 싸운 잉글랜드팀은 결국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실패했다. 공교롭게도 승부차기 득점에 실패한 키커 셋이 흑인이었고, 이들에겐 인종차별 발언이 섞인 비난이 쏟아졌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잉글랜드팀은 영웅으로 칭송 받아야 한다”며 “인종차별을 한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 알라”고 발언했지만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13일(현지시간) 마커스 래시포드 벽화 앞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로이터=연합뉴스

13일(현지시간) 마커스 래시포드 벽화 앞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로이터=연합뉴스

래시포드는 당당히 대응하는 법을 택했다. 위와 같은 소신 발언을 내놓으면서다. 분위기도 비난에서 응원으로 반전 중이다. 세계 각지에서 응원이 쏟아졌고, 래시포드의 고향 맨체스터에 설치된 그의 벽화는 ‘반(反) 인종주의’ 캠페인의 상징이 됐다.

마커스 래시포드 벽화에 붙은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 AP=연합뉴스

마커스 래시포드 벽화에 붙은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 AP=연합뉴스

BBC는 13일 “인종차별로 얼룩졌던 래시포드의 벽화가 이젠 팬들의 응원 메시지로 뒤덮였다”며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집회에 수백명이 모였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도 “벽화는 영국 국기와 편지, 하트 스티커 등으로 가득 찼고, 쪽지엔 ‘맨체스터의 아들’ ‘국가의 심장’ 등의 문구가 쓰여 있다”고 전했다. 래시포드는 14일 자신의 트위터에 “공동체가 항상 날 지탱해주고 있다”고 감사의 뜻을 밝혔다.

승부차기에서 실축한 뒤 괴로워하는 마커스 래시포드의 모습. AP=연합뉴스

승부차기에서 실축한 뒤 괴로워하는 마커스 래시포드의 모습. AP=연합뉴스

도를 넘는 비판이 계속되자 래시포드는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팀 동료를 포함해 모두를 실망하게 해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고 자성의 말로 운을 뗐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흑인이라는) 내 출신에 대해선 사과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밝혔다. 이어 “나와 우리 팀은 더 강해져서 돌아오겠다”고 했다. 팀 동료들의 지지도 쏟아지고 있다. 잉글랜드팀 주장 해리 케인은 “우리는 (인종차별 언사로 비난을 하는) 당신들을 팬으로 원하지 않는다”고 일침을 가했다.

마커스 래시포드는 선수로 활동하며 결식 어린이 등 취약계층을 위해 자선활동을 꾸준히 펼쳐왔다. 로이터=연합뉴스

마커스 래시포드는 선수로 활동하며 결식 어린이 등 취약계층을 위해 자선활동을 꾸준히 펼쳐왔다. 로이터=연합뉴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래시포드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선한 영향력의 선두주자다. 지난해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자 어린이 등 취약 계층의 결식을 우려해 자원봉사단체와 식료품을 제공했다. 지난해 11월엔 가난한 아이들에게 책을 지원하는 자선 사업도 펼쳤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0월 대영제국 명예훈장(MBE)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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