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종별 현장 너무 모른다”…중대재해법 시행령에 반발 왜?

중앙일보

입력 2021.07.14 15:57

뜨거운 철판 위와 야외에서 작업해야하는 조선소는 여름철 더위와의 전쟁을 벌인다. 몸을 식히기 위해 자주 수박 파티도 연다. [중앙포토]

뜨거운 철판 위와 야외에서 작업해야하는 조선소는 여름철 더위와의 전쟁을 벌인다. 몸을 식히기 위해 자주 수박 파티도 연다. [중앙포토]

“뜨거운 철판 위와 야외에서 작업해야 하는 조선소는 더운 여름에 아무리 회사에서 노력해도 열사병 환자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나 중증의 열사병인지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으면 대표이사가 매년 수사와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조선소 관계자)

경총, 산업계 긴급대책회의 개최

“공장서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작업이 많은데 경영책임자가 관리해야 할 원료와 제조물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졌습니다. 중대재해가 실제 발생할 경우 법 적용 대상을 두고 논란만 커질 것입니다.” (반도체공장 관계자)

정부가 공표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에 대해 산업계가 업종별로 우려를 쏟아내며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14일 대기업의 안전·보건 책임자와 업종별 협회 관계자가 온라인으로 참여한 가운데 산업계 긴급 대책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대기업의 안전·보건 관계자들은 “중대재해법 제정 이후 산업계가 지속해서 제기했던 쟁점들이 해소되지 않은 채 시행령 제정안이 마련됐다”며 “연내 보완 입법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대로 시행령이 제정될 경우 법이 시행되는 내년 1월 말부터 경영책임자는 처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직업성 질병 목록에 열사병이 들어간 것에 대해서는 특히 조선업계의 반발이 컸다. 조선소에서는 연간 20명 정도 열사병 증상이 발생한다. 대부분 간단한 진료와 일주일 정도 휴식을 통해 회복될 정도로 재해 강도가 상대적으로 경미한 편이다. 조선소 관계자는 “시행령이 그대로 실시되면 열사병 환자 중 3명이 4일 이상 요양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인정을 받을 경우 중대재해로 보고 대표이사가 처벌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법 시행령 업종별 불만 사항.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중대재해법 시행령 업종별 불만 사항.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건설업종에서도 현장을 무시한 시행령안이라고 불만이 컸다. 시공능력 평가 순위 200위 이내 기업은 본사에 중대재해 방지 전담 조직과 상근 인력을 둬야 한다. 시공능력 평가 200위권의 경우 본사 인력이 20여 명 수준이고, 60위권도 30여 명 수준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업 특성상 인력이 주로 현장에 있지, 본사에는 많지 않다”며 “제조업의 경우 소규모 사업장에 불과한 수준인데 전담 조직과 상근 인력을 두라는 것은 업종 현실을 너무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유업계에서도 직영 주유소(충전소 포함)의 부지 면적 기준적용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시행령은 2000㎡(약 600평) 이상의 주유소 부지를 공중이용시설로 간주하고, 중대재해로 시민이 다쳤을 경우 처벌한다. 그런데 넓은 부지에 주유기(충전기 포함)가 한두 대만 설치된 명목상 주유소 부지인 곳이 많다. 실제 85% 정도가 유휴부지로 주차장 용도나 편의점·음식점 등 임대 사업장으로 쓰이고 있다. 해당 사업장에는 별도의 사업자가 있는데도 주유소 부지라는 이유만으로 정유소 대표가 처벌받을 가능성이 크다.

원청-하청-재하청 구조로 이뤄진 자동차 공장의 경우에도 원청 사업자의 책임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은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화학물질관리법 등 11개 관련 법률은 유독물질을 명확하게 지정하고 있지만, 중대재해법 시행령안은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것으로서 생명·신체에 해로운 원료 또는 제조물’이란 규정이 들어가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종에서 불만을 샀다.

이동근 경총 부회장은 “업종별로 제기된 다양한 의견을 정부가 입법예고 기간 중 충분히 수렴해 시행령을 합리적으로 제정해야 한다”이라며 “산업계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한 뒤 경제단체 공동 건의서를 향후 정부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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